[비즈한국] 한진가 ‘남매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가운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간 경영권을 둘러싼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 카카오가 지주사 한진칼 지분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것.
카카오가 매입한 지분은 1%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상당하다는 게 재계의 반응이다. KCGI, 반도건설, 델타항공 등 외부 주요주주들의 우호 지분을 더한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의 지분 격차가 1% 내외에 불과하고 한진가 외 주주들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오는 3월 열리는 주총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벌써부터 설왕설래가 뜨겁다.
#3월 주총 앞두고 지분 셈법 ‘복잡’
현재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은 1% 지분도 아쉬울 만큼 지분 경쟁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3분기 기준 지분율을 살펴보면 조원태 회장이 한진칼 지분 6.52%로 오너 일가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6.49%인 조현아 전 부사장과의 격차는 0.03%에 불과하다.
따라서 ‘백기사’의 입김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상황이다. 이들이 오는 3월 열리는 주총에서 어떻게 주주권을 행사하는지에 따라 한진가의 경영권 판도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백기사 역할로 지목되는 외부 주요주주는 KCGI(17.29%), 반도건설(8.28%), 델타항공(10%), 카카오(1%) 등이다. 여기에 국민연금도 한진칼 지분 4.11%가 있어 ‘캐스팅보트’ 역할이 가능하다.
재계에서는 KCGI, 반도건설 등을 조 전 부사장의 우호세력으로 꼽는다. 조 전 부사장과 이들의 지분을 합치면 32.06%다. 당사자들은 부정하고 있지만 최근 조 전 부사장과 KCGI, 반도건설 관계자가 비공개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KCGI와 반도건설이 조 전 부사장을 ‘지원사격’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사모펀드인 KCGI은 한진칼 지분을 통해 최대이익을 창출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지분이 부족한 조 전 부사장 편에 서는 것이 KCGI에겐 낫다는 평가다. KCGI의 입장을 주장하기 유리해서다.
그동안 KCGI는 한진그룹 경영권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난해 한진그룹 주요계열사인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는 주주권을 행사해 고 조양호 회장을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최근 KCGI는 보도자료를 내고 “조원태 회장이 총수자리를 지키기 위해 대한항공 임직원을 동원하는 등의 전근대적 행태에 개탄한다”고 지적하면서 조 회장과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KCGI는 지난 20일 한진칼 주식담보대출 기한 연장을 통해 후방을 든든하게 해두었다. 지난 2019년 6월 KCGI는 약 200억 원 규모의 한진칼 주식에 대한 담보대출 기한 연장이 막히면서 애를 먹은 바 있다. 당시 주식담보대출을 해준 미래에셋대우는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과는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서는 KCGI의 지분 확보을 어렵게 하는 방식으로 한진가를 우회 지원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KCGI는 지난해 한진 경영진에 대한 불만을 꾸준히 제기했다”면서 “조 회장을 기존 한진 경영진을 대표하는 인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반도건설 역시 존재감을 꾸준히 키우고 있다. 반도건설은 지난 10일 한진칼 지분율(계열사 확보 지분 포함)을 기존 6.28%에서 8.28%로 늘렸다며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한진그룹 경영에 간섭할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투자업계에서는 세 주체 간 비공개 회담이 여기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이다.
반도건설도 KCGI와 마찬가지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조 전 부사장 편에 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주요주주로서 입김이 강해지면 반도건설과의 시너지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경영권이 필요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진그룹은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부지 등 부동산 자산이 많다. 이곳은 개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반도건설이 한진그룹과 협력관계로 발전한다면 아무래도 일감 수주가 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카카오, 1% 백기사 등극하나
KCGI와 반도건설이 조 전 부사장 편에 선다고 해도 조 회장의 우호지분 역시 엇비슷한 수준이다. 조 회장은 조 전 부사장을 제외한 오너 일가와 델타항공 지분(10%)을 합치면 32.45%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조 전 부사장·KCGI·반도건설과의 지분 격차는 0.39%로 대단히 근소하다. 이 때문에 카카오가 지난해 12월 초 한진칼 지분을 1%가량 매입한 것에 눈길이 쏠렸다. 카카오의 선택에 따라 남매 지분 경쟁의 승패가 바뀔 수 있어서다.
재계에서는 협약의 지속성을 위해 카카오가 조 회장 편에 서서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카카오는 “사업 협력 업무협약(MOU)을 맺으면서 지분 매입에 참여했다. 매입 시점이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의 지분 경쟁이 일어나기 전”이라면서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제3의 시나리오도 존재한다. 반도건설이 대한항공의 1대 주주로 올라서 경영권을 차지하는 그림이다. 반도건설은 한진가의 ‘백기사’ 역할에서 안주인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주요주주 중 하나다. 일단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이 많다. 지주사 반도홀딩스가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은 2018년 말 연결 기준 1719억 원이다. 이 유동성을 한진칼 지분 매입에 사용한다면 7.5%(경영권 프리미엄 제외)를 추가로 매입할 수 있다. 여기에 분양미수금 6419억 원까지 지분 매입에 활용한다면 단숨에 한진칼 최대주주에 오른다. 이 경우 반도건설이 보유하게 되는 한진칼 지분은 30%를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 지분을 포함한 한진칼 오너 일가의 지분이 28.94%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건설이 경영권 도전에 나서는 것도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다. 다만 이 경우 한진가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분 경쟁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 회사를 뺏기는 것보다는 화해하는 편이 낫다.
증권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3월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대표직 유지 여부가 주요 안건으로 올랐다”면서 “주총이 개최되기까지 주요주주들 간 막판 눈치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지분 1%에 따라 경영권 향방이 갈릴 수 있는 상황에서 주요주주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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