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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정재계 향한 가습기살균제 수사

김상조 전 위원장과 전현직 공정위 직원들 피소…애경산업 뇌물 건도 함께 진행

2020.01.28(Tue) 09:35:24

[비즈한국] “묵은 사건 털기일 수도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수사가 계속될 겁니다. 근데 이제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문제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이뤄진 정부 관계자들의 의사 결정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게 다른 포인트지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변호인)

 

수년간 수사 끝에 지난해 일단락됐던 가습기 살균제 수사가 2라운드로 접어든 모양새다. 지난해 5월 2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 사망자 시민분향소를 설치하고 기자회견 하던 모습. 사진=임준선 기자

 

지난 21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강지성)는 유선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을 불러 첫 고발인 조사를 진행했다. 유 전 관리관이 공정위 관계자들을 고발한 지 7개월 만이었다. 앞서 유 전 관리관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대기업에 대한 거짓광고 조사 등 본질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기업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폐기했다며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당시 공정위원장) 등을 고발한 바 있다. ​

 

수년간 수사 끝에 지난해 일단락됐던 가습기 살균제 수사가 2라운드로 접어든 것일까. 채동석·이윤규 애경산업 대표이사,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된 사건을 형사2부(강지성 부장검사)에 배당한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보탠다. 정치권과 연결된 사건이기에 수사가 확대된다면 작지 않은 파급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고발당한 ‘실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유선주 전 관리관이 문제 삼은 부분은 공정위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 부패가 만연하다는 것. 그는 고소장 등에서 “공정위는 지난 2016년 8월 처분 시효가 남아 있어 언제든지 처분이 가능하다는 거짓말로 속였다”면서 “그 후 SK케미칼 등에 심의 종결 처분을 내려 이후 처벌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보고를 했음에도 김상조 당시 공정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문제를 묵살했다는 게 그의 주장인데, 그는 김 전 위원장 등 전·현직 공정위 임원들을 직무유기, 직권남용, 범인은닉도피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특히 2017년 7~9월, 김 전 위원장이 구두 및 서면 보고를 통해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처리의 위법성을 보고받았음에도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인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의 안전성 실험자료를 조사·심의·처분하지 않도록 지시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첫 고발인 조사 때도 이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선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은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과 전현직 공정위 임원들을 직무유기, 직권남용, 범인은닉도피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공정위 내부에서 터진 고발 건이라서 파급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공정위 내부 흐름에 밝은 법조인은 “왜 공정위 출신들이 대기업에서 정년 퇴임 후 2~3년 동안 임원 대우를 받겠나. 다 회사 문제가 터졌을 때 잘 무마하라는 ‘로비스트’ 성격이 짙다”며 “곪은 문제가 터진 것인데, 그 과정에서 김상조 위원장까지 보고 과정에서 거론되기 때문에 정치적인 사건으로 확대될 경우 파급이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애경산업 뇌물 제공 혐의도 함께 수사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는 애경산업의 뇌물 제공 사건도 배당돼 있다. 지난해 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A 씨는 애경산업의 ‘조사 무마’ 목적 뇌물 제공 과정에 채동석 대표이사 등의 관여 여부를 수사해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성분에서 비롯된 피해 입증 수사에서 기업 및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 애경산업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브로커 양 아무개 씨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건 조사를 무마해달라’는 취지의 부탁과 함께 6000만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브로커 양 씨는 지난 9월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제27형사부(정계선 부장판사)는 “양 씨가 작성한 문건 내용과 애경산업의 회의 메모, 텔레그램 메시지를 종합했을 때 양 씨가 애경산업 오너가 소환되지 않게 해주겠다고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양 씨에게 징역2년을 선고했다. 이와 관련해서 아직 애경산업은 본격적인 수사를 받지 않은 상황이지만, 대형 로펌과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흐름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수많은 피해자로 안타까움을 줬던 사건이 이제 애경산업 경영진과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 등 다른 기관들의 내부 의사 결정 과정으로 수사가 확대됐다”며 “일부는 무혐의로 끝나 ‘의혹’에 그치겠지만, 애경산업처럼 이미 기소된 관계자가 있는 경우에는 수사가 더 쉽게 이뤄지지 않겠냐”고 귀띔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역시 “결국 이런 사건은 전형적으로 ‘정치적 판단’이 중요한 사건”이라며 “파면 얼마든지 혐의가 나오지만, 덮으려면 또 무난히 덮을 수 있는 사건이다. 결국 검찰과 법무부의 대립 속에 정무적 판단에 달린 문제”라고 설명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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