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묵은 사건 털기일 수도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수사가 계속될 겁니다. 근데 이제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문제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이뤄진 정부 관계자들의 의사 결정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게 다른 포인트지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변호인)
지난 21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강지성)는 유선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을 불러 첫 고발인 조사를 진행했다. 유 전 관리관이 공정위 관계자들을 고발한 지 7개월 만이었다. 앞서 유 전 관리관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대기업에 대한 거짓광고 조사 등 본질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기업들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폐기했다며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당시 공정위원장) 등을 고발한 바 있다.
수년간 수사 끝에 지난해 일단락됐던 가습기 살균제 수사가 2라운드로 접어든 것일까. 채동석·이윤규 애경산업 대표이사,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된 사건을 형사2부(강지성 부장검사)에 배당한 점도 이런 해석에 힘을 보탠다. 정치권과 연결된 사건이기에 수사가 확대된다면 작지 않은 파급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고발당한 ‘실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유선주 전 관리관이 문제 삼은 부분은 공정위 소속 공무원들의 불법 부패가 만연하다는 것. 그는 고소장 등에서 “공정위는 지난 2016년 8월 처분 시효가 남아 있어 언제든지 처분이 가능하다는 거짓말로 속였다”면서 “그 후 SK케미칼 등에 심의 종결 처분을 내려 이후 처벌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보고를 했음에도 김상조 당시 공정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문제를 묵살했다는 게 그의 주장인데, 그는 김 전 위원장 등 전·현직 공정위 임원들을 직무유기, 직권남용, 범인은닉도피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특히 2017년 7~9월, 김 전 위원장이 구두 및 서면 보고를 통해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처리의 위법성을 보고받았음에도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인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의 안전성 실험자료를 조사·심의·처분하지 않도록 지시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첫 고발인 조사 때도 이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내부에서 터진 고발 건이라서 파급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공정위 내부 흐름에 밝은 법조인은 “왜 공정위 출신들이 대기업에서 정년 퇴임 후 2~3년 동안 임원 대우를 받겠나. 다 회사 문제가 터졌을 때 잘 무마하라는 ‘로비스트’ 성격이 짙다”며 “곪은 문제가 터진 것인데, 그 과정에서 김상조 위원장까지 보고 과정에서 거론되기 때문에 정치적인 사건으로 확대될 경우 파급이 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애경산업 뇌물 제공 혐의도 함께 수사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는 애경산업의 뇌물 제공 사건도 배당돼 있다. 지난해 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A 씨는 애경산업의 ‘조사 무마’ 목적 뇌물 제공 과정에 채동석 대표이사 등의 관여 여부를 수사해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제출한 바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성분에서 비롯된 피해 입증 수사에서 기업 및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 애경산업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브로커 양 아무개 씨에게 ‘가습기 살균제 사건 조사를 무마해달라’는 취지의 부탁과 함께 6000만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브로커 양 씨는 지난 9월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제27형사부(정계선 부장판사)는 “양 씨가 작성한 문건 내용과 애경산업의 회의 메모, 텔레그램 메시지를 종합했을 때 양 씨가 애경산업 오너가 소환되지 않게 해주겠다고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양 씨에게 징역2년을 선고했다. 이와 관련해서 아직 애경산업은 본격적인 수사를 받지 않은 상황이지만, 대형 로펌과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흐름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수많은 피해자로 안타까움을 줬던 사건이 이제 애경산업 경영진과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 등 다른 기관들의 내부 의사 결정 과정으로 수사가 확대됐다”며 “일부는 무혐의로 끝나 ‘의혹’에 그치겠지만, 애경산업처럼 이미 기소된 관계자가 있는 경우에는 수사가 더 쉽게 이뤄지지 않겠냐”고 귀띔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역시 “결국 이런 사건은 전형적으로 ‘정치적 판단’이 중요한 사건”이라며 “파면 얼마든지 혐의가 나오지만, 덮으려면 또 무난히 덮을 수 있는 사건이다. 결국 검찰과 법무부의 대립 속에 정무적 판단에 달린 문제”라고 설명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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