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월 15일 세계 유수의 방위산업 미디어 그룹 제인스(Jane’s)에 따르면, 미국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투기 사업인 F-35프로그램에서 터키제 부품들이 ‘거의 완전히 퇴출’되었다고 선언했다. 엘런 로드(Ellen Lord) 국방획득운용 차관은 기자들에게 “터키는 S-400미사일과 관련해서 어떤 입장 변화도 없기 때문에 터키의 퇴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F-35는 무려 1조 달러가 넘는 사업이며 미국은 F-35전투기를 터키에 약 80억 달러를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터키 또한 F-35의 개발 파트너로서 약 120억 달러의 터키제 부품을 F-35 전투기에 장착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제 거래가 복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화로 수십 조 원이 넘는 거래가 왜, 무슨 과정으로 산산이 부서진 것일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장기집권계획에 군부, 그중에서도 공군이 크게 방해가 되어 공군 전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터키 쿠데타 미수 사건 이후 에르도안 정부는 쿠데타 배후 세력이라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군의 숙청작업을 벌였다. 그 중에서도 공군, 특히 전투기 조종사들이 집중적으로 체포되었다.
전투기를 굴릴 조종사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터키 정부는 전투기 수급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터키 공군 출신 민간 조종사들은 강제로 재 입대를 명령받기도 하고, 한국 공군과 KAI에게 터키 공군 조종사 훈련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과 육성에 막대한 자원과 시간이 드는 전투기 조종사의 손실을 막기에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이러한 기회를 틈타 푸틴과 러시아 정부가 나섰다. 러시아는 시리아 문제에서 터키의 양보를 끌어내고 터키의 쿠르드 족 탄압에 대해서 지지하면서, 자국의 최신 대공미사일 시스템인 S-400을 제안했다. 영공을 지킬 전투기에 탈 조종사가 부족하면 전투기 대신 미사일로 영공을 방어하라는 논리였다. 군사적으로는 개연성이 부족한 주장이지만, 터키 군부의 엘리트 중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전투기 조종사들에 대한 불신을 가진 에르도안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결국 2019년 7월 14일 터키는 S-400 미사일 포대를 러시아로부터 처음 전달받았다.
문제는 터키가 NATO 회원국, 그것도 가장 중요한 회원국 중 하나로 미국과 나토의 러시아 포위망의 가장 선두에 있던 국가라는 점이다. 심지어 터키의 인지를릭 공군기지에는 미국의 B-61 핵폭탄 50여 기가 배치되어 전시에 터키 공군의 전투기가 미국이 관리하는 핵폭탄을 장착하는 일명 ‘핵무기 공유(nuclear sharing)’임무가 부여되었을 정도이다.
러시아제 무기를 산다고 동맹국이 순식간에 적으로 바뀔 일은 없지만, 대공 미사일 시스템은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민감한 기술이다. 따라서 적대 국가에게 절대 넘어가면 안 되는 여러 규칙과 시스템을 가진다. 공중에서 상대방이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하는 피아식별 장비(IFF)는 핵무기 기술과 함께 가장 민감한 군사기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나토 회원국인 터키 땅에 러시아 대공미사일이 있으면 피아 식별을 잘못해서 미군 공군기가 격추될 가능성도 높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만에 하나 IFF 정보가 러시아에 넘어가면 러시아 공군기가 나토공군을 속이고 침투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F-35와 S-400은 결코 둘 다 구매할 수 없는 무기’라며, 터키의 S-400 미사일 구매를 포기하라고 여러 차례 압박했지만 터키는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7월 17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F-35 프로그램에서 터키를 퇴출시키겠다고 말하고, 그 다음날 미국 국무부의 공식 퇴출 성명이 발표되어 F-35 터키 퇴출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다.
우리에게는 이 사건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크게 세 가지 부분에서 큰 기회를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F-35 추가구매와 함께 ‘F-35 생태계’에 도전할 기회가 열렸다. F-35는 세계 최대의 군사대국 미국으로써도 매우 크고 부담스러운 프로젝트기 때문에, 개발 초창기부터 여러 국가들에게 개발비 분담을 통한 부품 외주생산을 추진했다.
개발비를 분담한 만큼 F-35의 부품 생산권리를 주는 것으로, 군용 항공기보다 훨씬 거래 규모가 큰 민간 항공기 생산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시도되었던 방식이다. 지금 터키가 생산물량을 맡은 부품 대부분은 미국 업체가 다시 담당할 예정이지만, 앞으로 우리 공군이 F-35A나 수직이착륙형인 F-35B를 추가 구매한다면 F-35 제작을 총괄하는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e)과 JPO(F-35 Joint Program Office)는 절충구매 형태로 제공할 수 있는 부품 제작 외주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
물론 F-35의 부품 생산은 공동개발보다는 외주 하청에 가깝다. 부품 성능개량이나 기술획득의 의미는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라 그 중요성이 매우 높지는 않지만, 항상 수주 물량 부족에 시달리는 우리 방산기업들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막대한 이득이 기대되는 ‘F-35 무장’에 도전할 기회가 열렸다. 터키는 단순히 F-35를 구매하고 부품 하청생산을 맡은 것뿐만 아니라, F-35에 여러 가지 터키제 무기를 사용하고자 개발을 추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무기가 바로 로케산(Roketsan)사에서 개발 중인 SOM-J 공대지 미사일이다.
SOM-J는 SOM-A(Satha Atılan Orta Menzilli Mühimmat) 미사일을 F-35 전투기에 장착할 수 있도록 개량한 무기다. 무엇보다 F-35의 내부 무장창에 탑재할 수 있도록 사이즈를 맞춘 것이 특징이다. F-35는 외부에 무기를 탑재할 수 있지만 스텔스 성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는데, 내부에 공대지 무장을 탑재함으로서 스텔스 성능을 유지한 채 은밀하게 천 km도 넘는 적의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가지게 됐다.
또 하나의 특징은 특수하게 제작된 2중 구조 탄두(Tandem penetration warhead)이다. SOM-J는 전차의 대전차 유탄(HEAT)과 같은 구조의 1차 탄두 폭발 이후, 2차 탄두가 폭발하여 깊숙한 지하의 표적 파괴가 가능하다. 미국이 개발한 무기 중에는 아직 이런 특징을 가진 것이 없어, 터키의 SOM-J 미사일은 개발이 완료되면 많은 수출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터키의 F-35 프로젝트 퇴출과 함께 이런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 기회를 노려서, 국내에서 연구 개발 중인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개조, 개량하여 F-35의 내부 무장창에 장착하는 사업을 추진한다면, 국내 전투기의 전투력을 증강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출 효자상품으로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는 우리의 차세대 대공미사일 시스템 시장이 확대될 기회가 열렸다. 이번 사태는 미국이 러시아의 대공무기에 대해서 얼마나 엄격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동맹국들에게 경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동맹을 유지하고 싶다면, 절대 러시아제 대공미사일은 구매하면 안 된다는 선언을 한 것과 다름없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2000년대 추진되던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사업, 일명 SAM-X 사업에서 러시아의 S-300 PMU 대공미사일을 후보 기종 중 하나로 선포하자 윌리엄 페리(William James Perry)국방장관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중동 및 일부 유럽 및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 동맹 혹은 협력관계이면서도, 싸고 성능이 좋다고 알려진 러시아산 대공미사일의 구매를 꾸준히 타진 중이다. 이들 국가에게 우리의 철매-2 PIP와 개발 중인 L-SAM 대공미사일은 ‘가격 대 성능비’ 매력을 더욱 높일 수 있는 반사 이득을 얻게 될 수도 있다.
2020년 국제 방위사업시장은 연초부터 빅뉴스들이 그야말로 쉴 새 없이 터지고 있다. 급변하는 방위산업 시장에서 우리 방위산업체들이 위축되기 보다는 기회를 잘 포착하여 큰 성과를 내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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