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메리츠종금증권이 대규모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을 통해 재무건전성 강화에 나섰다. 자본 대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무보증 관련 재무건전성을 강화하라는 금융당국의 주문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증권사의 재무건전성 강화를 주문한 금융당국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빚의 성격인 자본을 조달해 재무건전성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영구채는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갚아야 하는 채무의 성격이 강해 부채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12월 20일 사모채권형 영구채를 2000억 원 규모로 발행했다고 공시했다. 발행이율은 4.8%, 만기일은 발행일로부터 30년이다. 메리츠증권의 선택에 따라 만기를 연장할 수 있는 조건이다. 영구채 발행은 금융당국의 부동산 PF 규제와 관련이 깊다. 2019년 12월 5일 금융당국은 증권사에 내년 7월까지 부동산 PF 채무보증(우발채무) 규모를 자기자본의 100% 미만으로 줄일 것을 주문했다.
메리츠증권의 지난 2019년 9월 말 자기자본 대비 우발채무 비율은 211.5% 수준으로 145% 정도가 부동산 PF 대출 관련 우발채무다. 이 비율이 100%를 초과하는 증권사는 메리츠증권이 유일하다. 메리츠증권의 자기자본이 3조 6439억 원인 점을 감안하면 2000억 원의 자본 증가로 정부가 요구하는 비율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금융당국의 재무적정성 평가지표인 영업 순자본비율(NCR)은 지난 2019년 9월 말 기준 155.3%에서 10%포인트 상승할 전망이다.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판단 지표인 영업용순자본비율(구NCR) 역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정부나 신용평가사에서는 메리츠증권이 발행한 영구채의 차입금을 자본으로 본다”면서 “메리츠증권이 이번에 영구채를 발행하면서 2000억 원가량이 자본으로 편입돼 NCR, 구NCR 비율을 높이는 등 재무건전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메리츠증권이 영구채를 발행한 것을 두고 정부 규제를 피하려는 편법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영구채의 차입금은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그 성격은 부채로 봐야 한다는 시각 때문이다. 부채 성격이 강한 영구채가 자본으로 계상되면 투자자들에게 해당 기업이 자칫 재무건정성이 양호한 것으로 혼란을 줄 수 있다.
영구채는 만기가 없는 주식의 특징과 매년 배당이나 이자를 주는 채권의 성격을 결합한 채권이다. 일반적인 채권 발행으로 조달된 차입금과 달리 영구채의 유동성은 자본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에서도 영구채를 부채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은성수 위원장도 증권사의 영구채를 자기자본으로 인정하지 않는 인사 가운데 한 명이다. 은 위원장은 지난 2019년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영구채를 자기자본으로 늘리려는 증권사를 겨냥해 현행 법률을 개정해 영구채를 자기자본으로 포함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한 IB(투자은행)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꾸준히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은 위원장은 최근 “위험관리를 잘하더라도 부동산 관련 영업이 IB의 주된 업무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당시 은 위원장 발언이 메리츠증권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해석과 함께 각을 세운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동안 메리츠증권은 부동산 PF 우발채무에 대해 선순위채권 위주의 투자 전략으로 수치보다 리스크가 높지 않다고 강조했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이 이번에 영구채를 발행한 것은 구NCR 비율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정부의 부동산 PF 규제 강화 방안 수개월 전부터 준비해온 상황이라 정부 정책과는 무관하게 영구채를 발행했다”라고 밝혔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메리츠증권의 영구채 발행은 정부의 부동산 PF 규제 강화 취지를 무색케 하는 편법”이라면서 “사실상 부채 성격인 자본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오히려 시장을 왜곡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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