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나는 택배기사다. 매일 새벽 5시부터 저녁 6시 넘어서까지 200개의 물건을 배달한다. 새벽에는 5분이라도 더 자려고 아침밥을 거르기 일쑤고, 일을 하는 동안에도 점심을 챙겨 먹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 그마저도 15분 안에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요기 수준이다. 한국에는 나와 같은 택배기사가 약 5만 명 있다.
‘미안해요, 리키(원제 Sorry We Missed You)’의 주인공 리키도 택배기사다. 금융 위기로 다니던 건설회사가 파산하고, ‘3D(difficult·dirty·danger,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을 전전하다 친구의 권유로 택배기사 일을 하게 된다. 리키의 삶은 어제와 오늘 보고 겪은 나와 동료들의 일상을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배달 시간에 쫓겨 차에 소변통을 두고 다니는 것까지.
“개인사업자입니다. 우리가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합류하는 거예요. 우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사업이 번창하면,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화 도입부 택배회사 관리자 ‘멀로니’가 면접을 보러 온 리키에게 늘어놓는 말은 특수고용노동자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개인사업자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게 된 택배일은, 사정이 생기면 100파운드(15만 원)의 벌금을 내고 대체 기사를 고용해야 하고, 차가 고장 나도 달려와야 하고, 아들 학교에서 학부모 면담 요청이 와도 가지 못하고, 아들이 경찰서에 있다는 말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가면서도, “빌어먹을 개인 사정”이라는 면박을 당하게 만든다. 영화는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현대 사회가 낳은 기형적인 ‘개인사업자 택배기사’의 현실을 보여준다.
한국의 택배기사들은 어떨까. 영화 속에서 리키가 배송 중인 물건을 도난 당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병원에 있는 리키에게 관리자 멀로니는 휴대폰 등 고가품은 보험 적용이 되어 있어서 문제가 없는데, 여권과 스캐너는 보험 처리가 안 되니 비용을 지불하라는 통보를 한다. 우리 역시 ‘개인사업자’다.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합류’한 우리들은 물건이 없어지거나 망가지면 모든 책임을 떠안기 일쑤다. 우리를 보호해주는 안전장치는 어디에도 없다.
리키 부부는 맞벌이다. 아내 애비는 요양보호사 일을 한다. 요양 대상 고객들은 ‘제로 아워 프로젝트’라는 명목의 건별 수당으로 관리된다. 택배기사가 하루 몇 건 배송으로 평가되듯, 애비 역시 하루 몇 명을 돌보는지 숫자로 평가된다. 고객들과의 감정적인 교류는 금지돼 있다.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는 제도 때문에 하루하루 소진되어가는 애비는 이 모든 것이 자기 탓인 양 마음의 짐을 진다.
매일이 힘들고 지쳐 가는데, 희망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리키와 애비 부부, 부모의 방치로 비뚤어져가는 아들 셉, 정서적 불안이 점점 커져가는 딸 라이자. 이들의 일상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는 이해도 설명도 해법도 찾기 힘든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보는 것 같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리키)
영화의 원제목인 ‘Sorry We Missed You(죄송합니다만 안 계시네요)’는 고객 부재 시 택배기사가 집에 붙여두는 메모 문구다. 우리는 택배 물품을 고객 집 앞에 두고 사진을 찍어 문자메시지로 전송한다. 그래도 ‘감사하다’, ‘고맙다’는 답장이 오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기운이 난다.
내가 누리는 모든 편리함 뒤에는 누군가의 노동이 있음을, 택배 물품 뒤에도 택배기사들의 땀과 눈물이 있음을 한 번쯤 생각해주시면 더 좋겠다. 미안해요, 리키. 그리고 고마워요, 리키.
윤중현 택배기사·전국우체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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