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일본에서 거둔 성공 경험을 발판으로 롯데제과는 설립 초기부터 승승장구했다. 1974년 칠성사이다와 1978년 삼강하드아이스크림을 인수해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으로 개편했다. 1978년 한일향료(현 롯데푸드), 롯데햄우유를, 1979년 롯데리아를 설립했다.
식품업 외에도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1970년 은박지 생산을 위해 동방알미늄(현 롯데알미늄)을, 1973년엔 호텔롯데, 롯데기공, 롯데파이오니아를 설립했다. 1974년 롯데산업, 롯데상사를 발족했다. 1979년엔 롯데쇼핑을 설립했고, 호남석유화학을 인수해 중화학공업에도 진출했다.
1980년대 들어 사업 다각화 노선은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됐다. 1980년 롯데냉동 설립, 한국후지필름 인수, 1982년 롯데자이언츠 출범, 대흥기획과 롯데물산 설립, 1983년 롯데그룹 중앙연구소, 유통산업본부 설립으로 재벌그룹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1983년 말 24개 계열사, 직원 2만 명의 롯데그룹은 한국의 10대 재벌그룹에 진입했다.
호텔롯데, 롯데백화점 본점이 있는 을지로입구, 롯데월드가 있는 잠실, 국내 첫 민자역사인 롯데 영등포 역사는 모두 유동인구가 많은 요지에 자리했다. 부산 제2롯데월드, 대구역사 등도 해당 지역에서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신격호는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지켜보면서 부동산을 보는 남다른 눈이 생겼고, 한국도 동일한 과정을 반복할 것으로 예감했다. 그 결과 롯데는 가장 실속 있는 자리의 부동산을 차지할 수 있었다.
다만 부동산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특혜 논란 등 잡음도 상당했으나 결과적으로 문제없이 벗어났다. 호텔롯데와 롯데백화점 본점이 자리한 장소는 산업은행 자리였다. 산업은행 이전의 명분은 부족한 주차공간과 녹지 확보였는데, 그 자리에 호텔과 백화점이 들어설 수 있도록 용도 변경된 데 대한 의구심이 일었다. 또 당시 4대문 안 백화점 건립이 불가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10·26 직전 이를 허가했다.
1987년 12월 잠실 롯데타운 부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당시 한 국회의원이 제기한 바에 따르면, 현재 제2롯데월드가 들어선 서울시 소유의 잠실 땅은 매각 계획에 없었으나 신격호가 전두환 대통령을 방문한 뒤 전격적으로 매각됐다. 또 롯데가 매입한 가격은 당시 시가의 절반 수준이라는 의혹이 나왔다. 롯데는 합법적인 공개 입찰을 통해 취득한 땅이라 해명했지만, 응찰 기간을 10일만 주어 타 기업이 응찰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는 반론도 나왔다.
롯데월드타워 건설에도 무수한 뒷얘기가 나왔다. 롯데가 롯데월드타워 최초 사업계획을 서울시에 제출한 것은 1988년 11월이다. 사업계획을 검토한 서울시는 교통혼잡과 대규모 소매점 시설 허가 미비로 반려했으나, 롯데는 2년 뒤 돌연 100층짜리 건물을 짓겠다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특히 롯데월드타워 부지 관련해선 노태우 정부와 실랑이를 벌이며 법적 다툼을 벌일 끝에 세금 관련 소송에서 롯데가 이기기도 했다. 롯데월드타워는 성남의 서울공항에서 뜨는 공군 비행기와의 충돌 우려를 활주로 각도 변경 공사로 해결하며 2016년 완공됐다. 롯데월드타워는 ‘세계 최대의 관광 명소를 만들어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신격호의 의지로 시작된 사업이었다. 부동산 취득에서부터 완공까지 29년이 걸렸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 일곱 대통령을 거치며 사업이 이뤄졌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던 신격호 회장은 국내 여느 재벌그룹 회장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2017년 신동주·신동빈 형제가 롯데그룹 경영권을 두고 다툰 ‘형제의 난’ 이전까지 신격호는 공개석상에 나서지 않는 ‘은둔의 경영자’였다. 그는 한 달은 일본에서, 한 달은 한국에서 지내는 ‘셔틀 경영’으로 유명하다. 실제로는 일본에 5주, 한국에서 3주 정도를 지냈으며, 일본과 한국을 오갈 때도 수행원 없이 홀로 오갔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에 있을 때 머무는 호텔롯데 34층은 그의 집무실이기도 하다. 종종 그는 점퍼 차림의 평범한 모습으로 홀로 호텔롯데와 롯데백화점을 순시했다. 청계천을 자주 산책했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뒷얘기도 있다.
롯데그룹은 타 그룹과 달리 기획조정실의 역할이 크지 않다. 회장 주변에 밀착된 참모진이 없고 대부분의 구상이 신격호 회장에게서 나왔다. 계열사 대표이사라 하더라도 두 달에 한 번씩 하는 업무보고 외에는 신 회장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기업이 자기 역할만 잘하면 되지 굳이 오너가 나설 필요가 없다’는 신 회장의 평소 소신 때문이었다.
이런 실용주의적 사고관은 신격호 시대 롯데그룹의 성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롯데그룹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매물이 아니면 기업 M&A(인수합병)에 참여하지 않고, 참여하더라도 무리한 액수를 써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9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9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롯데는 자산총액 115조 원, 계열사 95개로 삼성·현대자동차·에스케이·엘지에 이어 재계 5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병철·정주영·최종건·구인회·김종희처럼 주요 재벌그룹의 창업주는 오래전 생을 마감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영면으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창업 1세대들은 모두 역사로 남게 됐다.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영결식은 22일 롯데 콘서트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우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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