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남미녀를 좋아한다. 그들이 내게 뭘 직접적으로 주진 않지만 미남미녀는 존재 자체로 보는 이들에게 어떤 흐뭇함을 선사하잖아? 이런 나를 주변에선 외모지상주의자라 부른다. 물론 순순히 인정하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가치에 외모를 우선으로 둔다고 오해하진 마시라. 그저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와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을 만들어낸 한국인의 DNA가 조금 진할 뿐이지.
그런 외모지상주의자지만 선천적인 ‘귀차니스트’에, 손끝만 베여도 세상이 뒤집어진 듯 호들갑을 떠는 엄살쟁이인지라 성형외과엔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2008년 시즌드라마로 ‘비포&애프터 성형외과’가 방영했을 때 무척 신기했다. 오, 저런 목적으로도 성형외과에 가는구나!
사실 ‘비포&애프터 성형외과(B&A 성형외과)’의 메인 캐릭터들은 다소 빤한 구석이 있다. 먼저 트라우마로 수술을 못하는 성형외과 원장 한건수(이진욱).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성형외과가 사채업자에게 넘어갈 위기라 돈이 되는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다. 건수를 대신해 B&A 성형외과의 수술을 맡게 된 최용우(고 김성민)는 미용 성형을 하려는 이들을 적극 만류하는 의사다. 어릴 적 신경섬유종증으로 기이한 얼굴을 가졌던 용우는 건수의 아버지에게 재건 수술을 받고 나서 새 삶을 얻은 이후 독일에서 유학하며 안면기형 성형의로 활동했다. 당연히 멀쩡한 얼굴을 단지 예뻐지고자 수술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수술을 권하는 건수가 이해되지 않는다.
돈만 밝히는 속물적인 의사와 미용 성형의 메카라 불리는 압구정동에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사명감 넘치는 의사의 대립, 재밌지만 다소 빤하다. 필연적으로 교훈이 가미될 기미가 보이잖아. 거기에 신입 간호사로 근무하게 된 실수투성이지만 발랄한 홍기남(소이현)을 가운데 둔 삼각관계, 유능한 홍보실장 윤서진(정애연)까지 엮어 사각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많이 봐온 전개다. 발랄한 코미디와 진지한 사회풍자를 담은 드라마적 전개, 성형외과를 차지하려는 사채업자 이억만(안석환)의 비현실적인 행동이나 억만에게 돈을 빌린 간호사 양정순(홍지민)의 자살 시도 등 과도한 설정이 뒤섞여 회차가 진행될수록 다소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B&A 성형외과’는 장점도 분명하다. 우선 성형외과를 타이틀로 내세운 만큼 확실하게 성형에 집중해 성형을 하려는 다양한 환자들의 속내를 드러낸다. 이건 유의미한 시도인데, 우리나라는 인구당 성형외과 의사의 비율이 세계 1위를 기록할 만큼 성형수술이 많은 ‘성형공화국임’임에도 아이러니하게 성형수술을 받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만 봐도 성형미인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조롱이거나 크고 작은 경멸이다. 누군가의 성형을 두고 농담과 가십으로 치부하는 이 나라에서 ‘B&A 성형외과’는 취업성형, 성전환 수술, 유방 확대 및 제거 수술, 안면 재건 수술 등 다양한 목적으로 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인상이 취업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취업준비생이 성형을 하려는 그 마음을 어떻게 조롱할 수 있을까. 남편에게 외면 받는 아내가 유방 확대 수술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넌 자존감도 없냐?’고 섣불리 비난할 수 있나? 성형수술을 하고도 댓글과 악플에 전전긍긍하며 성형중독 증상을 보이는 연예인의 마음은 또 어떻고. 성형을 비난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성형을 권하는 사회에 대한 풍자를 ‘B&A 성형외과’는 나름 충실히 표현해낸다. 다양한 환자 사례를 겪으며 미용 성형에 부정적이던 시선을 거두는 최용우에게 시청자들도 자연스레 감정이입하게 된달까.
성형수술을 받는 환자뿐 아니라 성형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들이 주인공인 만큼 성형에 대한 의사들의 태도나 가치관을 접하는 것도 기존 드라마에서 볼 수 없던 시선이며(보통 성형외과 의사는 돈만 밝히는 탐욕주의자 내지는 변태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잦았다), 매 회 에필로그 형식으로 주인공 중 한 명이 나와 여러 종류의 성형수술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도 신선했다. 쌍꺼풀 수술을 예로 들면 여러 가지 방법과 그에 따른 부작용, 최신 트렌드를 설명해주는 식인데, 성형수술에 1도 관심 없는 나임에도 필요에 따라 성형수술을 취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그 담담한 뉘앙스 때문에 오히려 관심이 가더라고.
여전히 ‘성형외과 갈 돈 있으면 그 돈으로 술 사먹지’ 하는 마음이 크고, 아픔은 1도 못 참는 엄살 탓에 성형외과 출입할 일은 앞으로도 요원해 보이지만, ‘쌍수’는 기본에 앞트임과 뒤트임을 세트로 받고 20대부터 보톡스를 맞는 이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나도 고통이 전혀 없는 수술과 시술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상담을 받아볼 테니까. 나의 만족을 위해, 적절한 선에서 성형수술을 선택하는 것에 타인이 비난할 권리도 없다고 보고.
그래도 ‘B&A 성형외과’를 보면서 한 번쯤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성형에 관심을 가지고, 성형을 하고, 또 그 성형을 비난할까. 성형을 권하는 건 정말 나 자신일까, 아니면 사회일까. 그런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B&A 성형외과’를 다시 볼 이유는 충분하다.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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