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온라인 어학 강좌를 신청하면 아이패드, 에어팟 등 고가의 전자제품을 함께 제공하는 이른바 ‘기기결합 패키지’가 인기다. 보통 1년 수강권을 구매한 학습자에게 태블릿 PC나 무선 이어폰 등을 사은품으로 증정하거나 혹은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스피킹맥스, 야나두, 리얼클래스 등 거의 모든 온라인 어학업체들이 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반응이 좋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업의 교육지원금 제도를 노린 꼼수 마케팅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현재 스피킹맥스는 애플 아이패드 프로, 에어팟2 등을 어학 강좌 패키지와 묶어 판매하고 있다. 야나두 역시 어학강좌에 삼성 태블릿 PC인 갤럭시 탭과 갤럭시 버즈 무선 이어폰 등을 함께 묶어 선착순으로 판매하고 있다. 파고다어학원 역시 자신들의 온라인 강의에 에어팟2, 마이크로소프트 태블릿PC인 서피스 고, 아이패드 7세대, 갤럭시 탭A를 얹어 판매 중이다. 리얼클래스와 차이나탄은 ‘아이패드 패키지’로 아이패드 7세대 10.2형와 아이패드 프로를 각각 패키지로 묶었다.
업체들은 기기결합 패키지에서 자신들의 강의와 전자제품 모두를 매우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전자제품이든 온라인 강의든 별도로 구매해도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
가령 에어팟2와 어학 강좌를 묶어 파는 스피킹맥스 에어팟2 패키지 가격은 38만 8000원이다. 그러나 에어팟만 필요한 사람이라면 정가 19만 9000원을 주고 에어팟만 구매하는 게 싸다. 또 영어 학습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조금만 눈여겨보면 패키지 가격보다 저렴하게 동일한 수강권을 구매할 수 있다. 스피킹맥스는 최근 기기결합 패키지에 포함된 온라인 수강권(1년)을 19만 9000원에 판매한 이력이 있다. 현재는 얼리버드 패키지란 이름으로 29만 9000원에 판매 중이다.
에어팟이 필요했던 A 씨는 광고를 보고 스피킹맥스 에어팟 패키지를 구매했다. A 씨는 “포털사이트에서 에어팟 패키지 상품이 딱 2시간만 선착순으로 판매된다는 배너 광고를 봤는데, 나는 에어팟만 필요해 포기했다”며 “그런데 며칠 뒤 똑같은 내용으로 배너 광고가 한 번 더 보이길래 ‘이참에 영어 공부나 해볼까’ 싶어 패키지를 구매했다. 하지만 몇 강 듣지 못하고 학습을 포기했다. 결국 30만 원대에 에어팟을 사버린 셈이다”며 후회했다.
실상 싸지 않은 가격에도 기기결합 패키지가 꾸준히 인기를 얻는 이유가 뭘까.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사내 교육지원금’을 핵심으로 꼽았다. 사내 교육지원금은 기업들이 사원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지급하는 복리후생비다. 교육지원금 혜택을 받는 직장인들은 패키지 결제 금액을 회사로부터 돌려받기 때문에 강의를 듣지 않아도 고가의 전자제품이 남는다.
예를 들어 A 금융사의 경우 월 10만 원씩 1년 동안 120만 원을 선결제·후청구 방식으로 교육비로 지급한다. 직원들은 120만 원짜리 수강권을 12개월 할부로 결제한 후 회사에 수강확인서, 출석증, 결제 영수증 등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면 결제 금액 일부 또는 전부를 돌려받을 수 있다. 기기결합 패키지를 수강할 경우 사내 교육비로 삼성의 갤럭시 탭, 갤럭시 버즈, 애플의 아이패드, 에어팟 등 최신 전자기기가 생긴다.
온라인 어학업체들이 구매자들의 요구에 따라 증빙 서류를 제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취재 결과 대부분 온라인 어학업체들은 사내 교육비 증빙 시 필요한 서류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스피킹 맥스는 사내 교육비 증빙을 기기결합 패키지 구매자에게 드리는 ‘특급혜택’이라며 대대적으로 홍보 중이다. 야나두 고객센터 역시 “회사에서 요구하는 출석률, 학습 진도율, 금액 등 모든 증빙자료를 수강생이 원하는 대로 제공한다”고 안내했다.
실제로 복수의 업체에 수강 상담을 한 결과 수강확인서에서 전자기기 제품명을 뺀다든지, 월마다 교육비 한도가 있는 직장인들을 위해 무이자 할부를 지원하는 등 편의도 봐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파고다 어학원 상담원은 “수강확인서를 수정할 수는 없지만, 기기결합 패키지의 사은품으로 증정되는 제품명은 수강확인서에서 제외된다. 다만 영수증에는 기기명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블로거는 ‘차이나탄’ 중국어 어학원에서 돈을 받고 ‘아이패드프로 12.9 구매? 사내 교육지원금이 있다면 이득’이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블로거는 “회사 교육지원금으로 어떤 걸 해볼지 고민하던 분 중, 어학 공부에 생각이 있었고 아이패드 프로 구매 의향이 있었다면 좋은 타이밍이겠죠? 물론 지원금 한도가 어느 정도 있겠지만 지원금으로 공부도 하고 아이패드도 얻을 수 있으니 고민해볼 만하다”라고 홍보했다.
기업 교육지원금으로 고가의 전자제품을 구입하는 꼼수가 널리 퍼지면서 직장인들의 문의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파고다 어학원 상담원은 “수강확인서 발급 문의가 꽤 있는 편”이라며 “확실하게 교육비를 환급받으려면 다니고 있는 회사 정책을 먼저 확인해보는 걸 추천한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 어학원 관계자는 “기기결합 패키지를 구입하면 직장인들은 교육지원금을 이용해 무료로 전자제품과 영어 강의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서로 ‘윈윈’이니 나쁘게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면서도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온라인 어학원들이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도 수요자를 유인할 방법이 전자제품밖에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고 덧붙였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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