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해 말, 법원의 결정 하나가 큰 주목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퀄컴 간 행정소송에서 법원이 공정위 손을 들어준 판결이었다. 주목을 받은 이유는 1조 원이 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었기 때문. 하지만 법원 내에서는 “온전한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특히 최근 들어 급증하는 조세 관련 소송에 대해 “몇 년 뒤에는 무리한 과세라는 판결이 잇따라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퀄컴 상대 공정위의 압도적 승리? “새로운 해석은 퀄컴 측 판단”
1조 300억 원. 공정위가 지난 2017년 1월 퀄컴에 내린 과징금이다. 38년 역사상 최대 규모 과징금이었다.
당시 공정위는 퀄컴이 지난 2009년부터 7년간 경쟁 칩셋 제조사에 특허 사용권을 주지 않고, 칩셋 공급을 볼모로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에게 라이선스 계약을 강제했다고 봤다. 즉,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 휴대폰 제조사에 라이선스와 관계없이 모뎀칩을 제공하고, 모뎀칩 제조사와 라이선스를 체결하도록 하는 등 시정명령도 내렸다.
퀄컴은 당연히 반발했다. 공정위 시정명령 다음달부터 10대 로펌 중 7곳 이상이 참여한 엄청난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그리고 1심 격인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부장판사 노태악)는 지난 12월 4일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 과징금이 적법하다고 판단하며, 1조 원이 넘는 과징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언론에서는 ‘공정위의 의미 있는 승리’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하지만 법원 내에서는 ‘절반의 승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봤을 때, 퀄컴의 시장지배력 부분에 대한 공정위 판단은 이미 예상됐던 부분이라는 점. 오히려 공정위가 기존 사안과 다르게 새롭게 적용한 부분에서는 공정위가 패소했다는 얘기다.
실제 서울고등법원은 퀄컴이 휴대폰 제조사와의 특허 라이선스 계약에 포괄적 라이선스, 휴대폰 가격 기준 실시료(로열티), 크로스 그랜트(개발한 특허를 무상으로 공유) 조건을 넣은 것을 문제 삼은 공정위 판단에 대해 “포괄적 라이선스를 휴대폰 제조사에게 불이익 거래를 강제한 것이라 볼 수 없고, 휴대폰 판매 실시료와 크로스 그랜트 조건도 불이익을 강제한 행위가 아니다”며 공정위 처분이 위법하다고 결론 냈다. 과징금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공정위가 비교적 ‘공격적’으로 처분한 부분에서는 퀄컴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서울고등법원 한 판사는 “이번 퀄컴 판결에서 다들 과징금만 주목하지만, 사실 법원에서 보기엔 유사 사건 사례 등을 볼 때 과징금 유지는 당연한 판단이었다”며 “되레 공정위가 공격적으로 새롭게 적용한 라이선스 부분에서 패소한 것을 감안하면 공정위가 ‘이겼다’고만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최근 들어 급증하는 과세
이처럼 정부(국세청, 공정위 등)가 공격적으로 과세를 물리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는 게 법조계 평이다. 관련 전문 법조인은 “법인세 등 정부가 최근 들어 적극적인 해석으로 과세를 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는데, 외국계 대기업 회계 담당자 역시 “올해 국세청 정기 조사를 앞두고 있는데, 벌써부터 회계법인에서 뽑아준 ‘예상액’이 예상치를 크게 상회해 회사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문제는 공정위나 국세청의 판단이 항상 ‘옳다’는 결론으로만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앞서의 서울고등법원 판사는 “퀄컴 사건에서는 과징금이 유지됐지만, 언론에 나지 않지만 정부가 새롭게 해석한 과세 방식에서 패소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가 소송 패소 및 일부 패소 결정으로 거둬들인 과징금을 돌려주면서 함께 준 이자 액수만 최근 5년 동안 1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공정위가 기업에 내준 환급가산금은 총 977억 5300만 원에 달한다.
앞서의 판사는 “법인세 등 재판에서 기업이 승소할 경우 돌려받는 금액은 100억 원은 물론, 많을 경우 1000억 원에 육박하기도 한다”며 “한번 과세를 거둬들이고 나면, 1심(서울고등법원)과 2심(대법원)까지 거치는 데 4~5년이나 걸리지만 워낙 큰 금액이라 기업들도 법원을 적극적으로 찾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과세나 과징금의 경우 ‘비율’ 싸움이 아니라, 위법한 적용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때문에 공격적인 과세가 나중에 독이 돼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관련 재판 참여 경험이 많은 판사 출신 변호사는 “조세 사건이 법원에 갔을 경우 다른 민사 사건처럼 비율의 싸움이 아니라, 적용이 가능하냐 아니냐의 판단 문제여서 기업 입장에서 승소하면 수백억 원을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다”며 “자칫하면 수년 뒤 과세한 돈을 돌려주는 것뿐 아니라 함께 지급하는 이자 비용이 엄청날 수 있다”고 말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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