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19년 12월 27일, 서울의 한 대학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 A 씨에 따르면 A 씨는 교통 중대 의무경찰로 근무하던 중 횡단보도 반대편에서 한 노인을 발견했다. 한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옷차림을 이상하게 여긴 A 씨는 노인을 인근 파출소로 인계했다. 알고 보니 실종 신고된 노인이었고 A 씨는 이와 관련해 표창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A 씨는 표창장을 학교에 제출해 봉사활동으로 인정받고자 했다. A 씨의 학교는 졸업을 하려면 일정 시간 이상의 사회봉사활동, 사회공헌 등을 해야 하는 인증제도가 있다. 그러나 학교 측에 문의한 결과 의경 신분으로 받은 표창은 봉사활동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A 씨에 따르면 학교 담당자는 “치안 유지는 의경의 의무라 의무수행을 사회공헌으로 보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A 씨가 억울했던 건 같은 행동이 신분에 따라 다르게 평가됐다는 점이었다. 일반 시민일 때는 ‘사회공헌’인 행동이 의경 신분으론 ‘의무’가 되어버리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이에 분노하는 이는 A 씨뿐만이 아니었다. B 씨는 댓글에 “군인이나 의경 신분이면 아무리 선행을 해도 ‘너넨 원래 그래야 되는 거야’ 하고 끝인 건가”라고 적었다. 군 복무자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의무경찰이 치매 노인을 인계해주는 건 ‘의무’?
커뮤니티 게시글에는 의경의 의무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사회공헌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댓글도 달렸다. B 씨는 “의경이 업무 시간에 한 일이라면 그냥 업무 아닌가. 이거 되면(봉사활동으로 인정되면) 대민 지원 나가서 수해복구하고 표창 받은 나도 봉사활동 시간 신청해야겠다”고 적었다. C 씨 또한 “의경은 원래 저런 거 하라고 있는 거 아니냐”고 적었다.
의경이 치매 노인을 인계해주는 건 ‘의무’일까. 문의 결과 경찰 관계자는 “그렇게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근무 지침은 의경들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가까운 지역 경찰관에게 안내하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해당 의경이 표창을 받았다면 현장에서 ‘특별한 공로’가 있다고 판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경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그는 “의경에게 독려와 칭찬을 하기 위해서 제공하는 게 표창”이라며 “당시 해당 의경이 노인을 보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문제는 없다. 이 의경이 좀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시민을 인계한 것이기에 충분히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표창장을 받은 게 사실이라면 그 자체가 ‘단순 의무를 이행했다’를 넘어 ‘사회공헌을 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표창도 정해진 정량에서 할애되기 때문에 선행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주어지는 게 아니다. 특별히 선행을 하는 경우에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이 의경 출신이라고 밝힌 D 씨는 댓글에서 “근무 중에 저 정도 하기 쉽지 않다. 나의 경우 정해진 임무를 명령받은 대로 수행하는 로봇과 큰 차이가 없었다”며 “부여받은 업무 외의 일이고, 대부분은 저렇게 능동적으로 행동 못한다”며 A 씨의 행동이 대단하다고 했다.
#학교는 정말 치매노인 인계가 ‘의경의 의무라서’ 봉사활동 인정을 안 했을까
댓글에는 학교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학교 측이 구체적이고 타당한 봉사활동 인정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익명으로 댓글을 쓴 E 씨는 “학교 측에서 ‘이런 사례는 없었다’, ‘(의경의)의무에 해당되는 일이니 힘들 것 같다’는 등 규칙과 관련 없는 소리를 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예외조항이 있다면 최소한 심사는 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A 씨의 주장과 관련해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기 때문에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이지 않나”며 “이와 관련해서는 답변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경 신분으로 표창장을 받은 경우 사회공헌으로 인정이 되는지를 묻자, 학교 관계자는 “(인증제도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신분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표창장을 왜 받았는지 내용이 중요하다”고 답변했다. 관계자는 “담당 부서에서 군인의 표창을 인정해준 경우가 있었지만 그 사람이 ‘군인’이라서 인정한 게 아니다. 군대 내 자살 시도를 막아 사회에 공헌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대단히 희생해서 받은 표창장이 아니라면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담당자의 말을 전했다.
학교 측은 “본인이 받은 표창장으로 학교 봉사시간을 인정해달라는 요청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다. 학교 입학 후 활동했으며 공식 증빙 자료만 있다면 군인이든 휴학생이든 상관없이 인증제도 인정을 요청할 수 있다는 말이다. 관계자는 “요청 이후 학교 측에서 심사 과정을 거친다. 표창 내용을 인정할지 말지는 학교에서 그때마다 다르게 판단한다. 내용의 경중에 따라서 다르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유하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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