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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현장] ② 인공지능과 모빌리티, 드디어 현실이 되다

기술에서 서비스로 진화 양상 '뚜렷'…PC 양대산맥, 인텔-AMD 격돌도 볼거리

2020.01.10(Fri) 13:15:25

[비즈한국] 라스베이거스 가전쇼, CES는 이제 명실상부 세계 최대 규모의 기술 박람회가 됐다. 공항을 비롯해 시내의 모든 인프라가 마비 수준으로 붐빌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일 뿐 아니라, 처음 공개되는 새로운 기술들이 모여드는 자리이기도 하다.

 

어느새 최신 기술들이 접목되는 가전의 범위는 엄청나게 넓어졌다. 올해 눈여겨봐야 할 기술 분야는 인공지능, 모빌리티, 반도체 등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그 활용 방법, 그리고 서비스로 진화함에 따라 기술을 접하는 관점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 그리고 현실

 

LG전자는 프레스 컨퍼런스를 ‘인공지능의 단계’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했다. LG전자가 바라보는 인공지능의 진화 단계는 모두 4단계고, 지금은 음성을 알아듣고 명령에 응답하는 1단계에서 학습을 통해 반복되는 상황에 미리 대응하는 2단계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제품에 대한 설명도 아니고, LG전자의 제품과도 직접 연결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LG전자는 왜 많은 시간을 쏟아 인공지능의 개론 같은 이야기를 설명했을까? 아마도 인공지능 기술의 방향성과 현재를 설명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삼성전자의 새로운 인공지능 프로젝트 ‘네온’​. 사진=최호섭 제공

  

인공지능 서비스는 여전히 CES의 중요한 주제다. 물론 삼성전자의 네온처럼 사람을 꼭 빼닮고,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사실 지금 단계의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말의 의미는 사람이 빚어낸 인간 수준의 지능은 아니다. 오히려 도구 개념에 가깝다. 이를 전제로 ‘우리가 인공지능 기술을 갖고 있다’는 것보다 세탁기의 모터, 커피 메이커, 얼굴 인식, 목소리 해석, 자동차의 제어 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석하고 풀어내는 도구로서 인공지능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사실 이를 조금 부정적으로 보자면 ‘어디에나 인공지능을 갖다 붙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이라는 말 그 자체가 강렬한 것일 뿐 아주 작은 문제들, 특히 우리가 일상에서 늘 접하는 가전제품의 아주 사소한 곳에까지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되고, 또 고민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심지어 CES 혁신상을 받은 20개 제품 중 하나는 인공지능을 품은 여성용 성인 기구였다.

 

CES 2020의 인공지능 기술은 적지 않은 거품, 혹은 허상들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그 자체도 인공지능의 지향점 중 하나인 대중화, 민주화에 다가가고 있는 과정으로 풀이해볼 수 있다. 지금 인공지능의 기술 진화 단계에서는 거창한 접근보다 오히려 사소한 접근이 좀 더 많아져야 하는 시기다.

 

#모빌리티의 서비스화, 산업화

 

이번 CES에는 ‘커다란’ 전시품들이 꽤 눈에 띄었다. 농기구로 유명한 존디어는 카메라로 담을 수도 없을 만한 크기의 농기구에 인공지능 기술을 넣었다. 그만큼 CES가 바라보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큼직한 ‘가전’의 대명사는 역시 모빌리티다.

 

사실 이 CES가 IT 모터쇼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가 흔히 보던 차량에 대한 관심은 크게 줄었다. 차는 그저 서비스와 플랫폼을 올리고 구동하는 밑바탕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흐름은 도로를 넘어 하늘길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가 선보인 에어택시용 드론 S-A1 실물 크기 모형. 사진=최호섭 제공

  

현대자동차는 아예 전시장에 차량을 한 대도 놓지 않았다. 대신 우버와 함께 개발한 에어택시의 실물 크기 콘셉트 모형을 가져다 놓았다. 현대차 스스로도 차량 기업이 아니라 모빌리티 기업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차량의 형태도 바뀌었다. 토요타가 2018년 공개했던 e팔렛은 더 진화했고 상용화할 수 있을 정도로 형태를 갖추었다. 이 차량의 기본은 공간에 있다. 토요타는 흔히 자동차라고 하면 떠올리는 유선형의 매끄러운 형태에 운전석과 파워트레인을 품은 전통적인 디자인을 벗어나 그냥 박스 형태로 설계했다. 도심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서의 차량이 바로 이 콘셉트의 핵심이다.

 

토요타의 e팔렛. 공간 중심의 박스카 설계를 가장 먼저 꺼내든 모델이며 현재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사진=최호섭 제공

  

현대자동차도 비슷한 차량 콘셉트인 ‘​S-링크’​를 발표했다. PBV(Purpose Built Vehicle) 라고 불리며, 기본적인 형태는 전기 모터 기반의 박스카다. 방처럼 널찍한 공간 안에는 병원이 놓이기도 하고 1인용 호텔, 물류 서비스, 쇼핑몰 등 전통적인 공간 서비스들이 담긴다. 병원이 집 앞으로 오고, 사무실 앞에 찾아온 쇼핑몰 차량에서 쇼핑을 할 수 있다. 서울 시내를 드라이브하면서 둘만의 저녁 식사를 하는 데이트 공간으로서의 자동차도 상상할 수 있다.

 

인텔 모빌아이의 암논 샤슈아 CEO는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Mobility as a Service)’를 말했다. 이제 운전과 안전을 비롯한 차량의 모든 역할은 각각의 서비스로 의미를 갖게 되고, 소프트웨어처럼 필요에 따라 적절한 서비스를 구입하거나 혹은 공유해서 쓰는 환경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다. 벤츠, 포르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일하면서 출근할 수 있는 차량, 저렴하게 탈 수 있는 에어택시 등이 더 큰 가치를 갖게 된다.

 

인텔 모빌아이의 암논 샤슈아 CEO는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Mobility as a Service)’를 말했다. 사진=최호섭 제공

  

자동차 기업들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냐에 따라 차량의 판매량이나 가격 등 시장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 우버를 비롯한 승차 공유만 해도 개개인이 직접 차를 사야 할 이유를 상당히 줄이고 있다. 사실 이번 CES 2020에서 자율주행은 더 이상 주목받는 주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CES의 풍경은 자율주행이 지배했다. 자동차 및 자율주행 기술 기업들의 목표는 2020년, 늦어도 2022년이면 3단계, 혹은 4단계 수준의 자동차가 다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요즘 회자되는 ‘2020년의 원더키디’처럼 그 시기가 다가왔다. 하지만 실제로 그 정도 수준의 자율주행은 시작되지 않았다. 비교적 복잡하지 않은 고속도로를 라서 안정적인 주행을 하는 레벨2+가 현재 자율주행의 수준이다.

 

기술 발전이 더디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자율주행 차량이 내는 사고를 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그에 따라 안전과 관련된 규제, 정책, 기술이 함께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한다. 또 사람과 자율주행 차량이 함께 도로에 다니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합의가 필요하다.

 

# PC “나 아직 죽지 않았다”

 

PC 시장이 위기라는 이야기는 지난 10년 동안 이어졌다. 한때 CES가 최신 PC 기술의 발표 무대였던 때가 있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등장으로 PC 시장이 기록적인 성장세를 멈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기로서의 PC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독차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컴퓨팅은 스마트폰뿐 아니라 자동차, TV, 심지어 냉장고로 확대되고 있다. 어디나 컴퓨터가 놓여 있음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이 CES이기도 하다.

 

PC의 시대는 과연 저물어가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PC 시장의 가장 뜨거운 라이벌인 인텔과 AMD는 이번 CES 2020을 통해 오랜만에 PC 그 자체로 맞붙었다. 그동안 모바일 프로세서, 인공지능, 클라우드, 자동차, 드론 등 PC가 아닌 곳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더 컸지만, 이번 CES는 펜티엄III, 애슬론을 두고 경쟁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AMD는 전력 효율과 성능을 높인 모바일 프로세서 ‘라이젠 4000’​을 공개했다. 사진=최호섭 제공

 

AMD는 1월 6일 미디어 컨퍼런스를 통해 모바일 프로세서와 게이밍 그래픽카드를 발표했다. ‘라이젠 4000’ 시리즈는 7나노미터(nm) 공정 프로세서로, 전력 소비를 낮추고 전력당 성능을 끌어올렸다. AMD가 주력으로 내세운 ‘라이젠 4800U’는 8코어 16스레드, 최고 작동속도 4.2GHz에 전력 소비는 15W 수준의 모바일 프로세서다. AMD 모바일이라고 하면 전력 관리에 애를 먹던 과거를 씻어버릴 만한 제품이다.

 

AMD는 이와 함께 RX5800XT 그래픽카드를 내놓으면서 ‘얼티밋 1080p 게이밍 그래픽카드’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엔비디아의 지포스 1660Ti를 노리면서 4k가 아니라 풀HD 해상도에서 최적의 게이밍 성능을 낸다는 것이다. 꽤 그럴싸한 마케팅이다.

 

두 시간 뒤 인텔이 곧바로 맞불을 놓았다. 인텔은 새로운 그래픽 코어인 ‘Xe 그래픽스’를 넣고 10nm 공정으로 만든 10세대 모바일 코어 프로세서 타이거레이크를 발표했다. 별도의 그래픽카드가 없어도 충분한 게임 성능을 내기 때문에 노트북의 크기를 줄이면서도 성능을 잡을 수 있다. 칩 숫자를 줄이면 그만큼 설계가 간단해지고 전력 효율도 좋아지게 마련이다.

 

인텔의 타이거레이크 프로세서. 10nm 공정과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수준의 그래픽 성능이 강조됐다. 사진=최호섭 제공

 

한계에 접어드는 것 아닌가 하는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에서 두 회사는 여전히 성능을 끌어올리고 있다. AMD는 인텔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고, 인텔 역시 AMD의 베가 내장 그래픽 프로세서와 맞붙을 만한 무기를 꺼내놓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게임’이라는 묵직한 콘텐츠가 녹아 있다.

 

전통적인 PC 파트너들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특히 대형 TV들이 게임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도 의미가 있다. LG전자는 새 TV 제품들에 엔비디아 G싱크 기술을 덧붙였다. 화면의 수직 동기를 제어해 한 장의 그림이 온전히 동시에 화면을 가득 채우게 하는 기술이다. 화면을 정밀하게 제어하지 못하면 짧은 순간에 화면 위와 아래가 찢어지면서 서로 다른 프레임을 보여주는 이른바 ‘테어링(Tearing)’ 현상이 나타나고, 화면이 커질수록 더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거의 대부분의 TV 제조사들이 PC를 붙여 게임 화면을 시연했는데, PC 게임이 TV의 역할 중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LG전자는 TV에 G싱크를 붙여, 게이밍 경험을 강조했다.​ 사진=최호섭 제공

미국=라스베이거스 최호섭 IT 칼럼니스트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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