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너희는 왜 정시에 퇴근하려고 하니?”
A 씨(여·27)가 일했던 개인 빵집 B 베이커리의 업주는 이렇게 말하며 직원들에게 ‘희생정신’을 강조하곤 했다. A 씨가 1년 넘게 정직원으로 있었던 이 가게엔 업주까지 포함해 총 4명의 직원이 있었다. B 베이커리가 장사가 안 돼 폐업할 때까지 일했던 A 씨는 일하는 동안 ‘눈 뜨고 코 베이는’ 느낌을 받았다. 부당한 근로 환경임을 알면서도 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업주에게 연차휴가 등에 대해 물으면 “5인 미만은 원래 해당 안 돼”라는 말이 돌아올 뿐이었다.
A 씨와 같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영세사업주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이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탓이다. 법정근로시간 제한,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수당, 연차휴가, 해고의 제한 등에서 보호받지 못한다. 생리휴가 사용의무도 없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하루 11시간 근무…근로시간 제한 없어 주 52시간 꿈도 못 꿔
청년세대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지난해 12월 12일, 127건의 사례와 상담을 바탕으로 ‘5명 미만 사업장 사례보고서’를 발표했다.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을 미이행한 사례는 총 223건(중복 포함), 그 중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33.3%으로 가장 많았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시간 제한이 없다. 하루 법정근로 시간인 8시간 근무 후 3시간 더 일해도 위법이 아니다. 문제는 초과근무시간에 대한 기본수당이 지급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자가 정해진 시간 이상으로 한 일에 대해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초과근무에 대한 기본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한 주에 15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주휴수당과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에 대한 기본수당은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에게도 보장된다. 그러나 A 씨와 동료직원 2명은 주휴수당과 초과근무에 대한 기본수당을 받지 못했다.
A 씨는 “입사 때부터 3개월 동안 2~3시간 추가로 일하는 건 기본이었다. 원래 근무 시간에서 한 시간 추가 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게 그나마 일찍 가는 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산수당은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지급할 법적인 의무가 없으니 바라지도 않았지만 업주는 기본수당조차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를 제기하는 A 씨에게 업주는 “정직원이라면 이 정도 희생은 해야지”, “정직원인데 알바처럼 굴지 마라. 왜 열심히 안 하느냐”는 등의 말을 서슴없이 뱉었다. A 씨는 “이런 말을 들으며 정직원으로 일해야 한다면 아르바이트 신분이 낫겠다고 느낀 적도 많았다”고 했다.
A 씨를 포함한 직원들이 부당한 상황을 참고만 있지는 않았다. “업주에게 계속 얘기를 했어요. 직원들 몸이 안 좋아졌거든요. 빵을 계속 만들려면 서 있어야 하고 움직임이 많으니 사무직보다 피로도도 크고 손목이나 관절이 안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어요. 퇴근시간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죠.”
끊임없이 요구한 결과 초과근무 시간은 줄어들었다. 보통 2~3시간이던 초과근무가 1시간으로 줄고, 매장 폐업 전에는 정시 퇴근이 지켜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추가 근무 시간에 대한 기본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건 여전했다.
A 씨가 다니던 빵집 직원들만 이런 부당한 처우를 받은 것은 아니다.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로 임금체불(61.5%)이 가장 많았다. 임금체불은 최저임금 미달, 주휴수당 미지급, 퇴직금이나 임금의 일부만 지급하는 경우 등을 의미한다. 청년유니온 보고서에 따르면 사장이 주휴수당까지 주면 장사 못 한다고 호소해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고 근무했다는 근로자도 있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9월 16일 근로감독 실시 대상으로 밝힌 사업장 2800여 개 중 5인 미만 사업장이 41.8%로 가장 많았다. 1년간 3회 이상 임금 체불이 신고돼 노동 관계법 위반이 확인된 사업장들이었다.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임금체불이 발생하는 등 근로 여건이 열악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나마 A 씨는 잘 해결된 경우에 속한다. 직원들이 업주에게 적극적으로 권리를 요구하고, 업주가 요구사항을 어느 정도 들어주면서 문제를 고쳐 나갔기 때문이다. A 씨에 따르면 길 건너편의 다른 개인 빵집 직원은 7시 퇴근이 일상이었다. A 씨는 “그 가게는 직원이 1명이었는데 많이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그 직원은 지금 아마 그만두었을 것”라고 전했다.
#연차휴가 보장 안 돼…쉬고 싶어도 쉴 수 없어
5인 미만 사업장은 연차휴가가 보장돼 있지 않다. 사용자가 휴가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청년유니온은 사례보고서에서 단 한 번도 개인 사정으로 쉬거나 지각한 적 없는 C 씨가 개인 사정으로 하루 휴가를 요청한 일화를 전했다.
업주는 C 씨에게 “지금 나를 협박하느냐”며 쉬지도 못하게 막았다. 월차휴가가 있다고 해서 입사를 결정했는데 일을 시작하고 보니 월차휴가가 없어서 쉬지 못한다는 근로자도 있었다. A 씨도 B 베이커리에서 연차와 관련해 황당한 일을 겪었다. 계약서엔 연차유급휴가가 적혀 있었는데 막상 물어보니 사업주는 “형식상 적어놨을 뿐”이라고 말했다.
A 씨는 “처음 1년 치 계약 시 계약서에는 ‘연차유급휴가를 근로법에 따라서 지급한다’고 되어 있었다. 1년 뒤 재계약 시 연차휴가에 대해 물어보니 업주가 당황하며 “5인 미만은 원래 적용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러면 왜 적어놓았느냐’고 반문했더니 그제야 ‘미안하다. 잘 모르고 형식상으로 적었다’고 말했다”며 “계약서에 연차휴가 지급이라고 쓰인 것을 보고 다른 (5인 미만) 가게와 달리 신뢰가 생겼는데 연차를 쓸 수 없다고 들으니 말문이 막혔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류하경 변호사는 “법적으로 연차휴가 의무가 없더라도 근로계약서에 노동자에게 유리한 부분이 적혀 있다면 계약서가 법보다 우선이다. 사업주는 근로계약서 내용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는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 구제받을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A 씨는 폐업 한 달 전 해고 예고를 받았고 퇴직금과 실업급여를 받았다. 그러나 해고를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경우도 있다.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을 ‘카톡(카카오톡)’으로 다른 직원에게 들었다”는 근로자도 있다.
5명 미만 사업장은 퇴직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1년을 1개월 앞두고 근로자를 부당해고해도 해고예고수당을 지급하겠다고만 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부당한 처우를 받더라도 근로자는 노동청에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 A 씨는 “(B 베이커리를) 신고하고 싶어도 오래 일을 하고 싶으니까 신고하기보다 업주와 따로 얘기를 하는 걸 선택했다”고 했다. 류하경 변호사는 “5인 미만 사업장은 ‘경영상의 이유’ 등을 들어 직원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기 때문에 신고를 따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기술직이라는 직종의 특성도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에 한몫한다. 제과제빵 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으면 기능장 등 개인에게서 기술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5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 취업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말도 있다. A 씨는 “이를 자영업자들이 알고 악용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B 베이커리에서 나온 후 다른 빵집에서 면접을 본 적이 있었다. 따로 근무시간을 적어놓지 않았는데 가보니 기본 근무시간이 10시간이었다. 업주는 “(여기서 배워서) 나중에 본인 가게 차릴 거 아닌가.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는 건 열정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A 씨는 “법정근로시간을 무시하고 그렇게 말하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주변에 제빵하는 사람들도 나중에 ‘내 매장’ 차리고 레시피 얻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더라”라고 했다.
A 씨는 또 “퇴근 시간 지키고 수당 다 주는 직장에 다니고 싶으면 대형 프랜차이즈나 호텔 제과제빵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기술을 배울 거면 5인 미만의 소규모 개인 빵집에서 일을 하는 걸 선택하고, 복지를 제대로 받고 싶으면 큰 곳으로 가라는 말이었다.
#청년유니온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전문가 “근로감독 더 철저히”
A 씨는 “일해보니 개인 빵집은 장사가 안 되고, 5인 미만 영세 사업주가 힘든 것 또한 알겠다”고 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로기준법 조항 일부가 적용 예외인 것도 영세 사업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1999년 헌법재판소 또한 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현실, 국가 근로감독 능력의 한계 등을 이유로 4인 이하 사업장에 근로 기준법 적용을 배제한 것에 대해 합헌 판단을 내렸다.
다만 A 씨는 근로 환경이 열악한 현실은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A 씨는 “5인 미만 사업장 사업주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하느라 직원들이 고생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정부가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 역시 “지난해 5월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경영수지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판매부진(83.5%)’이었다. 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 나갈 방법을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에서 찾을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청년유니온은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노동법의 묵인하에 개인에게 보장되어야 할 온전한 휴식시간을 잃어간다”며 “영세한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라고 해서 그가 누려야 할 권리까지 영세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청년유니온은 보고서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영세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을 강화할 것. 둘째, 위법을 자행하는 사업주의 처벌 수위를 강화해 법 준수율을 높이는 것이다. 장지혜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는, 영세하다고 해서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함”이라고 전했다.
셋째, 모든 사업장으로 근로기준법을 확대 적용하는 것이다. 청년유니온은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대해 “미적용과 미준수 사이에서 권리 보장의 혼란함을 감내했던 5명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가 노동법상 근로자로서의 권리를 되찾아가는 과정이므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라고 표현했다.
장 팀장은 세 가지 제언 중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꼽았다. 그는 “우연히 다른 형태, 규모의 사업장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해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부당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을 전면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하경 변호사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자를 보호하려면 노동부에서 근로감독을 적극적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류 변호사는 “굳이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정기적으로 점검을 해야 한다. 국가에서 근로감독관 수를 늘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감독을 실시하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유하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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