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청담동에 있는 L 성형외과, “성형 어플을 보고 왔는데, 20대도 질 필러 시술이 가능한가요?” 안내데스크에 서서 쭈뼛대며 물었다. 답변은 일사천리였다. “그럼요, 20·30대가 결혼 앞두고 많이들 하세요. 요즘은 비비브 레이저(질 타이트닝)를 많이 해요. 가격이 비싼 만큼 오래 유지돼요. 대·소음순 미백은 서비스로 해드려요.”
잠실의 R 산부인과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질 전용 필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부작용 사례가 없고 시술 과정도 간단해요. 바로 일상생활 복귀가 가능해서 점심시간에 잠깐 와서 하는 경우도 있어요. 요즘은 소음순 성형이나 레이저 질 타이트닝, 유두·대·소음순 미백 같은 여성 성형이 웨딩 검진에 포함돼 있어 젊은 분들이 많이 하세요.”
강남 S 산부인과는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자신감UP 질 필러, 빠른 질 수축 효과 질 레이저, 핑크빛 사랑스러운 색상 소음순 성형’이라는 이벤트 창을 띄워 놓았다. 전화 상담을 통해 부작용이 없는지 물었다. “동종 진피 콜라겐 필러라서 부작용은 당연히 없어요. 사람에 따라 3~10개(1개에 3cc)를 주사하기도 해요”라고 안내했다.
성형용 필러의 사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산부인과와 피부과, 성형외과 광고에 ‘질 전용 필러 사용’ 문구가 난무한다. ‘질 필러’는 출산, 노화 등의 이유로 늘어난 질에 볼륨을 만들어 좁혀주기 위한 시술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질 부위의 필러 사용을 허가한 바 없지만, 많은 병원이 홈페이지, 어플 등에 ‘질 전용 필러’라는 광고를 내걸고 홍보 중이다.
#식약처는 허가한 적 없지만…웨딩 검진에도 포함하는 추세
최근에는 예비 신혼부부를 상대로 병원이 홍보하는 ‘웨딩 검진’에 질 필러가 포함되는 등 20·30대 여성들이 시술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강남언니, 바비톡 등 성형 정보 앱이 늘어나면서 허위·과장 광고의 유혹도 늘고 있다.
2일, 3개의 성형외과 및 산부인과를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해 각 15~20분 동안 상담을 받아본 결과 식약처의 필러 사용 미허가나 수술(시술)의 위험성, 부작용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방문한 L 성형외과에서만 “출산 전 미혼 여성일 경우 유지기간이 짧은 필러를 추천한다. 자연분만으로 출산할 경우 질 벽에 동그란 산이 있는 게 그다지 좋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안내를 덧붙였다.
얼굴 주름 부위의 성형용 필러 사용은 과거에 비해 일반화됐지만 가슴 확대, 엉덩이·종아리 등 신체부위의 볼륨 확대, 뼈 힘줄 인대 및 근육 이식용(질 성형 포함)으로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제품이 없다.
보건복지부에서도 2016년 8월에 대한의사협회에 ‘의료법 제56조 제2항 제7호에서는 객관적으로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근거가 없는 내용을 포함하는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성형용 필러를 질 부위에 시술함을 광고하는 행위는 위 조항 위반 소지가 있다’는 공문을 보낸 적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위반 내용은 개별 광고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판단이 이뤄진다. 의료기기를 허가 범위를 벗어나 사용하는 사례는 식약처가 관리·감독한다”고 설명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아직 필러를 질 내 주사하는 경우로 부작용이 보고된 사례는 없다. ‘허가된 목적 외에도 의료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의료인의 진료권 안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효과 검증 없이 무분별하게 사용…‘돈 되는’ 여성 성형
하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은 우려를 표한다. 조병구 에비뉴여성의원 원장 겸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전 공보이사는 칼럼을 통해 “다른 치료 때문에 산부인과를 방문했다가 필러 시술 등의 권유를 받으면 별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결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필러 시술의 특성상 외부에서 물질이 주입될 때 주입 부위에 감염이 일어나거나 필러가 주변으로 퍼지면서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 내부에 퍼진 필러가 주변의 신경을 누르면서 성교통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필러를 제거하는 수술까지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분만 환자를 받지 않는 산부인과들이 병원의 생존 수단으로 여성 성형을 홍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A 산부인과 의사는 “분만 병원들의 경영이 어려운 편이다 보니 굳이 필요 없는 경우에까지 여성 성형을 권하기도 한다. 의료적·기능적 목적이 아닌 단순히 미용적 목적의 수술이나 시술은 지양해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B 산부인과 의사도 “가장 큰 문제는 허가받지 않은 필러를 질 부위에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식약처에서 허가받지 않은 ‘질 전용 필러’ 제품을 유통하고 사용한다는 사실을 버젓이 광고한다. 효과도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질 필러는 흡수가 워낙 안 되지만 눈에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으니 얼굴과 달리 문제를 삼는 경우도 적다.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해도 돈이 된다는 이유로 의견이 묵살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단계에서는 소비자들이 충분히 알아보고 수술이나 시술을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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