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는 2019년을 마무리하면서 실질성장률이 정부가 당초 잡았던 2.6~2.7%에 크게 못 미치는 2% 턱걸이가 예상되자, 그 이유로 세계 경제 둔화와 미·중 무역 갈등, 생산인구 감소 등을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쟁으로 청년기본법, 소상공인기본법, 벤처투자촉진법 등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정치권에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2017년 성장률이 3.2%를 기록하며 정부 전망치(3.0%)를 넘었을 당시에는 대외 경제 영향이나 정치권 지원 등 외부 요인을 쏙 빼고 정부가 정책을 잘해서 좋은 성과가 나왔다는 자랑을 했다. 새로운 시대를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경제성적표가 좋으면 내 덕, 성적표가 나쁘면 남 탓으로 돌리는 과거 정권의 행보를 똑같이 하는 셈이다 .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020년 경제정책방향’ 자료 중 ‘2019년 경제정책 평가’를 보면 2019년 성장률 하락 원인 중 하나로 당초 예상보다 악화된 대외 여건을 들었다. 하방 리스크로 작용한 대외 여건으로 세계 경제의 성장과 교역이 계속 악화되는 글로벌 동반 둔화 양상, 미·중 무역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 지속,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인한 반도 업황 회복 지연 등을 지목했다.
국내적인 요인으로는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온라인 판매 증가, 기술진보 등 구조적 전환 가속화가 경기에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19년 경제 악화 원인 중 하나로 대외 여건 악화를 들었지만 한국만 유독 성적표가 나빴다는 점에서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주요 20개국(G20)과 비교해 3분기 성장률이 크게 둔화됐다. G20 국가의 3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은 평균 0.7%로 나타났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절반 정도인 0.4%였다. 정부가 성장률 하락 국내 원인으로 지목한 인구감소와 기술진보 등도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문제들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 해 전인 2018년 경제 상황을 평가할 당시에도 어려운 대외 여건과 함께 투자 약화 등 경제활력 저하, 산업 구조개혁 지연, 고령화 등을 이유로 들었다. 정부 전망치(3.0%)보다 낮은 성장률(2.7%)에 기업과 해외를 문제 삼은 것이다. 하지만 기업 투자 창출이나 산업 구조개혁을 이끌어 내는 게 정부 역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정부가 자기 일을 제대로 못하고 남 탓만 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자기 책임을 강조한 때도 있다. 성장률(3.2%)이 전망치(3.0%)보다 높게 나온 2017년 때다. 당시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로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해 일자리 확충과 사회안전망 강화 등 소득주도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경제의 질적 고도화를 위한 혁신성장 전략이 구체화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거시경제가 안정적 성장세를 유지하며 구조적 전환을 뒷받침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정부 정책 덕에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당시 문 대통령도 정부 정책 성과 자랑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 27일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등을 통해 “새 정부 출범 후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우리 경제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었다”며 무역 규모 1조 달러, 경제성장률 3%대 회복 등을 성과로 내세웠다.
그런데 정부는 바로 한 해 뒤인 2018년에 대외 여건과 기업 투자 부진을 이유로 경제가 나빠졌다고 밝혔다. 소득주도 성장이 제 궤도였다면 대외 여건 악화에도 내수가 경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혁신성장과 공정경제가 잘 됐다면 기업 투자가 부진에 빠질 이유가 없다. 2년 뒤인 2019년에는 잘 되고 있다던 구조적 전환을 성장 부진 원인에 추가했다.
잘 되면 내 덕, 잘못되면 네 탓은 문재인 정부가 비판하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해왔던 행태의 빈복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2013년 성장률이 3.2%로 정부 전망치(3.0%)를 넘어서자 박근혜 정부는 ‘추가 경정예산 등 경기회복을 위한 정책 노력 등으로 경제의 회복 조짐이 점차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2014년에 성장률이 3.2%로 정부 전망치(3.9%)를 밑돌자 ‘세월호 사고 이후 경기회복과 경제 혁신 모멘텀이 약화됐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사회적·경제적 파장을 수습하기보다 경제 부진의 책임을 세월호 사고에 떠넘긴 것이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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