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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도 유리천장' 여성 창업자가 더 투자 받기 어렵다

금융사 투자 스타트업 40개 중 여성 대표인 곳은 4개 불과…젠더 관점 투자 지원 '절실'

2020.01.03(Fri) 17:08:32

[비즈한국] 유리천장이 직장 내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창업한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투자를 받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비즈한국’이 자체 집계한 지난해 스타트업 투자 상위 4개 금융사 현황을 보면 한화생명, 교보생명, 삼성그룹, KB금융이 투자한 스타트업은 총 40개. 이 중 대표 성별이 확인되지 않는 한 곳을 제외하고 여성이 창업한 기업은 4개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성 중심적인 금융업계의 보수적 문화가 암암리에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사 혹은 보험사가 상대적으로 남성 대표가 많이 포진된 기술이나 하드웨어 분야 스타트업에만 투자한 것도 아니다. 금융·​보험사는 스타트업이 보유한 ‘이용자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보험 상품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에 플랫폼이나 서비스 중심의 스타트업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투자받은 스타트업 역시 남성이 대표인 기업이 대다수였다.

 

스타트업 업계에도 유리천장은 존재한다. 여성이 창업한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투자를 받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물론 여성은 남성에 비해 창업 비율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부의 ‘2018년 창업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 창업자 비율은 38.8%다. 이에 대해 KB금융그룹 관계자는 “남녀차별은 아니다. 신청자 자체가 적고, 선정 기준에 따라 고르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교보생명 관계자도 “여성 대표 기업을 일부러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여성 창업 기업, 투자 검토 과정서 암암리에 배제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암암리에 여성 대표가 있는 스타트업이 차별받고 있다는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보험사와 협업을 진행한 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관계자는 “금융·​보험사에서 투자사 선정을 위해 협업을 할 때 ‘남성 대표가 있는 스타트업을 고르라’고 지시할 때도 있다”며 “스타트업 투자 업무에 주력하는 팀이 새롭게 꾸려져도 팀원이 이 업계에만 계속 있던 40~50대 남성인 경우가 많다. 투자 유치가 보수화되는 데 이러한 영향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여성 대표들 역시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사나 보험사 혹은 투자사는 수소문해 스타트업과 협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과정에서 여성 창업 기업이 배제되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 한 스타트업 여성 대표는 “창업을 할 때는 여성이라서 주목도 많이 받고 특혜도 있지만, 정작 투자를 받는 데는 알게 모르게 장벽이나 차별이 있다”며 “투자는 창업자의 의지나 성향을 많이 따지는데 여성 창업가는 선호되지 않거나 투자자들과 만남 기회 자체가 현저히 적다”고 설명했다.

 

투자사에서 암암리에 여성 대표가 있는 스타트업을 평가 절하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2018년 채용 성차별 철폐 공동행동 회원들이 은행 채용과정 성차별 점수 조작과 관련해 시위를 하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박정훈 기자


어느 정도 비즈니스가 안착된 여성 기업도 협업이나 투자 성사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창업한 지 10년이 된 이여영 월향 대표는 “차별을 넘어 배제되는 수준이다. 협업이 성사되는 게 당연한 상황에서도 여자라서 같이 일을 안 하겠다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에는 바지사장으로 남자를 내세워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한다”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 여성 사업가들도 많다. 분명히 성차별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오히려 자기비판을 하는 여성 대표들을 보면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참신한 스타트업 원하면서 ‘남성 중심적 사고’는 유지

 

금융업계를 비롯한 투자사가 여성 창업 기업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여성이 사업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인식 탓이 크다. 앞서의 스타트업 여성 대표는 “투자자들에게 결혼이나 출산 계획을 질문받는 여성 창업가들도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관계자는 “이때까지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확연히 낮았고 여성 대표도 많이 없었기 때문에 투자자들 입장에서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낮은 듯하다”며 “아무래도 출산과 육아가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이는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고정관념이라는 비판도 분명하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투자를 할 만큼 자본력이 있는 기업은 현재 남성 중심적인 기업이 대다수다. 기존 조직에서 여성을 배제한 논리를 그대로 새로운 조직인 스타트업에 가져오는 것”이라며 “여성들이 내는 아이디어는 여성 친화적인 시장에서 오히려 블루오션일 수 있다. 남성 중심적 사고가 박혀 있는 기업이 한 번에 변화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국가나 지자체에서 여성 창업가에 대한 펀딩을 확대하는 방안이 대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보험업계를 비롯한 투자사가 여성 창업 기업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장기적으로 여성이 사업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인식 탓이 크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젠더 관점을 벗어났다는 지적도 있다. 사진=소셜벤처 임팩트 투자사 에스오피오오엔지가 2018년 3월 발간한 ‘젠더 안경을 쓰고 본 기울어진 투자 운동장’ 보고서 캡처


‘젠더 관점의 투자’가 절실하다는 주장도 있다. 소셜벤처 임팩트 투자사 에스오피오오엔지가 2018년 3월 발간한 ‘젠더 안경을 쓰고 본 기울어진 투자 운동장’에 따르면 젠더 평등적 관점에서 투자 심사를 진행한 결과, 투자에 선발된 여성 창업 팀 비율은 0%에서 33%로 크게 늘었다. 유보미 심사역은 “우리나라 여성 창업가 투자 유치율은 11%, 금액 면에서는 전체 투자금액의 4%에 불과하다. 젠더 관점의 투자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높은 성과를 투자자에게 약속한다”고 밝혔다.

 

다만 성별 문제를 떠나 결국 사업 아이템이 중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대표는 “투자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101곳인데 그중 여성 창업 기업은 6곳이다. 선정 기준인 기술력·​시장 크기·​대표 역량에 따라 선발한 결과”라며 “관건은 ‘좋은 기술’이다. 그러나 참신한 아이템을 내세우는 여성 창업 기업을 찾기 힘든 것도 사실”이라고 의견을 표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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