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020년, 경자년이 밝았다. 2019년을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보신각 타종행사 현장을 비즈한국이 직접 찾았다.
이른 시간부터 이날이 타종 행사날임을 실감하게 했다. 6시 30분경 시청역 인근에서 종각역까지 걸어가는 길, 청계전 주변 일대는 이미 푸드트럭과 점포들로 가득했다.
9시가 넘으니 청계천 인근 카페에 사람이 가득해졌다. 오늘만 24시간 운영한다고 했다. 자리가 없어 밖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경기도에서 올해 처음 제야의 종 행사를 직접 보러 왔다는 A 씨는 “TV로 가족끼리 집안에서 보기보다 친구와 함께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 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밖에서 커피를 마신다”고 말했다.
종각역 지하로 들어간 기자의 눈에 노숙인이 보였다. 5번 출구 계단 바로 앞에 노숙인 두 명이 박스들과 짐 옆에 서 있었다. 잠을 청할 시간이지만 행사 때문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불편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10시 즈음 셔터를 내리니 그때 자면 된다”고 답했다.
10시가 되자 종각역 내에서 “4번 출구를 폐쇄할 예정”이라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찰 4명이 4번 출구 앞에 서서 빨리 나오라고 손짓했다. 출구 셔터를 내린다는 말에 미처 역 안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다. 기자 또한 달리는 인파에 떠밀려 4번 출구 밖으로 나와야 했다.
종각지하쇼핑센터에는 미처 추위를 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보였다. 문을 닫지 않은 몇몇 가게에서 장갑, 귀도리, 수면양말을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여대생 무리는 단체로 수면양말을 사 매장 앞에서 양말 위에 덧신기도 했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B 씨는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장갑을 많이 사갔다”고 했다. 광저우에서 온 세 명의 남성은 한 가게에서 장갑을 샀다. 그들은 “한국 날씨가 이렇게 추운지 몰랐다”며 구매한 장갑을 끼고 돌아섰다.
쇼핑센터에서 지하철 출구로 이동하자 타종 행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종각역 ‘태양의 정원’에 앉아있던 조 아무개 씨는 남자친구 배 아무개 씨를 따라 타종행사에 처음 참여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 스태프로 행사에 참여했던 배 씨는 “그땐 주말이어서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평일이라 직장 때문에 스태프 대신 참가자 신분으로 왔다”고 말했다. 조 씨는 “오늘 자정이 되고 종이 치면 30세가 된다”며 “아홉수가 끝나고 30세가 되는 날인만큼 특별히 기념하고 싶어 보신각을 찾았다”고 했다.
10시 51분, 9번 출구 앞에서 ‘빅이슈’ 잡지를 파는 C 아무개 씨는 “춥지만 거리에 사람이 많으니 (잡지를) 더 판매하려 한다”고 했다. C 씨는 “평소보다 2배 정도 팔았다”며 원래는 10시 되면 들어가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많으니 12시나 1시까지 있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외국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타이완에서 엄마, 삼촌, 이모와 함께 온 D 씨(20)는 몰려드는 인파에 걸음을 멈췄다. D 씨는 “우리는 항상 타이완에서 새해를 보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 보내는 첫 새해가 기대된다”며 “가족과 함께라 신나고 행복하다”고 했다.
다른 가족은 보신각 근처 뒷골목에서 행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5일 동안 여행 와 있었고 내일 타이완으로 떠난다”며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새해를 맞고 싶어 왔다”고 했다.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도 많았다. 독일에서 온 E 씨와 일행 세 명은 “K 대학교에서 3학년으로 공부 중인데 때 친구들과 추억을 쌓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춥지만 밤을 샐 예정이라고도 했다.
S 대학교에서 교환학생 4개월째라는 프랑스인 말로(Maldo) 씨는 “이게 한국에서 가족들끼리 TV로 많이 시청하는 유명한 행사라고 들었다”며 “많은 인파가 모일 것과 추울 것은 예상하고 나왔고 충분히 즐겼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인 F 씨는 이번 해에 방글라데시 친구 6명과 함께 한국의 전통적인 새해맞이를 경험하러 보신각을 찾았다고 했다. “보신각에서 종을 치는 행사가 한국의 전통이라고 들었다”며 “한국 사람들은 새해를 어떻게 맞이하나 보고 싶었다”고 했다.
타종 행사 현장에 왔어도 사람들 속에서 행사를 보는 대신 멀찍이 떨어져 새해 분위기만 느끼고자 하는 이들도 있었다. 11시경, 보신각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인근 카페는 5층까지 빈 자리 없이 가득 차 있었다. 한 커플은 “여기서도 종소리는 들릴 텐데 굳이 사람들을 뚫고 그 앞에까지 가야 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 옆 남은 빈자리 하나에 앉은 김 아무개 씨(22) 또한 “친구를 기다리는데 (친구가) 도착하면 함께 앞으로 갈지 카페에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여기에 있어도 친구랑 새해 느낌을 낼 수 있을 텐데 (보신각 앞은) 사람들이 많아 가까이 가지 않을 예정”이라고 했다. 김 씨는 올해 처음 친구와 보신각을 찾았다. 내년부터는 취업준비와 대학공부 때문에 직접 타종 행사를 볼 기회는 올해 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타종 참여자로 펭수가 꼽힌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다. 펭수는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시민 추천 타종 인사 중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그러나 펭수가 제야의 종 행사에 맞는 참여자인지에 관한 논란도 일었다.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디지털 소외 계층의 의견은 배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었다. 김 씨는 펭수가 “뜻 깊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맞이하는 것에 펭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반면, 펭수가 나온다고 즐거워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G 씨는 아내, 딸과 함께 올해 처음 행사를 보러 나왔다. 펭수 이야기를 꺼내자 옆에 있던 열한 살 딸이 먼저 반응했다. 딸과 함께 올해 처음 행사를 보러 나왔다는 G 씨는 “펭수가 종을 치는 걸 딸이 좋아하니까 좋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새해 시작에 가족과 함께인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타종 행사가 가까워진 11시 40분, 카페를 나와 거리로 나서자 2019년의 마지막 20분을 보내는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쪽에선 풍물놀이가 계속됐다. 서울소재 대학의 중앙동아리에서 왔다고 소개한 H 씨는 “매년 연례행사로 도로에서 풍물놀이를 하고 있다. 원래 서울시에서는 (꽹과리 등을) 못 치게 되어 있는데 오늘만 시의 제재 없이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풍물패의 꽹과리 소리는 귀가 찢어질 듯 컸지만 주변을 걷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몇몇은 리듬을 타며 풍물놀이 모습을 핸드폰에 담기도 했다.
타종 15분 전, 사람이 급격히 늘어났다. 지옥철을 타듯 사람들이 앞뒤로 부대끼며 의지와 상관없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11시 49분경 방금 풍물패를 구경하던 곳은 의경에 의해 차단됐다. 경찰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빠질 때까지 통행을 막는다”고 말했다. “나가려면 나갈 수 있지만, 한번 나가면 행사가 끝날 때까지 돌아올 수는 없다”고 했다.
스크린에 펭수가 나오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펭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옆에 있던 20대 여성들은 “펭수 너무 귀여워”를 연신 외치기도 했다.
자정을 코앞에 둔 시간, 카운트다운과 함께 첫 타종이 시작됐다. 박원순 서울시장, 펭수를 포함한 시민 대표 12명이 총 33번의 타종을 했다. 기자가 있던 곳은 함성 소리에 묻혀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5분 정도가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빠지기 시작했다.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해 미리 가려는 듯 보였다.
사람들 사이를 해쳐 나가던 한 40대 부부는 “올해도 잘살아보세”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웃음 지었다. 하늘에선 진눈깨비가 조금 흩날렸다. 그렇게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유하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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