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 해가 끝날 때마다 우리는 올해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는지를 추억하며 다음 해에는 어떤 일들이 있을지 미리 가늠해본다. 이제 곧 2019년이 끝나고 2020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필자도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천문학자들에게 가장 특별했던 순간을 되돌아보고, 내년에 일어날 특별한 천문학적 사건들을 미리 확인해보려고 한다. 다른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별똥별이나 일식과 월식 등 단순한 천문 현상 예보가 아닌, 앞으로 천문학자들이 들려줄 새로운 발견의 맛보기 스포일러를 소개한다!
#[2019 최고의 콜라보] 인류 처음으로 확인한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그림자
블랙홀은 말 그대로 빛조차 탈출하지 못하는 암흑의 어두운 구멍이다. 아주 높은 밀도로 막대한 양의 질량이 모여 있는 블랙홀은 그 강한 중력으로 시공간에 아주 깊은 구멍을 뚫어놓았다. 특히 우리 은하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은하 중심에는 아주 거대한 초거대질량 블랙홀이란 괴물이 살고 있다.
다양한 은하 중심에 살고 있는 이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그 주변을 맴도는 별과 성단들의 움직임이나 블랙홀 주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물질 분출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존재가 확인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런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실제 민낯을 직접 사진으로 찍어서 초상화를 담아낸 적은 없었다.
드디어 지난 2019년 4월, 천문학자들은 남극에서 북극에 이르는 지구 전역에 있는 다양한 망원경들을 총동원한 사건 지평선 망원경(EHT, Event Horizon Telescope)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그 거대한 괴수의 민낯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지구 전역의 망원경들이 힘을 합쳐 거의 지구 사이즈만 한 아주 거대한 망원경의 효과를 발휘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으로 확인된 초거대질량 블랙홀이 살고 있는 타원은하 M87을 찾아가는 여행. 영상=Credit:ESO/L. Calçada, Digitized Sky Survey 2, ESA/Hubble, RadioAstron, De Gasperin et al., Kim et al., EHT Collaboration. Music: Niklas Falcke
앞서 벌어졌던 지구 전역의 망원경을 총동원해 중력파를 일으킨 중성자별의 충돌 현장을 적외선에서 가시광선, 자외선과 전파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자기파 영역으로 한꺼번에 관측한 일에 버금갈 만큼 엄청난 협력의 성과다. 이제 거의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단 하나의 천체, 단 하나의 천문학적 현상을 동시에 함께 바라보고 연구하는 지구적 협력 프로젝트가 더 자주 진행되어가는 추세다.
원래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중심, 궁수자리 방향에 위치한 초거대질량 블랙홀을 먼저 포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워낙 많은 별들로 시야가 방해받는 탓에 우리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모습은 촬영하기가 더 까다롭다. 그래서 우리 은하 바깥, 처녀자리 은하단 중심에 위치한 아주 거대한 타원은하 M87의 중심에 살고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민낯을 먼저 공개했다.[1]
2019년 4월 공개된 인류의 첫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민낯, 그 멋진 초상화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예측한 것과 거의 동일한 모습으로, 블랙홀 주변에 왜곡된 시공간을 따라 왜곡되어 있는 주변 빛줄기들의 흐름이 남긴 둥근 형상이 담겨 있었다. 마치 붉은 도넛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블랙홀의 모습을 추억하며, 이제 천문학자들은 매년 4월이 오면 도넛을 함께 먹으며 블랙홀데이를 기념하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다. 2020년 4월에도 함께 도넛을 먹으며,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축하하자.
# [2019 최고의 개척자] 처음으로 도달한 태양계 가장 머나먼 세계
지난 2015년 7월 전까지만 해도 태양계 외곽을 돌고 있는 명왕성은 지금껏 인류의 탐사선이 단 한 번도 그 곁을 방문해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2006년 지구를 떠나 빠른 속도로 태양계를 가로질러 날아간 탐사선 뉴호라이즌스는, 9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사히 우주를 항해한 끝에 인류에게 처음으로 명왕성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었다.
뉴호라이즌스는 명왕성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명왕성 너머, 크고 작은 작은 소천체 얼음 부스러기들이 가득 뒤섞여 맴돌고 있는 태양계 가장자리 소행성들의 영역, 카이퍼벨트를 향해.
명왕성을 스쳐지나간 후 4년 동안 무사히 예정된 궤도를 따라 여행을 이어간 뉴호라이즌스는, 2019년이 시작되었던 1월, 역사적인 여행을 또 한 번 해냈다. 지금껏 그 어떤 인류의 탐사선도 직접 카이퍼벨트 영역의 소천체를 가까운 거리에서 지나가며 그 천체의 실제 모습을 제대로 확인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2019년 1월, 뉴호라이즌스는 태양계 가장자리, 가장 먼 세상에서 맴돌고 있는 작은 카이퍼벨트 소천체, 아로코스(Arrokoth) 곁을 지나갔다.
처음으로 인류의 탐사선이 방문한 첫 카이퍼벨트 천체, 아로코스의 멋진 모습. 눈사람을 닮은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영상=NASA, JHU APL, SwRI
흥미롭게도 당시 처음 관측된 아로코스의 모습은, 작은 둥근 천체 두 개가 딱 맞붙어서 합쳐진 눈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원래 천문학자들은 각각의 조각에게 울티마(Ultima)와 툴레(Thule)라는 이름을 붙여, 둘이 합쳐 ‘한계를 벗어난 가장 먼 세상’이란 뜻의 ‘울티마 툴레’란 별명을 붙였다. 하지만 이후 이 천체의 공식적인 명칭은 아로코스로 결정되었다.
아로코스를 계속 지나가면서 새롭게 확보한 관측 데이터에 따르면, 사실 아로코스는 둥근 천체 두 개가 합쳐진 모습이 아니라 납작한 원판 두 개가 합쳐진 모습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원래 천문학자들이 예상했던 기존의 태양계 형성 모델로는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낯선 모습이었다. 뉴호라이즌스의 태양계 외곽 탐사 덕분에 이제껏 베일에 싸여 있던 태양계 형성 시나리오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새로운 증거가 조금씩 확보되는 중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 역시 여전히 아직 완전히 완성되지 않은, 한창 진화 과정을 계속 겪고 있음을 보여준 여정이었다.[2]
이번에는 내년 2020년에 천문학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를 전망해본다.
#[2020 유망주 1] 화성 탐사 선발대 ‘마스 2020’
올해는 지난 1969년 인류가 처음으로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다시 한 번 달에, 그리고 달을 넘어 화성에 발자국을 남기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NASA 같은 국제 연구기관뿐 아니라, SpaceX와 버진 갤럭틱 등 다양한 민간 우주 기업에서도 사람을 화성에 보내기 위한 프로젝트를 경쟁적으로 진행 중이다.
화성은 과거 지구와 가장 환경이 비슷했으리라 추정되는 곳이다. 이미 천문학자들은 화성 표면에서 흐르는 액체 상태의 물을 발견했고, 오래전 지구 못지않게 많은 물과 대기권이 화성에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다양한 지질학적인 간접 증거들을 확보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바로 화성에서 지구 밖 또 다른 외계 생태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또 가까운 미래,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정착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화성을 눈여겨보고 있다.
본격적으로 유인 탐사선이 화성으로 출발하기 전, 천문학자들은 화성에서 생명이 살 수 있고, 또 먼 과거 생명이 존재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기 위해 또 한 번 로봇 탐사선을 보낼 예정이다. 2020년 7월 화성으로 출발할 예정인 마스 2020(Mars 2020)는 바로 이 멋진 새로운 탐사를 위한 선발대가 될 예정이다.
현재 거의 완성되어 테스트를 받고 있는 마스 2020의 실험 주행 영상. 영상=NASA/JPL-Caltech
마스 2020은 앞서 화성에 착륙해 화성 대기 중 메탄과 이산화탄소의 계절 변화를 발견하고, 화성 표면에서 다양한 물이 흐른 흔적을 발견한 큐리오시티(Curiosity) 탐사선의 발전된 버전의 쌍둥이 로봇이다. 외관상 거의 흡사한 형태로, 큐리오시티와 마찬가지로 화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표면의 흙을 파내 탐사 로봇 안에 탑재된 작은 분석 장치로 표토 샘플 속에서 생화학적 반응의 흔적이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마스 2020은 2020년 지구를 떠나, 그다음 해 2월 18일 화성의 지제로 크레이터(Jezero Crater)에 착륙할 예정이다. 이곳은 49km 크기의 분화구로, 과거 물에 잠겼던 적이 있는 지형으로 추정된다. 지제로라는 이름은 호수를 의미한다. 과거 물에 잠겼던 지형인 이곳에는 많은 양의 진흙과 함께, 물이 차 있던 당시 살았던 고대 생명체의 흔적도 남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감질맛 나는 간접 증거만 보여주었던 선배 탐사선들과 달리, 마스 2020이 고대 생명체의 화석 같은 멋진 발견을 할 수 있을지 기대해보자.[3]
마스 2020 탐사선이 착륙할 예정인 지제로 크레이터 주변 지형을 보여주는 영상. 이곳에 착륙할 예정인 탐사선은 이곳 주변에 남아 있는 과거 물이 풍부했던 화성 생태계의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할 예정이다. 영상=https://mars.nasa.gov/mars2020/
#[2020 유망주 2] 태양계 가장 안쪽 수성을 향해 ‘베피콜롬보’
2019년 올해가 태양계 가장 바깥 세상, 명왕성과 아로코스의 해였다면, 다가오는 2020년은 태양계 가장 안쪽 행성 수성과 금성, 그리고 태양계의 정중앙 태양의 새로운 해가 될 예정이다. 앞서 2018년 10월 유럽우주국은 새로운 수성 탐사선 베피콜롬보(BepiColombo)를 발사했다.
현재 베피콜롬보 탐사선은 예정된 궤도를 따라 순항하고 있다. 다가오는 2020년 4월, 탐사선은 지구 곁에서 플라이바이를 통해 속도를 올린 후, 10월 금성 곁을 처음 지나가며 본격적인 태양계 안쪽 행성들의 탐사를 시작하게 된다. 마지막 목적지인 수성에는 2025년 12월 도착할 예정이다. 베피콜롬보는 수성 주변을 맴돌면서 수성의 지형을 탐사할 위성과, 자기장을 탐사할 위성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사실 수성은 태양계 가장 마지막 바깥 세상만큼이나, 가장 연구가 덜 된 미지의 세상 중 하나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는 탓에 온도가 높고, 또 태양계 바깥으로 탐사선을 날리는 것보다 태양계 안쪽으로 탐사선을 보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더 까다롭기 때문이다.
수성 탐사선 베피콜롬보가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도착하는 여정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영상. 앞으로도 무사히 예정된 궤도를 따라 수성에 도착하길 응원하자! 영상=ESA/ATG medialab
그래서 아주 많은 탐사선들이 바퀴자국을 남기고 있는 화성과 달리, 금성과 수성은 지금껏 제대로 된 착륙선 하나 방문한 적이 없다. 과거 금성에 간 소련의 베네라 탐사선은 예상치 못한 금성의 막대한 대기압에 의해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찌그러져 파괴되어 버렸다. 수성에는 지금껏 단 두 대의 궤도선이 방문했다. 1973년 발사한 매리너 10호(Mariner 10)와 2004년 발사한 메신저(MESSENGER). 이들은 간접적인 관측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착륙선이 안정적으로 착륙해 화성처럼 자유롭게 탐사를 해본 적이 없다.
앞서 수성을 방문한 메신저 탐사선의 데이터로 완성한 수성 전체 표면 지도. 천문학자들은 미션을 모두 마친 메신저를 2015년 4월 30일 수성 표면으로 추락시켰다. 영상=NASA/Johns Hopkins University Applied Physics Laboratory/Carnegie Institution of Washington
아쉽게도 이번에 수성을 향해 가고 있는 유럽우주국의 베피콜롬보도 수성 표면에 직접 착륙하는 탐사선은 아니다. 다만 앞서의 탐사선들에 비해 베피콜롬보는 특별한 미션을 함께 수행할 예정이다. 수성의 지형과 자기장을 통해 수성의 지질학적 내부 구조를 분석할 뿐 아니라, 태양 곁을 맴도는 수성의 정확한 궤도를 측정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또 한 번 정밀하게 증명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태양 주변에서 맴도는 수성 궤도의 근일점이 조금씩 밀리면서 움직이는 궤도의 천이를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통해 설명했다. 이는 오랫동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태양계 안에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관측적 증거로 여겨진다. 하지만 직접 수성 곁에서 수성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측정하면서 아인슈타인의 계산을 확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9년 초거대질량 블랙홀 관측에 이어 2020년에도 아인슈타인의 우주가 한 번 더 증명될 것으로 기대된다.[4]
멋진 발견이 많았던 2019년 한 해를 되돌아보며, 2020년에도 위대한 천문학적 발견이 이어지기를 함께 기대해보자.
[1]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6/6472/1434
[2]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9-00006-2
[3] https://mars.nasa.gov/mars2020/
[4] https://sci.esa.int/web/bepicolombo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
[사이언스] 크리스마스 특집, 은하들의 특별한 사랑법
·
[사이언스] '외계행성 사냥꾼' TESS의 블랙홀 사냥
·
[사이언스] 태양 표면으로 날아간 21세기 '이카로스'
·
[사이언스] 우리 은하의 '어린이 시절'은 어땠을까
·
[사이언스] 우주 난쟁이 '왜소은하'는 어디로 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