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연중 최대 축제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왔다. 우리나라의 설날·추석처럼, 온 가족이 모이는 크리스마스에는 명절 연휴 한가운데 서울 도심이 그렇듯 썰렁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의 강남역 사거리, 홍대입구 같은 호화로운 거리가 크리스마스 연휴에 일제히 문을 닫은 ‘고요한 풍경’을 상상해보면 얼추 비슷하려나.
같은 이유로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불 꺼진 집이 많다. 크리스마스 전후로 길게는 연말까지 이어지는 긴긴 연휴 동안 부모가 사는 곳을 방문하거나 온 가족이 여행을 가는 탓이다.
베를린의 대표적 크리스마스마켓인 젠다르멘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 사진=박진영 제공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라는 말이 이곳에서는 누구에게든 예외가 없다. 누군가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위해 많은 이들이 자신의 크리스마스는 반납한 채, 심지어 밤늦도록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 한국의 크리스마스를 생각해보면 인간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마트 직원도 카페 매니저도 레스토랑 서버도 옷가게 주인도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도 일을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12월 한 달 반짝 오픈하는 크리스마스 마켓마저 문을 닫는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상으로 침묵에 가까운 크리스마스다.
공식 크리스마스 연휴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이 기간 동안 어딜 가든 문을 열었는지 몇 시에 문을 닫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움직여야 실패가 없다. ‘오픈’이라고 돼 있는데 막상 가보면 문을 닫은 경우도 있고, 오픈 사실을 확인하고 갔는데도 조기 영업 종료라며 금새 쫓겨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우리 가족은 베를린에서 맞는 세 번째 크리스마스임에도 매년 헛걸음 하는 일이 한 두 번은 생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집에서 가까운 ‘브라이트샤이트 광장 크리스마스 마켓’을 산책 삼아 다녀오기로 한 우리 가족은 마켓 근처에 가서야 작년과 같은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크리스마스 마켓인데 설마 크리스마스 이브에 문을 닫겠어’라고 생각하는 의식의 흐름마저 똑같았다.
첫 해에 겪었던 우여곡절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2년 전 베를린에서 맞은 첫 번째 크리스마스 시즌, 마트가 24일 오후부터 26일까지 일제히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나는 동네 레스토랑마저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아 연휴 기간 내내 부족한 식재료로 버텨야 했다. 그때는 베를린 중앙역 안의 마트는 연중무휴임을 떠올리지 못했던 터라, 풍요로워야 할 크리스마스 연휴에 강제로 다이어트를 하며 지내야 했다.
실패의 경험들 덕에 이제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어디를 가야 실패 확률이 적을지 나름의 노하우가 쌓였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곳 인근의 카페와 레스토랑 중에는 더러 영업을 하는 곳이 있고, 극장가는 100% 문을 여니 연휴 중 영화 관람은 필수 코스가 됐다.
올해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문 닫은 크리스마스 마켓을 뒤로 하고 쓸쓸히 집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크리스마스 당일인 오늘, 절대 실패하지 않을 플랜을 세웠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포츠다머 플라츠에 위치한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대체로 연중무휴인 스타벅스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인근 광장에 마련된 도심 속 작은 썰매장에서 썰매를 타기로 한 것. 완벽할 뻔했지만 스타벅스의 영업 종료가 오후 3시 15분임을 몰랐던 탓에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마지막 남은 미션 한 가지. 저녁 식사를 위해 ‘오픈한’ 레스토랑 찾기만 남았다. 현재 시각 크리스마스 당일 저녁 6시, 구글맵에서 ‘현재 영업 중’ 필터로 걸러낸 인근 레스토랑 몇 군데에 전화를 걸어 영업 중인지, 몇 시에 문을 닫는지, 좌석이 있는지 등을 체크해야 한다. 한국이었다면 ‘크리스마스 특가’ 가격도 확인 필수지만, 여기는 그런 ‘꼼수’는 전혀 없다.
베를린에의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흘러간다. 내년 이맘 때, 갈 곳이 넘치고 불야성을 이루는 한국의 크리스마스를 맞으면 문득 이곳의 고요한 크리스마스가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불편하지만, 모두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따뜻한 풍경이.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굿바이 현대산업개발" 반포3주구, 시공사 취소 결의 두 번 한 까닭
·
'할랄 인증' 장벽에도 제약사들이 인도네시아로 달려가는 까닭
·
[현장] '카페베네' 이름으로 주점 운영이 가능하다고?
·
만화책에서 '염산 테러'라니…아동도서 '혐오 표현' 논란
·
압류 피해 차명계좌 운용해도 무죄? A 학원 불기소된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