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주에 있는 모든 은하들은 그저 가만히 자기 자리에 홀로 박혀 있는 외로운 섬 우주라고 하기는 어렵다. 우주라는 거대한 망망대해를 돌아다니는 크고 작은 배로 가득한 대항해 시대의 우주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우리 은하 인근의 우주 바다에는 그 곁을 돌아다니는 또 다른 함선 안드로메다은하가 있다. 이처럼 서로의 중력에 붙잡힌 채 서로의 곁을 떠돌아다니는 은하들은 긴 세월에 걸쳐 중력에 의해 진한 스킨십을 나누게 된다.
#은하들의 사랑은 흔적을 남긴다
이러한 은하의 역학적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은, 그저 외롭게 홀로 떠 있는 솔로 은하가 아니라 곁에 다른 은하들을 함께 둔 채 얽혀 있는 한 쌍의 은하 커플을 연구한다. 그리고 커플 은하들이 솔로 은하들에 비해서 모습과 진화 양상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한다. 우주에서 솔로의 삶과 커플의 삶에는 놀라운 차이들이 발견된다.
충돌을 겪는 은하들은 다양하게 변화한다. 형체가 일그러질 뿐 아니라 은하 안에서 별들이 태어나는 효율도 굉장히 크게 달라진다.
거대한 두 은하가 함께 만나 서로의 중력으로 뒤섞이며 병합 과정을 거치면, 두 은하는 서로의 강한 중력으로 상대 은하가 품고 있던 가스 외투를 한 겹씩 벗겨낸다. 이때 주변에 그 흔적을 남긴다.
가끔, 분명 격렬한 상호작용을 겪고 있지만 충돌하지 않은 척 새침을 떠는 은하 커플들도 볼 수 있다. 그냥 눈으로 볼 때는 은하 두 개가 비슷한 방향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은하들 사이에 벌어진 뜨거운 스캔들을 입증하는 가스 물질의 흔적도 천문학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
하지만 은하와 은하 사이를 이어주는 수소 분자 가스를 관측할 수 있는 전파 망원경으로 다시 보면, 두 은하 사이로 복잡하게 이어진 사랑의 가스 구름 오작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두 은하가 (중력적 사랑을) 했는지, 안 했는지 결국 꼬리가 잡히기 마련이다. 수억 광년의 은하적 규모에서 벌어지는 스캔들을 파헤치는 천문학자들의 집착과 노력은 연예인들의 열애설에 울고 웃는 웬만한 네티즌 수사대 뺨친다!
#중요한 건 가스 물질의 유무
두 은하가 강한 중력에 의해 서로에게 다가가면서 하나로 합체하는 과정에서, 상대 은하를 향해 어떤 방향과 속도로 그리고 어떤 궤도를 돌면서 접근했는지에 따라 사랑의 결과가 달라진다.
실제로 은하들이 갓 충돌하기 시작한 모습을 보면, 굉장히 다양한 포즈를 발견할 수 있다. 납작하게 퍼져 있던 은하의 정중앙을 향해 곁의 인접한 다른 작은 은하가 돌진하면서 거의 정통으로 파고 들어가 큰 은하의 둥근 외곽만 남긴 채 관통하는 흔적을 남기는 경우도 있다. 거의 완벽하게 수직으로 납작한 두 나선 은하가 부딪히면서 가느다란 십자가 모습으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커플의 사랑을 떠올리면 그저 두 육체, 질량 덩어리의 자세와 접촉 그 자체만 신경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을 나누는 동안 오고가는 달콤한 대화다. 어떤 자세, 몸놀림이 상대를 더 흥분시키는지 동물적 노하우에 신경을 쓰는 동안 정작 더 중요한 사랑의 조미료, ‘대화’의 메커니즘은 잊곤 한다.
각자의 입 속에서 흘러나온 달콤한 말 몇 마디는 공기를 타고 파트너의 귓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일종의 유체 역학의 과정처럼 다가온다. 그 날 밤의 분위기, 방 안의 온도와 습도 등 주변의 환경에 따라 대화의 효율은 크게 달라진다. 물리적인 접촉이 없어도, 그저 어스름한 촛불 곁에서 속삭이는 아름답다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심장을 때리는 충격파를 형성할 수 있다.
#건조한 사랑과 촉촉한 사랑
우주에 분포하는 서로 인접한 은하 커플들도 서로의 강한 중력으로 파트너를 잡아당기면서 거대한 하나의 질량체로 합체한다. 그때 은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유체 역학적 현상이 은하들이 사랑의 결과를 결정한다. 유체 역학적 현상을 좌우하는 가스의 양이 충분할 때야만 은하들의 사랑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가스가 부족한 메마른 은하들끼리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경우를 건조한 병합(Dry Merger)라고 한다. 그저 두 질량체가 물리적으로 만나는 건조한 물리적 관계일 뿐, 새로운 별이 태어나는 등의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가스를 가득 머금은 은하들끼리의 충돌, 바로 촉촉한 병합(Wet Merger)이야말로 새로운 별들이 태어나고 역사를 쓸 수 있는, 우주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진정한 사랑이다. 중력과 마찰 계수 따위만 계산하는 잡지 속 저렴한 뉴턴 역학적인 팁들은 은하들의 사랑에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천문학자들은 실제로 관측된 멀리서 벌어지는 은하들의 결합을 컴퓨터 속 모델링으로 재현하기 위해 시뮬레이션 속 가상의 은하들을 이리저리 비비고 던지고 충돌시키면서 실제 관측된 은하 커플들의 모습과 비슷한 상황을 연출해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직관적인 뉴턴 역학에 비해 아직 유체 역학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하다. 단순히 방정식 몇 줄로 서술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중력과 달리, 유체의 운동은 아주 작은 입자들이 무작위하게 공간을 돌아다니며 주변 환경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그 복잡 미묘한 흐름을 상세히 재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실제 충돌 중인 은하 커플의 모습과,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한 은하 커플의 모습을 비교한 영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각 은하 커플이 사랑을 나눈 지 얼마나 지났는지, 어떤 진화 단계를 겪고 있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영상=Courtesy of NASA/ESA/Hubble Heritage Team/STScI/AURA/A Evans/U of Virginia/NRAO/Stony Brook U/K Noll/J Westphal
#수억 년에 걸친 은하의 사랑
이처럼 은하들도 우리들 못지않은 아름답고 달달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어쩌면 고작 몇 년 사랑을 나누는 우리들에 비해, 수억 년에 걸쳐 우주적인 세월 동안 서로의 결을 지키고 끝내 반드시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는 은하 커플들이야말로 진정한 사랑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우주의 은하들에서 사랑의 롤 모델을 찾아본다.
만약 연인과 커플링을 만들면서 둘만의 사랑을 약속하는 멋진 문구를 반지에 새기고 싶다면, 은하들의 일련번호를 새기는 것을 추천한다. 가장 추천하고픈 은하 한 쌍은 NGC4039와 NGC4038이다.
이 은하들은 지구에서 약 6000만 광년 떨어진 채 한창 격렬한 스킨십을 나누고 있다. 두 개의 은하가 수억 년 전 서로의 중력에 의해 이끌리면서 각자 갖고 있던 납작한 원반 모양이 해체되고, 하나의 은하로 합체하는 그 중간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두 은하의 중심부를 기준으로 각자 가지고 있던 나선팔이 풀어지면서 길게 늘어진 모습이 마치 곤충의 더듬이를 닮았다고 해서, 안테나 은하(Antennae galaxy)라고도 부른다. 특히 이 두 은하가 만나면서 겹쳐진 두 중심부의 모습이 사랑스러운 하트와 비슷해 천문학자들에게 사랑받는 명소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은하로 가득한 섬 우주에서는 두 은하 섬이 맞붙어 거대한 섬으로 재탄생하는 현장이 너무나 많다. 두 은하들의 충돌은 기본적으로 수억 년의 시간 규모로 벌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볼 때는 마치 상호작용하는 상태 그대로 고정되어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시속 수백 킬로미터의 빠른 속도로 서로를 향해 접근하는 중이다. 다만 은하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 빠른 충돌의 낌새가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지난 수억 년 동안 다가왔고, 앞으로도 수억 년 동안 계속 함께 주변을 맴돌며 하나로 합체하게 될 두 은하의 이름, 이 우주에서 영원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커플들에게는 단연코 최고의 롤 모델이 되지 않을까?
꼭 안테나 은하가 아니어도 좋다. 이 우주 곳곳에서 적나라한 스킨십과 사랑을 나누고 있는 은하들의 이름이 여러 커플들의 언약의 대상이 되어 각자의 반지와 목걸이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더욱 아름다운 저 우주적인 사랑에 동참하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1]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b0d7c
[2]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0004-6256/141/3/87
[3]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b3401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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