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발표한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 분석 결과를 두고 전자담배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폐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이 극소량 검출되거나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정부가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13일 오후 2시 한국전자담배산업협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전자담배 사용자의 불안감을 증폭시킨 점과 업계 종사자의 생계에 막심한 피해를 준 점을 근거로 법적 대응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12일 정부는 국내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 중 일부에서 폐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고된 비타민E 아세테이트 성분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비타민E 아세테이트는 식품첨가물이나 화장품 원료 등으로 사용되는 성분인데 전자담배를 통해 흡입하면 오일 성분이 폐에 축적돼 급성 폐렴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는 이 물질의 인체 유해성 연구 결과가 나오는 내년 상반기까지 액상형 전자담배의 제조·수입·유통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이날 전자담배산업협회는 정부의 발표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협회는 △미국 사례와 달리 위험 물질이 아예 없거나 극소량 검출됐고, △식약처의 분석 방법에 신뢰성이 없고, △가장 시급한 것은 검출된 성분의 유해 기준을 정하는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일반 담배와 비교해 액상형 전자담배가 안전하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일반 담배는 원래부터 독성물질이 있다는 게 알려져 있었고, 전자담배는 유해성이 없다는 데서 출발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와 비슷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전자담배산업협회 “검출량 너무 적고, 실험 방법에도 의문”
협회가 가장 주목한 점은 ‘수치’였다. 식약처가 문제시한 국내 제품의 비타민E 아세테이트 검출량이 미국 폐 질환 의심 환자 사용 제품보다 최고 880만 분의 1 적다는 것. 협회는 국내 유통 제품 모두에서 미국 액상전자담배 사용자의 폐 질환 관련 주요 원인 물질로 지목된 대마유래성분(THC)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병준 한국전자담배산업협회 회장은 “153개 검사 제품 중 전 제품에서 THC가 나오지 않았고, 비타민E 아세테이트는 10%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검출됐다”고 말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쥴랩스 ‘쥴팟 크리스프’, KT&G ‘시드토박’ 등 국내 153개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 중 13개에서 비타민E 아세테이트가 0.0~8.4PPM 검출됐다. 반면 지난 5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발표한 예비 검사 결과에 따르면 THC 검출 제품 중 49%가 비타민E 아세테이트를 희석제로 사용했고, 검출농도는 23만~88만 PPM이었다. 중증 폐 질환 의심 환자 관련 제품 705개 중 64%에 달하는 451개에서 THC가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협회는 정부의 실험 방법에도 의문을 표했다. 보통 액상형 전자담배는 기화 상태로 사람에게 흡입되는데 식약처는 기화한 연기 대신 액상 원료 성분을 분석했다는 것. 그러면서 협회는 몬스터즈의 ‘엑스팟 엔솔’을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에 분석 의뢰한 결과 비타민E 아세테이트가 검출되지 않았다며 자료를 제시했다. 이 제품은 비타민E 아세테이트가 0.2PPM 검출됐다고 식약처가 발표한 액상형 전자담배다.
협회 측은 정부가 극히 미량 검출된 결과를 침소봉대하는 것은 액상형 전자담배에 과세하려는 속내가 있을 거라 봤다. 현재 액상형 전자담배는 궐련형 전자담배나 일반 담배보다 세금이 적게 매겨진다. 지난 3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액상형 전자담배 쟁점 정리’ 보고서에서 액상형 전자담배에 부과되는 세금이 일반 담배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고 밝혔다.
# 덜 해롭다? 미국서 유해 사례 다수…정부 주도로 유해성 철저히 따져야
협회 주장처럼 유해물질의 기준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미량 검출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고,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로운데 무슨 상관이냐’는 의견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애초에 일반 담배보다 유해성이 없다고 입소문을 탔고 소비자들 역시 ‘안전하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최근 들어 액상형 전자담배도 일반 담배 못지않은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기준 미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와 관련해 사망한 사람은 48명, 폐 손상자가 2291명에 이른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적잖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 등으로 약 1400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1994년 유공(현 SK케미칼)과 옥시 등이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하기 시작해 2006년 처음으로 원인불명의 어린이 폐 질환 환자들이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의 역학조사는 5년 뒤인 2011년 시작됐고 2016년에야 판매가 중지됐다. 지난 10월 박능후 복지부 장관도 “제2의 가습기살균제 비극을 막겠다”며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폐 질환 유발 가능성이 보고된 가향물질 3종 역시 검출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디아세틸은 29개, 아세토인은 30개, 2,3-펜탄디온은 9개 제품에서 검출됐다. 6개 제품에서는 이 세 물질이 동시에 나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디아세틸과 아세토인을 흡입 시 폐질환 가능 성분으로 경고했다. 영국은 디아세틸과 2,3-펜탄디온을 액상형 전자담배에 사용 금지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철저한 선제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정부의 판매 중지 권고는 사실상 강제 사안이 아닌 터라 규제 공백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식약처 관계자는 “우선 액상형 전자담배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를 파악한 것이고 추후 기화한 연기로도 실험할 계획이다. 유해물질에 관한 기준치는 복지부가 검토 중”이라며 “실험이나 분석을 전자담배산업협회와 협동해서 하기는 무리라고 본다. 정부에서 보다 철저히 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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