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시 고교농구대회서 시합 중 발등뼈 3개가 골절됐지만, 대회를 주최·주관한 ○○시나 ○○시 농구협회로부터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부상을 당했을 때도 의료진·의료팀 등이 와서 살펴보지 않아 부모가 직접 관객석에서 내려와 아이에게 파스를 뿌려줬다.”
9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내용이다. 지역 방송사 보도에 따르면 농구협회는 부모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리고서야 합의 의사를 밝혀왔다.
2016년부터 생활체육진흥법 시행령 5조에 따라 생활체육대회를 개최할 때 기준에 맞는 손해보험이나 공제 가입이 의무지만, 여전히 이를 지키지 않는 곳이 많다. 이에 전국 주요 대학교, 지자체와 지자체 농구협회가 주최·주관한 농구대회 실태를 파악했다.
스포츠안전재단이 발간한 ‘2015 안전사고실태조사(농구)’에 따르면 농구 활동 인구 중 64.5%는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부상은 연평균 2.3회 발생했다. 주로 손, 머리(안면부 포함), 발목 순으로 다쳤다. 부상 종류는 염좌(87.6%), 통증(34.6%)이 대부분이었지만, 골절도 18.4%로 높았다. 74.6%는 치료비용을 자부담했고, 치료비 개인 부담금액은 평균 5만 6625원이었다.
부상 경험은 전반적으로 활동 경력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주 활동하는 사람들일수록 부상이 빈번했다. 부상 이후 10명 중 7명 정도는 스포츠 활동을 줄이거나 중지했다.
2017년 농구대회서 힘줄이 끊어진 대학생 최 아무개 씨(23)는 “수술비, 통원비, 입원비로 대략 200만 원 이상을 지출했다. 다행히 교내 농구대회라 학교에서 보험금을 받아 부담을 덜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농구를 해서 경험이 많지만, 부상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고 말했다.
올해 수도권 6개 대학교에서 주최한 주요 동아리 농구대회를 살펴봤는데, 보험·공제를 가입한 곳은 서울시립대학교뿐이었다. 대학교 대회는 학교 체육관을 무료로 사용해 대회 운영비를 대폭 줄인다. 참가비는 팀별로 27만 원에서 32만 원을 받는 곳이 대부분이다. 기자가 6개 대학교 대회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최 측엔 648만~1236만 원의 수입이 들어온다. 대학교 6곳 중 4곳은 대회 운영비로 학교 지원금을 받았다. 하지만 보험·공제는 물론 상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서울시립대 농구대회 관계자는 “대회 운영비 중 농구협회에 심판을 요청하는 비용, 상금, 보험 순으로 비용이 지출됐다. 보험료는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큰 역할을 한다. 이번 대회도 선수뿐만 아니라 심판, 관중, 진행요원까지 스포츠안전재단의 주최자배상책임공제에 가입해 안전하게 대회를 끝마쳤다. 선수 2명이 부상을 당해 보험금을 받고 싶다고 연락했다. 대회 운영비를 제외하고 이익이 남으면 대회를 운영한 농구동아리 활동비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각 대학교 농구대회 관계자들에게 문의한 결과 생활체육진흥법에 따라 대회 주최 시 보험·공제 가입이 의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A·B·C·D·E 대학교는 “대회 중 일어나는 모든 상해, 사고에 관한 책임은 본인팀과 선수에게 있으니 각자 상해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대회 공지에 명시하거나 대회 전 대표자 회의 때 전달했다”고 밝혔다.
보험·공제를 가입하지 않았는데 주최 측에서 책임을 진 사례도 있다. D 대학교 농구대회 관계자는 “지난해 대회서 체육관 천장에서 비가 새 선수가 부상을 당했다. 이에 책임을 느끼고 동아리에서 선수에게 보상을 해줬다”고 말했다.
대부분 대학교는 대회 운영 후 이익에 대해선 “남는 게 없다”고 했다. A 대학교 농구대회 관계자는 “학교 지원금을 받지 않고 운영하며 이익을 남기려고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C 대학교 농구대회 관계자는 “상금은 없지만, 후원사에서 무료로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돈을 주고 제품을 구매해서 1~3위 팀에게 상품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E 대학교 농구대회 관계자는 “트로피, 우승기까지 제작해 제공하면 남는 게 없는데 보험까지 한다면 대회를 운영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다만 대학교 농구대회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다음 대회 때부터는 보험·공제를 하겠다고 말했다. A 대학교 농구대회 관계자는 “이제 법으로 의무라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에 다음 회장에게 인수인계할 때 보험·공제를 가입하도록 해 내년엔 더 좋은 대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E 대학교 농구대회 관계자는 “학교 지원금을 안 받았는데, 농구대회를 21회째 이어온 만큼 학교나 과사무실, 그리고 졸업한 선배들에게 지원을 받아서라도 다음 대회 때 보험·공제를 가입해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대회 개최 시 보험·공제를 가입하는 것은 대학 농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자체나 지자체 농구협회서 주최·주관하는 농구대회서도 대회 중 일어나는 사고는 주최 측 책임이 없으며 팀이나 개별적으로 보험·공제를 가입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제11회 J 시 체육회장배 농구대회 관계자는 “법으로 보험·공제 가입이 의무인지 몰랐다. 다만 보험을 예전에 운영했는데 효과가 없었다. 저렴한 보험을 들어 병원비에 도움이 안 됐고 요즘은 개인실비보험을 가입한 사람이 많다. 또 예산이 적어서 보험을 가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개인실비보험이 없는데 대회 측의 보험을 통해 도움을 받은 사례가 있다. 2014년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KUSF)가 주최한 ‘KUSF U리그’에서 십자인대가 끊어진 박 아무개 씨(26)는 “4번의 수술과 치료를 거쳐 수술비, 통원비, 입원비가 1500만 원 정도 나왔다. 개인실비가 없어서 부담이 됐는데 다행히 당시 대회서 보험을 통해 400만 원 정도를 지원받았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2019 K 구(서울) 대학동아리 농구대회’서는 보험·공제를 가입하지 않아 개인끼리 법정 다툼까지 이어질 뻔한 적이 있다. 대회에 참가한 대학생 정 아무개 씨(22)는 “경기 중 상대편의 눈이 찢어졌는데 내게 비용을 청구했다. K 구에 문의하자 ‘대회 전 보험 처리 안 되며 우리 책임 없다고 공지했으니 스스로 해결하세요’라고 답변이 왔다. 상대편은 내게 법적 책임까지 언급했다. K 구에서 다시 전화가 와 ‘양측 이야기를 들어보니 합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해서 결국 15만 원을 드리고 합의했다”고 털어놨다.
정 씨는 “이런 상황이 올 줄 몰라서 보험·공제 가입은 생각도 안 해봤다. 이런 일로 법적 책임까지 언급하니까, 대회 전 미리 보험을 가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주최 측이 참가비를 25만 원이나 받으면서 왜 법으로 정해진 보험·공제를 가입하지 않고 대회를 진행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K 구 농구협회 관계자는 “대회를 주최·주관할 때 보험료가 부담돼 모든 대회를 진행할 때 가입하긴 어렵다.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거나 구청장배, 협회장배처럼 큰 대회나 가입한다. 참가하는 팀도 개인이 책임을 지는 것으로 알고 출전한다. 생활체육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하는 대회인데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실태에 대해 대한체육회에 문의한 결과 “기금사업으로 진행되는 대회는 보험·공제를 필수적으로 가입하고 있다. 문의한 농구대회는 지자체나 지자체 농구협회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보여 그쪽에 문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답변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은 “대회를 주최할 때 보험·공제가 법적 의무지만, 처벌조항이 없어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추후 국회 논의를 통해 법 개정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61개 정회원 단체, 4개 준회원 단체, 8개 인정단체 등 총 73개 회원종목단체를 두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에는 17개 시도체육회, 228개 시군구체육회가 지자체 내의 체육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허일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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