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독서시장에 구독 경제를 접목시켜 급격히 성장 중인 스타트업 ‘밀리의 서재’가 최근 광고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영하 작가를 모델로 등장시켜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 이제 서재로 가요. 밀리의 서재’, ‘어떡하죠? 지금 가는 서점에 이 책은 없을 텐데’라는 문구를 내건 것. 이에 대해 출판업계 안팎에서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도 그중 하나다. 사회학자이자 동네서점의 운영자이기도 한 노 교수는 동네책방과 ‘상생’을 얘기하던 김영하 작가가 이런 광고에 등장한 것에 대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인가?’라는 비판을 올린 바 있다.
얼핏 밥그릇 싸움처럼 보이는 이 논란 뒤에는 오프라인 서점과 도서 구독모델, 스타 작가와 동네 서점, 도서정가제 등 출판 생태계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 지난 4일 오후, 노명우 교수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만나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직접 책방 열고 보니 “책 정말 안 읽네요”
노명우 교수는 지난해 8월 서울 은평구에 인문사회예술 전문 동네서점인 ‘니은서점’을 열었다. “처음 그렸던 그림과 다른 게 있다면 사람들이 정말 책을 안 읽는다는 사실이다. 내 돈 주고 책을 처음 사본다는 대학 신입생도 있었고, 서점을 처음 들어와본다는 마을 주민도 있었다. 지금은 마을 주민이 전체 손님의 40% 이상일 만큼 동네서점으로 자리 잡았다. 동네서점은 대형서점과 달리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느낌을 준다.”
인터뷰 도중에도 손님들이 들어와 익숙한 듯 노 교수에게 인사하고 책을 구경했다. 작은 공간에서 인터뷰는 인터뷰대로, 손님은 손님대로, 계산대를 지키던 북텐더는 북텐더대로 움직였다.
니은서점은 책만 판다. 문구류를 팔거나 커피를 파는 서점이 익숙해 이제는 책만 파는 서점이 낯설다. 노 교수는 “책은 다른 상품에 비해 마진율이 낮다. 도매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000원에서 2500원 정도 남는다. 하루 열 권 팔아도 2만 5000원이다. 유지하려면 보통 다른 걸 같이 팔 수밖에 없다. 니은서점은 ‘돈을 벌 수 없겠으니 감당 가능한 적자를 달성하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기에 책만 팔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책에 집중할 수 있어 좋다고 손님들이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도서정가제와 김영하 광고에 대해
도서정가제 폐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1월 13일 마감까지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정가의 15%(직접 할인 10%+포인트 등 간접할인 5%)로 책값을 제한하고 있다. 청원인은 “동네서점 살린다며 시행한 제도인데, 동네서점은 줄고 책값은 올랐다. 정책이 도리어 독자들에게 책을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을 파는 책방주인이자, ‘세상물정의 사회학’, ‘인생극장’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한 노 교수에게 다시금 불붙은 논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노 교수는 “반대로 도서정가제가 도서정가제가 아닌 게 문제”라고 말했다.
“지금은 10% 할인에 5% 적립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대형서점과 작은 동네서점에 들어가는 책의 도매가가 다르게 책정되니 작은 서점은 할인과 적립까지 서비스하기 힘들다. 도매상에 싸게, 소매상에 비싸게 가는 건 자본주의 시장의 법칙이다. 하지만 국가의 문화를 보여준다는 의미로 책이 가진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자본주의적 논리로만 볼 순 없다. 도서정가제가 사라져 책이 의류처럼 40% 세일이 가능해진다면 출판사도 세일을 염두에 두고 가격을 책정할 것이다. 당연히 가격은 오르고 소비자는 가격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책값은 정직하다고 봐야 한다.”
노명우 교수는 최근 김영하 작가가 모델로 나선 밀리의 서재 광고에 대해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한 바 있다. 노 교수는 “(김영하 작가가) 동네서점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그동안의 모습과 배치되는 행보라서 유감스러웠다. 책 한 권에 얽혀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아는 작가임에도 겨울의 입구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여름과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선인세를 많이 준다고 하면 작가도 출판사도 흔들릴 수 있다. 물론 개인의 선택은 자유지만, 작가라는 호칭에 담긴 사회적 기대, 베스트셀러 작가의 선택이 독자와 시장에 던지는 신호에 더 민감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김영하 작가는 지난 2017년 2주 동안 각 지역의 동네책방을 찾는 프로젝트를 했고, 올해 새 책 ‘여행의 이유’는 동네서점 에디션을 따로 판매한 바 있다.
이슈가 불거지자 밀리의 서재 측은 “서점 및 출판사와 상생하는 플랫폼을 지향해왔다. 독립서점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서점과 더불어 성장하기 위해 구체적인 협력안을 모색하겠다. 김영하 작가님께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는 입장문을 올렸다. 노 교수는 이 입장문에 대해 광고로 인해 모욕감을 느꼈던 서점 관계자에 대한 명시적인 사과가 없기에 만족스럽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영하 작가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넷플릭스와 밀리의 서재는 다르다
노 교수는 전자책 구독 서비스의 확대 등 변화하는 생태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창작자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노 교수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와 책 구독 서비스를 비교해 설명했다. 영화는 상영이 끝나면 2차 판권 시장으로 창작자가 돈을 버는 구조다. 비디오 렌털 가게에 있던 서비스가 넷플릭스로 이동한 것이다. 창작자 입장에서는 2차 판권 시장이 방해가 아닌 이익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한국의 책 구독 서비스는 창작자에게 의미 있는 2차 시장을 열어주지 못한다. 소수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제외하면 다른 다수의 작가들의 책은 주목받기도 힘들고, 현재 종이책의 인세 10%보다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노 교수는 “한국의 출판시장은 위기이다. 신규 독자는 늘지 않고,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 지금은 오프라인 서점, 온라인 서점, 그리고 책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제로섬 게임을 벌일 단계가 아니라, 각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신규 독자를 확장해야 할 때다. 서로 시장 뺏기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시장 규모를 키우는 진정한 상생이 필요하다. 구독 모델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모두가 책을 사서 보지 않고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아무도 창작자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창작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지금 형태는 상생 모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동네서점은 건물 지하로, 온라인으로 들어간 대형서점을 대신해 작은 골목에서 ‘책 여기 있소’ 하고 외친다. 노 교수는 책이 사람들에게서 멀어진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동네서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책이 사람들로부터 멀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동네서점은 책마다 추천사를 적어 붙이거나 북토크를 여는 등 다양한 독서 경험도 제공한다. 노 교수는 “길을 걷다가 빵집이 보이면 빵을 사 먹듯, 서점이 보여야 책도 읽는다. ‘서점이 있네, 책이 있네’라고 생각하다가 책을 한 권, 두 권 읽는 사람들이 있는 한 동네서점은 존재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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