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몇몇 사법부 판단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법원이 ‘레깅스는 성적 수치심을 주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 연예인이 본인의 동의 없이 촬영된 동영상으로 협박받은 건에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찍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연예인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현재 시민단체는 이 판사들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3일 오후, 판사의 판결에 불만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마련됐다. 사법 피해자들과 자주 교류해온 전상화 변호사가 꾸린 사모임이다. 평소 카카오톡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얼굴을 맞대는데 매번 참석 인원은 조금씩 바뀐다고 한다. 이번 모임에는 전 변호사와 디자이너 이 아무개 씨,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 최 아무개 씨와 2003년부터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는 정 아무개 씨 등이 전 변호사 사무실에 모였다.
이날 모임의 주제는 ‘재판에 대해 판사가 지니는 책임은 적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3심 제도를 채택해 당사자가 재판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면 불복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지만, 이와 별도로 법원이 판사의 재판 잘못을 유독 폭넓게 수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판사가 재판 과정에서 고의나 실수로 잘못된 판단을 해도 이렇다 할 제재가 없다는 것. 특히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치르는 개인이나 중소기업의 경우 잘못된 판결에 따른 타격으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지만, 이를 구제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잘못 밝혀져도 판사에게 책임 묻기 어려워
이날 전 변호사는 본인이 맡았던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임대료를 내지 않아 건물주로부터 건물명도 소송을 당한 세입자의 변호인을 맡았는데, 당시 전 변호사는 승소를 예상했다. 세입자가 월세를 내지 않은 기간은 두 달이 넘었으나 석 달이 채 안 됐기 때문.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의 차임연체액이 3기의 차임액에 달하는 때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전상화 변호사는 “계약 당시 양측이 ‘3기분의 월세를 미납해야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특약을 맺은 상태였기 때문에 승소를 예상했다”며 “피고가 월세를 3개월 이상 밀렸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는 패소였다. 이 판결의 배경에는 ‘판사의 실수’가 있었다. 재판부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기 이전 기준을 적용해 “2기분 이상의 월세를 미납해 임대차계약 해지는 적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전 변호사는 2017년 12월 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2018년 6월 재판부는 판사의 손을 들어주며 전 변호사가 피고(판사)에게 소송비용에 대한 담보로 10일 안에 900만 원을 현금 공탁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전 변호사는 소송비용담보제공 항고를 제기했으나 청구는 기각됐다. 재판과정의 잘못에 대해서는 따로 불복절차가 마련돼 있다는 이유였다. 전상화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도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으나 지난 9월 재판부는 이를 각하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전 변호사의 이야기에 다른 이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정 아무개 씨는 “상대방이 위증으로 처벌을 받았는데 법원이 나더러 무고라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모임 이후 이 아무개 씨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판사가 판결문에 날인을 안 찍어서 법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에서 피고를 대법원장으로 마음대로 바꾸더니 사건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잘못된 판결로 몇 년째 판사를 상대로 소송 중인 지인도 있다. 대부분은 판사 상대로 소송해봐야 기각될 게 뻔해 시작도 못 한다”고 토로했다.
#은근히 대기업 편향적인 판결, 어떻게 봐야 할까
이처럼 판사가 고의나 과실로 잘못 판결하더라도 판사에 책임을 묻기도, 또 그에 따른 배상을 받기도 쉽지 않다. 판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재판에 임했는지를 소송 당사자가 입증해야 하는데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03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고의를 넘어 목적성이 입증되고 단순 과실이 아닌 중과실이어야만 판사의 책임이 인정된다. 반면 민법은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명시한다.
특히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한 경우 이 같은 상황을 자주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 일반인 혹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비교해 증거자료 확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기업 편을 들어주는 경우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말했다. 전상화 변호사는 “기업에 유리하게 판단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 힘 있는 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진정이나 제보가 빗발치는데 이러한 상황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법원이 대기업에 유리하게 판단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례도 있다. 2008년 이후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 사태로 230여 개의 중소기업이 폐업했지만, 2013년 대법원은 키코 계약이 불공정 거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 사건을 은밀하게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재판거래 정황이 불거지기도 했다.
물론 판사 개인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이유도 분명히 있다. 재판 영역은 여느 분야보다 독립성이 요구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또 원고와 피고로 나뉘는 재판의 특성상 법원이 100% 신뢰를 얻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 역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5년간 법원의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으로 접수된 진정과 청원이 총 1만 3422건을 기록했다. 2014년 1920건에서 2018년 4606건으로 5년 사이 3.5배 급증했다.
결국 손해배상 범위를 확대하는 한편 사전에 불합리한 판결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자문위원인 송기호 변호사는 “판사 개인에게 소송을 걸어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점은 문제”라며 “손해배상 범위를 좀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재판 개시되기 이전 양측이 가진 증거와 서류를 서로 공개해 쟁점을 명확히 하는 제도)처럼 억울한 상황이 안 나오도록 사전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
[단독] 조양호 한진 회장 구기동 주택, 상속 등기 한 달 늦어진 까닭
·
리니지2M 매출 1위, 게임 이용자와 증권가 반응 '극과 극'
·
[단독] 서울시 도시교통실장, 재개발 논란 '한남3구역' 부동산 투기 의혹
·
"전화 한 통에 수천만원" 전관예우 논란에 검찰 출신 변호사 반발 까닭
·
법조계 신풍속 '성범죄 통지서 대신 받아주고 수임료 백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