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요즘 스타트업 평가가 너무 높아져서 부담됩니다. 투자할 만한 회사가 없어요.” 최근 만난 국내 대형 벤처캐피털(VC) 대표는 스타트업에 거품이 끼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벤처업계로 돈이 몰리며 실제 가치 이상으로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것이다.
30억~50억 원 정도의 시리즈 B~C에 투자하는 이 VC 대표는 최근 스타트업 투자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성장성이 낮은 데 비해 마케팅 등으로 가치를 부풀린 기업에 잘못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글로벌 리서치회사인 CB인사이츠 등에 따르면 올해 미주 지역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1000억 달러(약 120조 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해 995억 달러보다 소폭 증가한 규모다. 다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만든 비전펀드 등 글로벌 펀드 자금이 올 들어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 등지에도 투자를 늘려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는 역대 최대 규모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투자금액이 단지 자본소득을 거두려는 자금뿐만 아니라 이자 소득을 거두려는 재무적투자자(FI)들도 VC 업계에 많이 유입됐다. 이에 글로벌 유니콘의 기업공개(IPO) 수요가 늘고 있다. 문제는 IPO에 나선 유니콘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 상장을 앞두고 매출만 늘려왔을 뿐, 실제로는 이익 창출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서다.
위워크의 경우 올초 기업 가치를 470억 달러(약 56조 원) 정도로 평가됐으나, 현재는 100억 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IPO 과정에서 일차원적 사업 구조와 낮은 수익성, 고비용 구조 등이 드러나서다. 우버 역시 5월 IPO 이후 시가총액이 330억 달러나 증발했으며, 리프트도 3월 증권시장에 상장한 뒤로 시총이 100억 달러나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380억 달러의 평가를 받은 전자담배업체 쥴랩스는 건강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며 불과 1년 만에 기업가치가 240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미국의 벤처캐피털리스트 크리스 두보스는 최근 강연에서 “5년간 파티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누군가 전등 스위치를 껐다. 우리는 암흑 속에 있으며, 앞으로 남은 밤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VC들의 스타트업 투자 규모와 집행 기간이 2배 이상 길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IPO는 연초 대비 3분의 1로 떨어졌고,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기업도 후속 투자라운드에서 가치를 낮게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유니콘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대표적 유니콘인 쿠팡은 소프트뱅크와 비전펀드로부터 3조 원대 투자를 받고도 여전히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옐로모바일은 사기 논란에 줄소송에 시달리고 있으며, 야놀자와 토스도 투자금을 까먹고 있는 상황이다. 초기 유니콘은 서플라이체인을 전환할 때까지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적자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시리즈 C 이후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고 2~3년 뒤부터는 수익성을 증명해야 한다. 현재 적자를 내고 있는 유니콘들은 올해와 내년에 걸쳐 영업이익을 발생시킬 필요가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 투자는 고위험군 투자지만, 유니콘으로 성장했다면 어느 정도 성장성과 수익성이 담보된 것으로 본다”며 “증시 상장은 일종의 메이저리그 진출이기 때문에 어떤 투자자가 보더라도 합리적인 사업모델과 수익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유니콘은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 1150억 원)에 달하는 스타트업을 말한다. 현재 국내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된 기업 중 기업가치가 1조 원인 곳은 현대상선·두산중공업·한국콜마·롯데칠성 등이다.
국내 유니콘이 이들 기업 이상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상장에 어려움을 겪거나 주가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 때처럼 스타트업 거품 붕괴가 금융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다만 당시에는 상장한 벤처기업들이 많았던 데 비해 현재는 대부분 비상장이라 금융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 의견이다.
문제는 실물경제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중국 등은 스타트업을 통해 부진한 채용시장을 지탱하는 측면이 있어 옥석가리기 끝에 도산하는 스타트업이 많아지면 실물 경기와 심리에 악영향을 끼친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언론에 많이 노출된 유명 스타트업 중에도 앞으로 운전 자금이 3~4개월분밖에 남지 않은 곳이 많다. 추가 투자 없이는 망하는 회사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혁신이냐 안전이냐, 부천시 스쿨존 공유주방 둘러싼 갈등 사연
·
요기요와 배달의민족이 '마트 배달'에 뛰어든 까닭
·
쿠팡, SSG, 롯데 '너도나도 여행' 진출, 효과 있을까
·
우버가 택시회사를 사면? 한국 재진출 가능성 팩트체크
·
우버·위워크의 몰락, 손정의는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