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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영어·카드결제' 영화관 노년 관람객 막는 장벽

유인 판매대 없애는 추세…노인층에 키오스크 사용은 여전히 어려워

2019.12.04(Wed) 16:24:13

[비즈한국] 영화관 관객은 2013년 처음 2억 명대로 진입한 뒤 6년째 2억 관객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급속화 고령화와 맞물려 노년층 관객의 증가가 눈에 띈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50대 이상 관객은 2012년 4.6%에서 2018년 10.5%로 2배 이상 증가했다. 롯데시네마에 따르면 2017년 7월부터 작년 5월까지 영화관을 찾은 1인 관객 가운데 50대 이상은 남성의 24.4%, 여성의 23.3%를 차지했다.

 

3일 낮 대한극장을 방문한 70대 남성은 “은퇴 후 여가를 즐기는 시간이 많은데, 특히 영화를 보면 시간이 빨리 가서 즐겨본다”며 “만 65세 이상은 할인해줘서 친구들과 또는 혼자서 극장에 자주 간다”고 말했다.

 

#극장들, 유인 매표소 없애고 매점과 통합 운영 추세 

 

노년층 관객은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편의는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이다. 최근 영화관들은 무인판매대(키오스크)를 늘리고 매표소를 줄이고 있다. 서울 소재의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서울극장, 대한극장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 5곳을 평일에 방문해보니 대한극장, 서울극장 2곳만 유인 매표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머지 3곳은 매표소를 닫고 음료·간식을 파는 매점과 통합 운영하고 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매표소·매점을 통합 운영하며 카드 결제만 되는 키오스크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허일권 인턴기자


60대 여성 관객은 “영화관에서 키오스크 사용은 생각도 안 해봤다”며 “실수하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내가 시대에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고 소외감을 느낀다. 매표소가 없는 곳에서 표를 구매하려면 아르바이트생이 매점에서 일하다가 나를 도우러 오는데 괜히 미안하고 눈치가 보인다”고 털어놨다.

 

서울극장의 아르바이트생은 “키오스크가 4대 있지만, 어르신들은 다들 매표소에서 구매한다. 지역 특성상 서울극장은 매표소 이용 비율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2018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고령층의 정보화 수준은 63.1로 장애인(74.6), 저소득층(86.8), 농어민(69.8)과 비교해도 낮은 수치였다. 최근 영화관은 무인화에 박차를 가하며 키오스크를 늘리고 있지만,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려는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또 다른 60대 여성 관객은 “나는 젊을 때 직장생활을 했고 여행 모임을 통해 공항에서 키오스크를 자주 접했다. 그러지 못한 사람들이나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사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시대를 따라가는 것이 맞지만, 고령화 시대인 만큼 시스템을 편리하게 만들도록 노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70대 남성 관객은 키오스크 사용에 대해 “현장에서 물어서 하다 보면 시간을 초과해 화면이 사라져버린다”며 “시행착오를 겪어서라도 해보려하지만, 기계가 친절하게 설계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이에 대해 CGV 측은 “과거에는 매표소 이용 비중이 높았으나, 최근 들어 온라인·모바일 예매 비중이 높아지는 사회적 추세를 고려해 일부 극장에서 매표소와 매점을 통합 운영하는 사례가 있다”며 “당사에서 운영 중인 티켓 판매기 대부분이 현금 결제가 가능하다. 신용카드 결제 비중이 높아지는 사회적 추세에 따라 현금 비중이 낮은 일부 극장의 경우 카드 결제 전용으로 시범 운영하는 사례가 있다. 이 경우 매표소를 방문하면 현금 결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알파벳 모르는 노년층, 좌석번호 지정도 어려워해

 

키오스크 사용 자체도 어렵지만 장벽은 또 있다. 영어를 모르는 노년층에게는 키오스크가 더 큰 벽으로 다가온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설치된 키오스크 속 좌석은 모두 영어로 표기됐다. 또 현금 결제가 불가능하고 카드 결제만 가능하다. 기자가 방문한 청량리 롯데시네마에서는 키오스크 1대만 현금 결제가 가능했지만, 운영이 되지 않았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설치된 키오스크는 좌석표를 영어로만 표기했다. 사진=허일권 인턴기자


영화관의 한 아르바이트생은 “알파벳을 모르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며 “직원에게 한글 표기로 바꾸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니 ‘한글도 모르는 분들이 많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털어놨다.

 

영화관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영화관을 갈 때 현금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키오스크는 카드 결제만 돼서 불편한 경험이 있다. 젊은이도 키오스크를 사용하면서 불편할 때가 많은데 어르신들은 더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한 노인 관객은 “시대가 변하니 나도 바뀔 필요성을 인식했고, 처음엔 어렵지만 배우면 금방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량리 롯데시네마의 한 아르바이트생은 “대부분 어르신은 옆에서 도와주면 직접 배워서 해보려고 한다”며 “최근 고객용 태블릿PC가 도입되면서 평일 1명, 주말 4명의 아르바이트생이 디지털 기기로 예매하려는 고객들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CGV 측은 좌석번호 영문 표기에 대해 “특정 영화·극장에 따라 외국인 고객도 많이 방문하기에 여러 고객이 이용하기 편리한 표기방법을 운영하고 있다. 극장별로 상황이 다른 만큼 한글 좌석도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검토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디지털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선 노년층의 의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석준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키오스크 설치가 급증하면서 장애인·고령층이 디지털 소외 문제를 겪고 있다.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에 대한 표준과 지침을 마련해 한국정보화진흥원(NIA)에서 실태조사를 했는데, 800대 표본 키오스크 중 이 표준과 지침을 준수한 비율이 평균 45.5%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기관에서 60% 정도였으니 민간기업은 20~30%대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고객용 태블릿PC가 도입된 서울의 한 영화관. ‘티켓 매점 구매’라는 안내가 눈에 띈다. 사진=허일권 인턴기자​


​지난 11월 ​국가정보화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서 의결되면서 키오스크 이용이 익숙지 않은 장애인·고령자 등의 정보 접근성을 법률로 보장하게 됐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노 교수는 “웹사이트가 처음 도입됐을 때도 이용률이 낮았지만, 공공기관부터 민간까지 법으로 의무하니 접근성이 빠르게 확대됐다”며 “이번 법안은 키오스크를 3년마다 실태조사를 할 뿐이라, 민간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또 다른 법률이나 정책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서초구는 지자체 중 전국 최초로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했다. 올해 9월부터 동주민센터, 노인 이용시설 총 23곳에서 디지털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수강생은 1500여 명에 이른다. 키오스크 프로그램은 식당·카페 주문, 영화표 발급, 고속버스표 예매, 민원서류발급기, 서류 발급 등 5가지 상황을 연습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서초구청 어르신행복과 관계자는 “이 사업을 보고 서울시 지자체부터 시작해 청주시, 인천 계양구 등에서 도입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았다. 한국정보화진흥원도 정부 차원에서 키오스크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키오스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초구청을 방문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서울시 자치구에서 많이들 도입할 것 같다”고 밝혔다.

허일권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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