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과거에 상권들이 발달하던 방식을 떠올려보자. 상권은 소비가 발생하는 공간이기에 그 소비를 할 주체, 즉 소비자들의 규모가 중요하다. 상권에서 소비자의 규모는 주거지의 규모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오피스 등의 규모에 따라 결정되지만, 이 소비자들을 한 번에 대규모로 운송하는 대중교통으로 인해 대중교통이 오가는 대로가 상권의 핵심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 가장 많이 노출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상권은 먼저 대로를 중심으로 발전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이동과 흐름에 따라 그 중요도가 결정된다. 대로의 상권이 발달할수록 임대료가 오르게 되므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가게들은 대로가 아닌 이면도로에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대로변 상가는 그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유통이나 임대업 성향의 가게들이 자리한다.
이런 식으로 상권이 성장하고 발전할 때마다 상가는 대로를 기준으로 점점 안쪽으로 확장되어가는 흐름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과거의 상권이 발달하는 방식이었다. 대로와 이면대로,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임대료가 낮아지는 형태이기에 도로에 따라 입점한 상가와 업종이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흐름을 깨버린 것이 바로 이커머스와 SNS의 발달이다. 전통적으로 대로와 코너는 유통업의 공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이 필요하고 그 노출에서 유입과 매출 발생을 유도하는 유통업은 대로라는 유동인구가 많은 공간이 필요한 비즈니스였다. 그래서 발달한 상권의 대로는 언제나 선호되는 공간이었다. 이커머스가 이 구조를 깨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커머스와 배송으로 인해 유동인구와 매출의 연결고리가 약해짐에 따라 대로의 공간은 높은 임대료에 비해 수익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공간이 되었다. 그 대신 유동인구의 노출을 통한 광고 효과를 기대하는 부수적인 효과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서 더 부각되었다. 콘셉트스토어와 팝업스토어를 통해 브랜드를 알리고 상품들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하지만 팝업과 브랜드 홍보 공간은 가장 상징적인 곳에만 들어가면 되므로 필연적으로 대로 상가의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이면도로와 안쪽 상가들은 과거에는 사람들이 찾기 힘들어 외면하던 공간이었고 그만큼 임대료도 저렴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저렴하단 특성은 오히려 사업을 안정적으로 시작하기에 좋은 강점으로 작용했다. 더군다나 SNS의 발달은 또 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지금은 사람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때, 다른 사람들이 남긴 평가를 먼저 확인하는 시대다. 아무리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어도 이용자들의 평가가 나쁘다면 쉽사리 찾지 않는다. 과거라면 열위지역인 상권 안쪽 깊숙한 곳에 가게가 있더라도 리뷰만 우수하다면 사람들이 알아서 지도를 보고 찾아올 환경이 형성되었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상권 안쪽 지역이 가졌던 접근성의 열위는 많이 희박해졌고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평가만 어느 정도 누적된다면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현재는 가게가 대로에 있건 구석에 있건, SNS에서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노출하고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발달한 인기 있는 상권에서도 대로변보다 이면도로가 더 활기 넘치는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게 되었다. 이커머스와 SNS는 상권의 공식을 바꾸어놓았다. 대로의 가치는 옛날 같지 않은 반면 이면도로와 안쪽 지역의 가치는 올라갔다. 입지의 차이로 인해 이면도로가 대로를 완전히 추월하진 못하겠지만 이러한 변화가 두드러진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대로 상권은 이제 그 수명을 다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언제든 저평가되는 시점에서 반등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환경과 실물을 바꾼 대표적인 케이스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 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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