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때 아기처럼 모습을 바꿔주는 어플리케이션(앱)이 유행한 적이 있다. 아기 사진 필터로 셀카를 찍으면 눈은 더 동그랗게, 볼은 더 빵빵하게, 턱은 확 깎아 한 살짜리 갓난아기 같은 귀여운 모습으로 얼굴이 바뀌었다.
정확하게 어린 시절을 재현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기의 얼굴형은 성인에 비해 보통 더 둥글고 이마가 넓다는 식의 보편적인 특징을 적용해 우리가 잊고 있던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여주었다.
#은하수는 어떻게 세월의 흔적이 쌓일까
이 앱이 어린 시절과 비슷한 얼굴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얼굴이 나이가 들면서 어디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대략 파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별과 은하의 노화 법칙을 대략 파악하고 있는 지금, 그 법칙을 거꾸로 적용해 아주 오래전 우주가 어떤 앳된 모습이었을지도 추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나이 지긋한 130억 살짜리 은하수가 아닌, 빅뱅 직후 갓 태어나 꼬물거리던 ‘겨우’ 1억 살짜리 어린 우리 은하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가 사진 앱으로 어린 시절을 상상하며 잠깐 추억했던 것처럼, 최근 천문학자들도 오랫동안 잊혔던 우리 은하의 젊은 시절 모습을 새롭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무려 110억 년 전 한창 새로운 별들이 왕성하게 태어나던 우리 은하의 귀엽고 아름다웠던 ‘리즈 시절’ 모습이다.
그렇다면 태양과 같은 별 수천억 개가 모여 이루어진 이 거대한 우리 은하는 대체 어떻게 나이를 먹고 있을까? 나이가 들면서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고 피부 트러블이 여기저기 피어오르듯, 우리 은하는 대체 어떤 식으로 세월의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
#거대한 달걀프라이 우리 은하
우리 은하가 나이를 먹으면서 어떻게 지금 같은 모습이 됐는지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재 우리 은하가 어떤 생김새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20세기 초 처음으로 우리 은하 바깥에도 또 다른 외부 은하들이 망망대해의 섬처럼 이곳저곳에 즐비하다는 것을 발견했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자신이 발견한 은하들을 그 생김새를 기준으로 분류했다.
슬로안 전천 탐사(SDSS, Sloan Digital Sky Survey)로 확인한 외부 은하들의 분포 지도. 자연 철학자 데카르트는 이렇게 바다 속 섬처럼 은하들이 즐비한 우주를 섬 우주(Island universe)라고 불렀다. 우리 은하는 이 거대한 섬 우주에 존재하는 작은 하나의 섬일 뿐이다. 영상=Berkeley Lab
이렇게 은하의 형태학적 분류(morphological classification)를 통해 허블은 우주에 있는 많은 은하들을 크게 원반 은하와 타원 은하로 분류했다. 우리 은하는 납작한 원반을 갖고 있는 원반 은하(Disk galaxy)로 분류된다.
보통 원반 은하들은 원반 외곽에 갓 태어난 파릇파릇한 별들과 그 별을 만드는 재료인 신선한 가스 물질을 많이 갖고 있다. 갓 만들어진 뜨거운 별들은 더 푸른 빛을 낸다. 그래서 원반 은하는 푸른 원반을 갖고 있다.
반대로 중심에는 높은 밀도로 나이 많은 별과 젊은 별이 모여 있는 벌지(Bulge)를 이룬다. 상대적으로 온도가 더 미지근한 붉은 별들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푸른 원반에 비해 더 노랗고 붉게 보이는 중심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은 거대한 달걀프라이를 연상시킨다. 중심부에는 노랗게 잘 익은 나이 많은 별들이 모여 노른자 벌지를 이루고, 그 외곽으로 납작하게 어린 별과 가스가 모여 둥근 원반을 이룬다. 우리 은하는 지름 10만 광년짜리 아주 거대한 달걀프라이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 거대한 달걀프라이의 외곽 언저리에 살면서 우리 은하의 얇은 단면을 보고 있다. 그 모습은 지구의 밤하늘에서 수직으로 얇게 흐르는 은하수로 목격된다.
오랫동안 우리 은하와 같은 원반 은하의 형성 과정에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미해결 수수께끼들이 많이 있었다. 보통 원반 은하에 비해서 타원 은하는 그 형성 과정을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초기 우주에 만들어진 작은 왜소 은하들이 서로 충돌하고 반죽되는 은하들의 병합을 통해 덩치를 불려나가면, 많은 별들이 거대한 타원체를 이루며 둥근 형태를 만든다.
타원 은하는 그저 단순히 별들이 중력에 의해 모여 들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기존의 간단한 은하들의 병합 모델로 그 투박한 형성 과정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타원 은하에 비해서 원반 은하들은 아름다운 나선팔과 뚜렷한 원반 구조 등 더 세심한 디자인이 필요한 작품이다. 타원 은하처럼 크고 작은 은하들의 병합으로는 아름다운 나선팔이나 원반 구조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없다. 모두 진즉에 파괴되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분명 우리 우주에는 거의 절반 가까운 은하들이 우리 은하처럼 크고 아름다운 나선팔과 원반 구조를 형성한 채 오랫동안 살아남아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우리 은하와 같은 원반 은하들은 어떤 과정으로 빚어진 것일까?
거대하고 둥근 타원 은하와 달리 더 세밀한 세부 구조를 많이 갖고 있는 원반 은하는 시뮬레이션으로 재현하기 더 까다롭다. 작은 왜소 은하들이 병합은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격렬하면 원반은 파괴되고 그냥 타원 은하가 되어버린다. 너무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적당히 격렬한 그 오묘한 레시피를 찾기 위해 이 같은 다양한 은하 형성 시뮬레이션이 제안된다. 이 시뮬레이션은 무려 백만 CPU 시간 동안 계산해서 재현한 30만 광년짜리 원반 은하의 형성 과정을 담은 결과다. 영상=F. Governato and T. Quinn(Univ. of Washington), A. Brooks(Univ. of Wisconsin, Madison), and J. Wadsley(McMaster Univ)
#먼 우주에서 은하들의 어린 시절을 주워담다
아쉽게도 영화에 나오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직접 타임스톤을 쥐고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우리 은하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그 대신 다른 원반 은하들이 어렸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통해 우리 은하수의 어린 시절을 그려볼 수 있다. 아기 사진 필터로 우리의 어렸을 적 모습을 그려보는 것처럼 말이다.
천문학에서는 더 먼 우주를 볼수록 그 먼 거리를 빛이 날아오는 동안 지연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 그만큼 더 오래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측적 효과를 ‘시간을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뜻에서 룩백 타임 효과(Look-back time effect)라고 한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룩백 타임 효과를 활용해 빅뱅 직후 갓 빚어진 어린 원반 은하들의 잔상을 보기 위해 더 먼 우주의 은하들을 관측하는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런데 먼 우주를 관측할 때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허블 울트라 딥 필드(HUDF, Hubble Ultra Deep Field) 영상을 입체적으로 구현한 영상. 총 11일 동안 동일한 밤하늘을 쭉 바라보면서 먼 우주에 숨어 있던 5000개가 넘는 어두운 은하들의 존재를 확인했다. 영상=Hubble Heritage Team(AURA/STScI/NASA/ESA)
더 먼 우주를 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밝고 큰 은하들 위주로만 관측된다. 당연히 먼 과거의 우주에도 우리 은하와 비슷하거나 더 가벼운 어두운 은하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런 작고 가벼운 은하들은 먼 거리 때문에 쉽게 관측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우주의 나이가 어렸을 때, 과거로 갈수록 우주에는 주로 덩치 큰 밝은 은하들만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관측의 한계 때문에 과거의 우주를 볼수록 밝은 은하들만 목격되는 일종의 착시 효과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더 먼 거리에 있는, 우리 은하와 비슷한 더 작은 은하들의 젊은 시절까지 목격하기 위해 더 어두운 빛까지 관측할 수 있는 장비들을 동원해 은하들을 관측했다.
#훨씬 더 찬란했던 은하수의 어린 시절
천문학자들은 허블우주망원경(HST, Hubble Space Telescope)을 이용해 진행되고 있는 가장 거대한 관측 프로젝트 세 가지를 활용해 무려 10만 개에 가까운 은하들을 관측했다. 이번 분석에 활용된 관측 데이터는 허블우주망원경의 광시야 3 카메라(Wide Field Camera 3)으로 관측하는 3D-HST 탐사, CANDELS(Cosmic Assembly Near-infrared Deep Extragalactic Legacy), 그리고 GOODS(Great Observatories Origins Deep Survey)의 관측 데이터들을 활용했다.
이번 분석을 통해 각 은하까지의 정확한 거리와 각 은하의 크기를 추정했다. 또 은하들의 색깔을 통해 나이 많은 별과 젊은 별들이 얼마의 비율로 섞여 은하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추정했다. 이를 통해 각 원반 은하 중심부의 벌지 노른자가 얼마나 노랗게 익었는지, 어느 정도의 진화 단계를 겪고 있는지를 비교했다.
오랫동안 많은 천문학자들은 단순히 작은 은하들이 병합하면서 만들어지는 타원 은하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적용해 원반 은하의 형성을 설명하려고 했다. 이러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원반 은하의 중심부에 있는 벌지를 작은 버전의 타원 은하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우선 작은 은하들이 병합하고 모여드는 과정에서 벌지가 먼저 형성되고 그다음에 벌지 주변에 계속 물질이 공급되면서 원반과 나선팔과 같은 세밀한 디자인이 진행된다고 추정했다.[1]
하지만 이번 대규모 통계 분석을 통해 확인한 결과, 우리 은하와 같은 많은 원반 은하들은 중심 벌지와 원반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형성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특히 우리 은하는 지금으로부터 약 110억 년 전에서 70억 년 전 사이에 가장 많은 부분이 형성되었다.[2]
별의 재료가 되는 신선한 가스 물질을 갓 공급 받아 한창 파릇파릇했던 어린 시절, 우리 은하는 매년 태양 질량의 열다섯 배에 달하는 많은 별을 형성했다. 현재 우리 은하는 매년 태양 하나 정도를 만드는 속도로 새로운 별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 우리 은하는 지금보다 무려 열다섯 배나 더 활발하게 새로운 별을 만들어냈다. 우리 은하는 우주의 나이가 약 40억 살쯤 되었을 때, 이 왕성했던 별 형성 속도와 효율이 절정에 달했다.[3]
#천문학, 인류에게 입체적인 시간 감각을 선물하다
우리는 3차원의 존재다. 오른쪽과 왼쪽, 앞과 뒤, 그리고 위와 아래가 있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방향의 축을 통해 입체적인 공간감을 느낀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매순간 단 한순간의 시간만 인지할 뿐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보다 한 차원 이상 더 높은 차원을 인지할 수 있는 4차원, 5차원의 존재가 있다면 그들에게 시간도 그저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여러 개의 평범한 축 중 하나일 것이다. 시간 차원은 넘나들 수 없는 우리는 아쉽게도 매순간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면서 바로 그 순간의 우주의 은하수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보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가 있다면, 마치 우리가 그저 고개만 돌려도 앞 뒤, 오른쪽, 왼쪽을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은하수의 미래, 그리고 과거의 모습을 바로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공간을 인지하듯 입체적인 ‘시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은하와 비슷한 크기와 질량을 가진 가상의 은하 24개의 형성과 진화 과정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각 은하는 태양 질량의 7000억에서 3조 배 더 무거운 헤일로 속에서 만들어진다. 영상=Brendan Griffen, MIT, MSU, MPA
물론 우리는 태생적으로 3차원의 벽에 갇혀 있는 존재라서 이 한계를 완벽하게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인류는 천문학이라는 멋진 도구를 활용해 그 태생적 한계를 간접적으로 넘기 시작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오늘밤 하늘에 펼쳐진 우리 은하수를 바라보며, 지금으로부터 110억 년 전 한창 새로운 별들이 왕성하게 태어나던 시기의 은하수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지금으로부터 80억 년이 지나 안드로메다은하와 충돌하면서 거대하고 둥근 타원 은하로 바뀌게 될 먼 미래의 모습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보는 밤하늘에는 100억 년 전 찬란하게 불꽃놀이가 벌어졌던 과거의 은하수, 오랜 시간 서서히 열기가 식어가면서 잠잠해진 지금의 은하수, 이웃 은하와 함께 뒤섞이며 또 한 번 찬란한 불꽃놀이가 펼쳐질 미래의 은하수가 함께 떠 있다.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The cosmos is all that is or was or ever will be).” -천문학자 칼 세이건
[1]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434/1/325/995457
[2] https://hubblesite.org/contents/news-releases/2013/news-2013-45.html
[3]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0004-637X/778/2/115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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