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4억 원짜리 오피스텔 상가를 자기 자본 없이 분양 받을 수 있습니다.”
공익신고자 이상돈 씨(47)는 최근 이런 제안을 받았다. 지난 6월 수도권의 한 지하철역을 지나다 오피스텔 분양상담사의 모객에 이끌린 게 시작이었다.
오피스텔 인근에는 산업단지와 지하철역은 물론 영화관·카페·공원·시장 등 생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었다. 입지가 좋다고 판단했지만, 매매가격이 너무 높아 분양 받을 마음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분양상담사는 이튿날부터 부동산 가격의 90%까지 제1금융권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며 전화로 설득했다. 이 씨는 대출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재차 제안을 거절했다.
몇 주 뒤 다른 분양상담사가 오피스텔 대신 1층 상가를 ‘할인 분양’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시행사와 협의해 당초 분양가 4억 6925만 원보다 30% 싼 가격(3억 2894만 원)에 팔겠다고 설명했다. 이상돈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오피스텔을 찾았다. 1억 이상 할인된 분양 가격이 마음에 들었지만 이번에도 현금이 모자랐다.
이 씨가 머뭇거리자 분양상담사는 솔깃한 제의를 했다. 공식 계약서를 당초 분양가인 4억 6925만 원으로 꾸며 원 분양가의 60%까지 부동산 담보 대출을 받게끔 해주겠다는 것. 나머지 10%는 직장인 또는 사업자 신용대출을 받으라고 설득했다. 공익신고 경험이 있던 이 씨는 단번에 불법 거래임을 알아채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증거물을 남기기 위해 계약금 100만 원을 입금하고 계약서를 남겼다.
#실제보다 비싼 가격 적는 ‘업 계약서’를 왜 쓸까
이 씨가 받은 제안은 이른바 ‘업(up) 계약’이었다. 부동산 매매 계약서에 실제 가격보다 높게 적는 계약을 말한다. 부동산 가치가 올라간 만큼 매수자는 취득세와 등록세를 더 내야 하지만, 그만큼 금융기관에서 주택을 담보로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향후 부동산을 되팔 때에는 양도 차익이 줄어 양도소득세를 적게 낼 수 있다. 매도자 입장에서 양도소득세를, 매수자 입장에서 취득세와 등록세를 감면받기 위해 부동산 매매 계약서 가격을 실제보다 낮게 적는 ‘다운(Down) 계약’과 대비된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 ‘업 계약’은 매수자를 찾기 위한 ‘꼼수’다. 매매 가격(분양가) 할인분만큼의 이익을 포기하는 대신 빨리 현금을 확보하고 부동산 감가상각을 막겠다는 계산이다. 김예림 스마트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업 계약은 개인 간 거래보다는 시행사 또는 분양대행사가 부동산을 일괄 매각할 때 발생하곤 한다. 분양률을 높이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8일 이상돈 씨가 제보한 오피스텔 분양상담소에서도 이런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기자는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이 오피스텔 1층 상가의 분양 상담을 받았다. 상담 받은 상가 한 호실(29㎡, 8.8평)의 최초 분양가는 3.3㎡(평)당 2300만 원, 부가가치세를 합하면 총 4억 4771만 원이었다. 분양상담사에 따르면 현재 이 오피스텔 1층 상가 여덟 호실 중 여섯 호실이 미분양 상태다.
현장의 분양상담사는 “평(3.3㎡)당 분양가를 300만 원 이상 할인해줄 수 있다. 한 호실만 확실하게 계약한다고 하면 시행사 쪽에서 더 절충해줄 수 있다. 할인 분양을 한다는 건 시행사 쪽에서 빨리 부동산을 처분해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라며 “계약서를 쓸 때는 이 금액(원래 분양가)으로 계약을 하고 보증금이나 대출도 이 기준으로 받게 된다. 취득세가 조금 많이 나올 순 있지만 대출 면에서 유리하다. 대출은 통상 분양가 60%까지 가능하니 필요한 자금이 얼마인지 잘 계산해보라. 신탁회사로 등기도 돼 있어서 문제는 없다”고 귀띔했다.
#당사자 신고 안 하면 적발 어려워
부동산 매매금액을 실제와 다르게 신고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부동산거래신고법)에 따라 부동산 매수인과 매도인은 거래계약 체결일부터 30일 이내 관할 시·군·구청장에게 공동으로 신고해야 한다. 개업공인중개사가 거래계약서를 작성·교부한 경우 개업공인중개사가 신고 의무를 가진다. 거짓으로 신고하는 행위를 조장·방조할 경우 4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가짜 계약서를 근거로 금융기관 대출을 받을 경우엔 형사처벌을 받는다. 최근 대법원(2018도 19772)은 담보로 제공할 부동산 금액을 허위로 부풀려 금융기관 대출을 받은 경우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원심과 달리 사기죄의 이득액을 대출금 전부(25억 5000만 원)로 보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원심은 대출금에서 실제 매매 계약서를 제출했을 경우 대출받을 수 있었던 금액을 뺀 나머지 금액만 부당 이득으로 봤다.
부동산 실거래가 허위 신고는 불법이지만 적발이 어렵다. 거래 당사자가 눈감으면 외부에서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가 2018년 부동산거래신고법 위반 행위로 적발한 사례 9596건 중 업 계약(219건)과 다운 계약(606건) 등 허위신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8.6%에 불과했다. 8103건은 지연·미신고로 적발됐다. 앞서의 김예림 변호사는 “실제 할인 분양을 하고도 통상적인 매매가격으로 신고한다면 외부에서 포착하기 어렵다. 업 계약이나 다운 계약도 당사자 간 매매 계약이기 때문에 계약이 파기돼 당사자가 신고하지 않는 한 적발이 어려운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업 계약은 시장은 물론 매수자 개인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서원석 중앙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 기능을 왜곡하는 게 업 계약의 가장 큰 문제다. 가짜 매매 가격이 시장 가격보다 높게 형성되면 부동산 실수요자가 비싸게 계약을 하게 된다. 금융기관이 부동산 가치 등 상환 능력을 부실하게 검증해 대출까지 실행하면 금융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며 “부동산 시장 상황이 좋을 때에는 매매 가격 자체가 올라가기 때문에 매수자가 높은 채무를 감당할 수 있지만, 업 계약을 했다는 건 그렇지 않다는 반증이기 때문에 추후 매수자의 가계 안정성에 큰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는 이 신고 건에 대해 “권익위는 조사·수사 권한은 없기 때문에 신고 내용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고, 심사의견서를 작성해 기관에 조사 및 수사를 의뢰한다. 12월 2일 의결을 거쳐 다음달 지자체 등으로 이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문제의 오피스텔을 관할하는 지자체의 부동산 거래신고 담당자는 “이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한다. 권익위에서 신고 내용이 전달되면 불법사항이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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