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수백억 원대 사기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P2P(Peer to Peer Finance) 대출 업체 대표가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피해자들과 합의할 계획이라며 법원과 투자자 설득에 나섰다. 그런데 합의 방법이 석연찮다. 현금이 아닌 암호화폐로 대신 갚겠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항소심 판결을 일단 연기하기로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9일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자금 약 250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P2P 대출 업체 A 대표의 항소심 판결을 연기했다. A 대표가 항소심 자리에서 피해자와 합의가 진행 중이라고 읍소한 까닭이다. A 대표는 피해자들에게 현금이 아닌 암호화폐를 지불하겠다며 합의에 나서고 있다.
A 대표가 운영하는 P2P 대출 업체는 부동산을 담보로 다수의 차주와 투자자를 연결하는 P2P 연계 대부업체다. A 대표는 2016년부터 친동생 B 씨와 차주 C 씨를 끌어들여 사기를 계획했다. P2P 대출이 허위·과장 모집에 취약하다는 특성과 P2P 대출에 대한 제도나 규제가 마련되지 않은 틈을 이용해 미담보 대출을 마치 담보가 충분한 것처럼 상품설명서를 작성해 투자자를 끌어들였다.
그렇게 모인 투자금은 약 400억 원 수준으로 이들 3인은 그중 약 250억 원을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법원은 5월 열린 1심 판결에서 A 대표에겐 징역 10년, B 씨에겐 징역 4년, C 씨에겐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투자자들과 원만히 합의하겠다는 게 이유였다. A 대표는 29일 항소심 선고 자리에서 “투자자들과 합의할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 200여 명이 합의하기로 했다. 지금도 합의를 원하는 투자자들이 문의 중인 것으로 안다. 원만히 합의할 수 있도록 선고를 연기해주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해 면제를 위해 시간을 달라는 의미인 것 같으니 일단 그렇게 하겠다. 다음 선고 기일을 1월 10일로 연기하겠다. 그 안에 (피해자들과) 합의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피고인 A는 구속 만기일이 12월 7일이니 추가 구속영장 발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A 대표는 피해자들에게 상환하지 못한 투자금을 가상화폐로 지급할 계획이다. A 대표는 P2P 대출 업체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에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암호화폐업체 D로부터 120억 원 상당의 코인을 조달받아 지급할 수 있게 됐다. 1코인 당 한화 300원으로 계산해 지급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이러한 암호화폐를 지급하기 위한 조건으로 A 대표는 피해자들에게 처벌 불원서와 상품별 투자 잔액 내역서를 제출할 것을 제안했다. 처벌 불원은 피고인에 대한 민·형사상 이의 제기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가상 화폐를 받으려면 피고인을 용서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가상화폐로 투자금을 돌려받는다고 해도 한 번에 현금으로 돌려 받을 수 없다. 코인은 6개월 이후 매달 10%씩만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둔 까닭이다.
이상현 법무법인 태율 변호사는 “코인의 가치가 검증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현재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 급락할지 모르기 때문에 ‘코인 합의’ 제안이 들어올 경우 거절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사례가 또 있다. A 대표의 P2P 대출 업체를 포함한 3곳 정도가 ‘코인을 지급할 테니 합의하자’라는 이른바 ‘코인 합의’를 제안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A 대표를 포함한 3인도 코인 합의로 감형받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들은 듯하다. 이는 명백히 사법부를 기만하는 행위다. 피해자들은 지급하려는 코인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코인을 유동화해 현금으로 지급해달라고 해야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한편 피해자들은 피고인을 상대로 ‘엄벌 탄원서’를 다시 작성해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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