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뚝섬역 1번 출구 인근은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블루보틀(Blue Bottle)과 역세권을 합한 말인 ‘블세권’으로 통한다. 무려 7000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네슬레에 매각된 블루보틀은 성수동 상권의 중심을 성수역에서 뚝섬역까지 확장했다.
성수동 상권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성수동은 2호선 지하철(뚝섬역·성수역)에 분당선 ‘서울숲역’이 지나는 ‘더블 역세권’과 함께 숲과 강 사이에 놓인 ‘비옥한 삼각주’다. 블루보틀이 들어선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젠트리피케이션’ 조짐은 없을까 의문을 가지고 27일 성수역과 뚝섬역 주변을 둘러봤다.
#유동인구 아직 없는데, 임대료는 서울시 평균 이상
서울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서비스에서 성수동은 ‘골목상권’으로 분류된다. 오래전부터 작은 골목에 다가구 주택단지와 아파트형 공장이 발달했기 때문. 공장 부지와 다가구 주택을 개조해 입점한 다양한 카페, 음식점, 공유오피스 등을 중심으로 성수동은 수년 전부터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뚝섬역 일대는 골목 전체가 활성화됐다기보다는 군데군데 가게가 들어서 있는 정도였다. 블루보틀의 유인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임대료 역시 아직은 평범한 수준이다. 6평 세탁소에서 임대료 70만 원을 내는 A 씨와 10평의 가게에 임대료로 150만 원을 내고 있다는 음식점 주인 B 씨, 그리고 10평 가게에 임대료 120만 원을 낸다는 C 씨를 만났다. 임대료 시세는 평당 10만~15만 원 선인 셈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분기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 상업용 부동산 1㎡ 당 3만 9900원. 3.3㎡(평)당 13만 1679원이다.
A 씨의 세탁소가 위치한 골목은 중국집, 분식집 등 영세 상권이 밀집해 있었다. 블루보틀 입점 이후 임대료 시세를 묻는 질문에, 8년 전부터 세탁소를 운영해온 A 씨는 4년 전부터 임대료가 1년에 5만 원씩 올랐다고 했다.
이 지역의 통장은 “이곳 골목 임대료는 많이 안 올랐다. 블루보틀 입점 이후 불편한 점은 주차하기 힘들다는 정도다. 대신 건너편 골목이 약간 올랐다고 들었다. 새로 들어온 집(건물 주인이 바뀐 경우)만 임대료가 확실히 상승했다”고 답했다. 이어 “대형 부지의 공장은 이미 임대료 상승 때문에 파주나 다른 지방 등지로 많이 내려간 상태”라고 부연했다.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는 건너편 골목에서 식당을 하는 1층 가게 점주 B 씨에게 물어봤다. B 씨는 10평 남짓한 공간에 150만 원의 임대료를 내고 있다. 임대료가 높아 매출을 올리기 위해 배달 서비스도 병행 중이다. 이 식당은 유명 연예인이 최근 매입한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이 매매되는 과정에서 임대료가 오른다는 이 지역 주민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골목 상권은 쇼룸과 전시장 등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C 씨는 10평 남짓에 임대료 120만 원을 내고 있었다. 비싼 상가에 왜 입점했냐는 질문에 역과 가깝고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결정했다는 답변을 내놨다.
성수동 상권은 높은 기대 심리로 인해 임대료가 평당 15만 원까지 치솟은 상태지만, 실제 유동인구는 많지 않아 당장 감내해야 할 고통이 적지 않아 보였다. 아직까지는 일부 건물이나 골목에 따라 임대료가 들쭉날쭉하지만, 향후 전체적으로 임대료가 상승한다면 이미 자리를 잡은 영세 상인들은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성수동은 신구가 섞인 공간이다. 때문에 매매값은 가파르게 상승한 상태지만 낙후지역을 중심으로 임대료가 낮은 곳도 있다. 그러나 지식산업센터 등 오피스 상권이 들어선다면 입주 전후 6개월을 기점으로 영세 상권이 모두 빠지게 될 것”이라 답변했다.
#일교차 큰 오피스 상권…더딘 개발속도 극복할 기획력 ‘관건’
늦은 오후가 되자 성수동 주변 인적은 더욱 드물어졌다. 서울시 상권분석에 따르면 성수동 유동인구는 점심 대비 저녁 시간대에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집계됐다.
저녁 7시쯤, 서울숲 오피스 단지 인근 15평 크기의 1층 식당을 방문했다. 이곳 점주에게 매출을 묻자 “저녁 장사는 정말 안 된다. 간간이 야근하는 회사원의 방문이 대부분”이라며 “주변 상권이 다 매물로 나온 상태”라고 답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1년 전에 비해 임대료가 20% 올랐다. 그러나 임대료가 올라가면 뭐하나. 밥 먹을 사람이 없어 매출이 안 나오는데. 오피스와 주거 인구로 점심시간은 꽉꽉 차 회전율이 좋지만, 저녁때는 한산하다. 잘되는 곳만 잘된다. 골목에도 줄이 늘어선 곳과 파리만 날리는 곳이 공존한다”며 침체된 상권을 걱정했다.
이곳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장사가 잘되는 편인 유명 국밥 맛집은 50평형 매장에서 하루 500만 원의 매출을 올린다. 맛집리스트에 오른 또 다른 가게도 30평형 매장에서 하루 40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고 한다.
지난 11월 초 공개된 KB부동산 리브온의 상권분석 결과에 따르면 ‘블세권’ 주변 300m 반경 상권에서 상위 매출 20% 매장의 매출액은 85.7% 증가한 반면 하위 매출 20% 매장의 매출액은 47.8%나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상권이라도 매출액 변동률 차이가 크다.
서울숲 인근 대로변 토지 매매 시세는 평당 1억~1억 2000만 원 정도, 골목은 6000만~8000만 원 정도다. 유동인구가 성수동에 비해 10배 이상인 건대입구 상권이 1억 5000만 원 전후에 거래되는 점을 감안하면 임대료 및 부동산이 차지하는 부담이 다소 큰 편이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이미 시세가 많이 오른 성수동 상권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자본력만 가지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기획력이 중요하다. 골목상권을 차지하는 식당의 경우 ‘맛’이 관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빈 창고를 개조해 전시회 및 카페, 펍 등으로 다양하게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로컬 크리에이터인 ‘대림창고’, ‘어반소스’ 등이 대표적이다.
공장이 떠난 대형 부지에는 지식산업센터 등 중·대형 오피스 건물 등이 착공에 들어갔다. 선 대표는 “지식산업센터 중심으로 분양가가 비싸다. 이는 임대료도 비싸다는 의미다. 공사 주변 상권을 노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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