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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제비 총액관리제, '문재인 케어' 건보재정 적자 대안 될까

시민단체 "비싼 약 권하는 사례 줄어들 것" vs 제약업계 "매출 악화로 신약 투자 소극적 될 것"

2019.11.29(Fri) 15:34:32

[비즈한국] 9년 뒤 정부의 건강보험 지원금 액수가 올해 대비 두 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명재 의원실이 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받은 ‘고령 인구 증가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지원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지원금은 올해 7조 9000억 원에서 2028년 15조 7000억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올해부터 5년 연속 적자가 예상될 정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건강보험 재정이 고전하는 데는 약품비가 급속히 증가하는 영향도 크다. 보건복지부의 ‘2018 보건백서’에 의하면 2017년 건강보험에서 지출한 약품비 규모는 총진료비의 25.1%를 차지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의약품 판매액을 제출한 OECD 27개 국가 중 5번째로 건강보험 약품비가 높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제비 총액관리제’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약제비 총액관리제는 동일한 효능을 가진 의약품에 대해 건강보험에서 지급하는 약제비 총액 상한선을 정해놓는 제도이다. 이 범위를 넘어가는 약제비는 제약사가 부담해야 한다.

 

지난 22일 정부와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한국보건의료기술평가학회 후기학술토론대회에서 총액관리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면서 제도 도입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약제비 총액관리제가 언급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7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은 70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이 제도 도입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그러나 당시 제약업계는 난색을 표시했고 건보공단과 복지부는 ‘연구일 뿐’이라며 일단 선을 그었다.

 

#의약품 환자 접근성 높이면서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도 확보할 대안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약제비 총액관리제가 주목받는다.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이 경기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2주년 대국민성과보고대회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약제비 총액관리제에 대한 논의가 계속 이어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고령화와 만성 질환의 증가로 건강보험 지출 약품비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현행 약가 관리 제도가 개별 의약품에 대해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 이는 전체적인 약품비를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준다는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한층 커졌다. 또 최근 들어 고가의 신약이 많이 등장하면서 환자들 사이에서 건강보험 급여 적용 요구가 거세짐에 따라 이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가령 지난해 3월 국내 시판이 허가된 사노피아벤티스의 신약 듀피젠트는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에게 효과적이라고 입소문이 났다. 그러나 1년간 2400만 원 정도로 비용 부담이 커 건강보험 적용 요청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지난 10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통과했다. 심평원과 제약회사의 약가협상이 이뤄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통과하면 내년 1월께부터 급여가 적용될 전망이다.

 

약제비 총액관리제​를 둘러싼 의료계 시민단체와 제약업계의 입장은 엇갈린다. 우선 시민단체에서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환자들이 훨씬 낮은 가격으로 약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특히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의 경우 의약품을 선택할 권리를 의사가 독점하는 구조다. 따라서 병원과 제약회사의 이해관계에 따라 효과는 비슷하지만 비싼 약을 처방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시민단체는 의약품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이 높아져 전체적인 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 주장한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정책팀장은 “우리나라는 지역의 작은 의원 의사도 많은 약을 처방할 권한을 갖고 있다. 100원짜리와 300원짜리 약이 있다고 할 때 의사가 300원짜리 약을 선택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다”며 “때문에 건강보험 약제비가 과용되는 측면이 있고 환자들도 불필요한 약을 처방받으니 본인 부담금이 늘어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제약업계는 매출 악화 우려…정부와 학계 적극적으로 합의점 모색해야

 

시민단체는 의약품에 대한 환자의 접근성이 높아져 전체적인 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 주장한다. 반면 제약업계는 손실이 예상된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처방전에 따라 약을 고르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반면 제약업계는 손실이 뻔히 예상된다며 난색을 보인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때문에 실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지만,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제약사로서는 걱정되는 대목이다. 약이 많이 팔려 매출이 늘어나더라도 초과 비용을 토해내야 하는 제도라 부담스럽다”며 “만약 제도가 시행된다면 지금보다 연구개발(R&D)비를 대폭 늘리는 등 정부에서 또 다른 성장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여러 국가에서는 ​약제비 총액관리제와 비슷한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의사에게 할당된 약제비 내에서 처방하도록 지출을 제한하는 방식과, 설정해놓은 약제비 총액을 넘어가는 경우 제약사가 환자에게 초과분을 반납하는 방식 두 가지가 있다. 총액관리제를 실시하는 유럽 국가 모두 환자에게 의약품 선택 권한을 부여해 환자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따라서 제약업계가 무조건 반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정부와 제약업계가 이 제도를 두고 좀 더 적극적인 합의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갖는다. 앞서의 이동근 정책팀장은 “총액관리제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나왔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한 면이 있었다. 제약업계에서는 산업이 둔화한다고 반발하고, 의사는 제약회사와의 관계에서 높은 지위를 점하려 다소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는 지난 2017년 발간한 ‘약제비 총액관리제 도입 방안’ 보고서에서 “제도를 통해 시장에서 낮은 약값에 대한 수요를 높이는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우수한 약제에 대한 보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약품비를 거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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