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핼러윈(win). 핼러윈이 이겼어요.”
지난해 서울교통공사가 집계한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이용객 추이를 보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달은 핼러윈데이가 있는 10월이다. 10월 한 달 동안 약 130만 명이 승하차했다. 연말 송년회와 크리스마스 연휴가 있는 12월(약 120만 명)보다 10만 명이나 더 많았다.
어느덧 핼러윈데이는 크리스마스를 뛰어 넘는 연말 최대 기념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핼러윈데이를 앞둔 10월 마지막 주말, 이태원에는 ‘힙’한 코스튬을 차려입은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찬다.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색이 빨간색이라면, 핼러윈은 좀 더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된다. 그만큼 다양한 개성이 공존한다. 지난해는 미국 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어벤져스의 히어로 분장이 대세였다면, 올해는 조커 분장이 단연 인기였다.
#핼러윈 코스튬 입으면 ‘해방감’
서울에 사는 33세 A 씨는 올해 처음 핼러윈을 즐겼다. 지인이 핼러윈에 ‘어벤져스’ 코스튬을 할 것이라며 SNS에 글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인터넷에서 스파이더맨 코스튬을 3만 5000원에 구매하고, 뜻이 맞는 다른 지인을 끌어 모아 어벤져스 캐릭터 군단을 결성했다. 이들은 핼러윈을 앞둔 10월 마지막 주말에 이태원 거리를 함께 활보하며 축제를 즐겼다.
A 씨는 평소 회사생활과 동아리생활 등의 사회적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모르는 사람들과 깊은 대화 없이 어울리고 싶은 생각에 핼러윈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는 소속감이 많은 영향을 미쳐요. 내가 실수하거나 타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하면 내가 속한 집단에도 피해가 갈까 괜한 걱정이 돼요. 표정 하나 행동 하나 신경 쓰기 바빴어요. 하지만 핼러윈 때는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 찍을 때 표정, 시선 처리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편했어요. 온전한 나 자신, 즉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올해 핼러윈에 동참한 26세 B 씨 역시 “표현에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날”이라며 “과감한 시도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모든 게 허용되는 느낌”이라고 답했다. 밀레니얼에게 핼러윈데이는 일종의 해방이다. 일체감보다는 나만의 개성 표현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핼러윈에 열광하는 이유다.
‘미닝아웃(Meaning Out)’은 소비 행위를 통해 남들에게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던 정치적·사회적 신념을 표출한다는 뜻의 신조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생겨났다. 올해 핼러윈에는 퀴어·인종·젠더 등 사회적 소수자에 지지와 응원의 의미를 담은 코스튬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 ‘#핼러윈’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게시물은 11월 26일 현재 약 170만 건에 달한다. 해시태그 분석 업체에 따르면 ‘핼러윈’ 관련 해시태그는 2년 새 100만여 건 이상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크리스마스는 연인·가족과, 핼러윈은 노는 날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말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연말 모임 계획’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47.1%가 지인들과의 모임 대신 혼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보내는 ‘나홀로 연말족’을 꿈꾼다고 답변했다. 이유는 ‘지출 등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43.7%), ‘혼자가 편해서’(35.9%) 등이 많았다.
1인 가구 비중이 높은 2030 세대에게 크리스마스는 가족 행사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실제로 취재에 응한 밀레니얼 세대 대부분은 모두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떠오르는 것’에 ‘커플과 가족’이라고 답했다.
“크리스마스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야만 하는 통념이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 친구들과 보내는 게 청승 혹은 루저라는 이미지가 강해요.” (대학원 준비생 27세 C 씨)
“크리스마스가 ‘연인을 위한 기념일’이라는 인식이 예전보다 강해진 반면, 핼러윈 파티는 같이 갈 친구만 있다면 부담 없이 즐겁게 갈 수 있어요.” (성균관대 재학생 24세 D 씨)
밀레니얼은 혼자에 익숙하며, 소속감보다는 ‘존재감’을 원하는 세대다. 심지어 취업난·경제난에 연애를 선택하지 않는 1인 가구의 비율이 느는 추세여서 ‘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자기 존중감’이 트렌드 단어로 떠오른 요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 각종 자기성찰 에세이가 몇 달째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 있다.
네덜란드의 역사가이자 철학가 요한 하위징아는 현대인을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루덴스’라고 정의했다. 이처럼 앞으로도 밀레니얼의 놀이 문화 관련 산업은 더욱 성장할 전망이다. 대표적인 EDM 축제인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UMF)’은 매년 약 15만 명 이상이 참가해 사흘간 150억 원 넘는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핼러윈은 이러한 밀레니얼의 존재감에 대한 열망과 놀이 문화가 결합되면서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가족 혹은 커플 행사로 여겨지는 크리스마스보다 핼러윈이 밀레니얼의 연말 최대 기념일로 자리 잡은 이유다.
#크리스마스 바가지요금도 부담
비용도 크리스마스가 부담스러운 이유 중 하나다. 인터뷰에 응한 E 씨는 애인이 있지만, 유독 크리스마스에는 데이트를 피한다고 했다. “과거에도 항상 크리스마스가 하루이틀 지나고 만나서 데이트를 했다. 크리스마스 날만 유독 비싸게 받는 바가지요금 때문”이라며 “주변 친구들을 보면 하루에만 20만~30만 원은 쉽게 나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회원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2030 커플의 1회 데이트 비용은 보통 5만 원에서 7만 원 정도로 나타났다. 아무리 크리스마스가 대목 장사라고 해도 지나치게 많은 지출을 감수해야 하는 것.
25세인 F 씨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숙박비만 15만 원, 식비 5만 원, 선물 5만 원이 들었다고 답했다. 숙박비는 ‘더치페이’ 했지만, 나머지 비용 부담도 수입이 적은 20대에게는 결코 적지 않다.
최근 잡코리아가 발표한 올해 송년회 계획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남녀 10명 중 5명이 ‘간소하게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시끌벅적한 망년회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달리 밀레니얼은 갈수록 간소하고 저렴한 연말을 원하는 추세다. 단순히 저작권료 때문에 길거리에서 캐롤이 들리지 않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지 않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황채영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현장] 30년 된 동서울터미널 개발, 한진중공업·상인 갈등 내막
·
[단독] '정운호 게이트' 주역, 50억 원 청담동 고급아파트 '옥중 매입'
·
[단독] 모 시중은행, 1·2심 징역형 선고 부행장 감싸고 승진까지, 왜?
·
[올댓튜브] 완벽한 할로윈을 즐기기 위한 세대별 방법
· [가토 드 뮤지끄]
할로윈에 딱 '악단광칠'과 리치몬드 에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