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0월 24일, 경남 진주에서 배달라이더로 일하던 만 19세 남성이 배달 업무 중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저녁 7시 왕복 4차선 도로를 달리던 오토바이는 가로등을 들이받았고, 사고 당시 남성 주변에서 안전모는 발견되지 않았다.
배달라이더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남성은 9월 6일부터 사고가 난 10월 24일까지 단 하루를 제외하고 매일 일했다(로그인 기준). 배달대행 플랫폼사와 위탁계약을 맺은 ‘배달대행업체’는 이 남성의 오토바이가 행정기관에 등록되지 않았고 보험 가입도 되지 않았음을 알고도 배달원으로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달원은 특수고용노동자 분류 중 ‘퀵서비스 기사’에 속해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된다. 산재보험 가입을 하지 않았더라도 관련 법에 따라 산재적용제외신청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산재 처리가 될 수 있다. 사업주가 산재보험 신고를 게을리한 기간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지급한 산재보험급여 일부를 사업주로부터 징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라이더의 고용형태를 어떻게 볼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근로자와 특수고용노동자가 받는 ‘목숨값’은 다르다. 근로자로 산재 승인을 받으면 실제 월수입의 평균 70%를 보험금으로 적용하지만, 특수고용노동자로 산재 승인을 받으면 무조건 최저임금으로 적용된다. 사업주 책임 또한 모호해지는 문제가 발생해 특수고용 산재보험은 노동자가 50%를 부담하는 구조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라이더를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했지만, 라이더유니온은 개인사업자에 속하는 특수고용노동자가 아닌 ‘근로자’였다고 주장한다. 배달대행업체는 출퇴근 시간과 휴무뿐 아니라 화장실에 가는 시간까지 카카오톡방을 통해 보고받았으며, 배차를 강제로 지시하는 내용의 카카오톡도 확인된 상황이다. 라이더유니온 측은 “업무수행 전반에서 업체의 관리·감독을 받았던 라이더라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명백하다”고 말했다.
#산재보험 들어도 ‘전속성’ 따라 적용 못 받는 경우 있어
11월 26일 오전 10시 합정이동노동자쉼터에서 라이더유니온 주최로 ‘배달라이더 노동자의 특수고용산재 적용’ 관련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노동현장에서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아직도 사업주 책임이 아닌 사고 당사자 부주의로 취급된다. 이번 진주 배달원 사망사건도 위험천만한 운전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라이더유니온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진주 배달노동자 사망사건 관련 조사 내용을 발표하면서 ‘배달플랫폼 업체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한다고 홍보하는데, 정작 현행법에 따르면 전속성 기준 때문에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현행 특수고용산재보험 기준에 따르면 배달라이더는 자기 총수입의 절반 이상을 얻는 곳에서만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부업으로 배민커넥트 같은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배달 서비스에 종사하거나 여러 곳의 콜을 동시에 받는 배달라이더의 경우 산재보험에 들었어도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는 뜻이다.
최근 배달의민족 ‘배민커넥트’, 메쉬코리아 ‘부릉프렌즈’, 쿠팡 ‘쿠팡이츠’처럼 일반인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배달 수단으로 배달하는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배달 서비스가 늘고 있지만, 이 중 모든 라이더가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건 배민커넥트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속성 문제 때문에 근로복지공단이 산재 처리를 보류하는 경우가 생겨 결국 배달원들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산재 적용이 안 되는 경우는 일부 사안이다. 산재보험을 보장하는 건 근로복지공단의 역할이고, 근로복지공단에서 배민커넥트의 계약형태를 검토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근로복지공단과 함께 라이더의 산재보험 가입이 유지되고 보상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형태근로자 10명 중 1명만이 산재보험에 가입
특수형태근로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지난해 12월 이주하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가 참여연대 ‘월간 복지동향’에 쓴 글에 따르면 특수형태근로자 10명 중 1명만이 산재보험에 가입한 실정이다. 이 교수는 “회사 직원의 경우 당연히 산재보험이 적용되며 보험료는 100% 고용주 부담인 반면, 특수형태근로자는 본인이 전액 혹은 절반을 책임져야 한다. 더욱이 본인이 원치 않으면 가입하지 않을 수 있는 ‘적용 제외’ 조항이 있다. 즉 특수고용노동자 전체가 아닌 단지 9개 직종에만 적용하는 산재보험의 특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임의 가입 방식과 보험료의 높은 자비 부담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문제는 준비 없이 사업을 시작한 ‘혁신 기업’과 노동자 보호를 시급한 문제로 여기지 않는 ‘정부기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겸 노무사는 “혁신을 외치는 스타트업들이 노동법에 대한 인식 없이 사업을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노동의 형태는 다양하게 변화하지만 최전선의 노동자를 보호하는 일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라이더유니온 측은 “이런 일이 생기면 유족들이 전문가가 된다. 법을 공부하고 직접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남 진주에서 사망한 배달라이더도 특수고용노동자가 아닌 근로자임을 경찰도, 근로복지공단도 조사하지 않아 유족과 라이더유니온이 증거를 모으고 제출했다. 누구 하나의 일이 아닌 배달업계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라이더유니온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 시 근로자 여부 먼저 조사 △플랫폼사와 배달대행업주가 산재비 분담 △산재적용제외신청제도 폐지 등의 내용이 담긴 산재 대책안을 내놓았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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