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고의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급하게 펑크를 냈습니다. 이미 오케스트라는 준비하고 있습니다. 키를 바꿀 수도 없습니다. 대체 누가 최고의 목소리, 파바로티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이때 등장한 사람이 바로 50대 흑인 여가수, ‘레이디 소울’이라 불리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었습니다. 파바로티의 상징 곡 ‘네순 도르마(Nessun Dorma)’를 단 15분 만에 외운 그녀는 파바로티를 대신해 무대에 올라 남성 키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셀린 디온, 휘트니 휴스턴 등 알려진 디바들 또한 이미 나이 든 아레사 프랭클린 무대 뒤에 서거나 함께 서는 걸 기피했다고 합니다. 노년임에도 지지 않겠다는 자존심에 이기적일 정도로 화려한 테크닉을 가졌기 때문이라네요. 작년 췌장암으로 타계했음에도 아직도 음악 매체에서 ‘역대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15분 만에 ‘네순 도르마’를 외워 파바로티를 대신한 아레사 프랭클린의 무대.
그녀의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곧 개봉합니다. 전성기였던 1970년대 초반 교회에서 이틀간 녹음한 앨범 녹음 현장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그녀의 앨범 녹음 현장이 영화로 담길 수 있었을까요?
아레사 프랭클린은 1942년 목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보컬리스트이자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레사 프랭클린이 10살 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레사의 아버지 클라렌스 프랭클린은 ‘백만 불짜리 목소리’라 불릴 정도로 전설적인 목사였습니다. 자연히 그의 곁에는 다양한 흑인 유명인이 모였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등 흑인 인권운동의 전설도 있었고, 제임스 클리블랜드, 클라라 와드 등 전설적인 가스펠 음악가도 있었습니다. 클라라 와드와 아레사의 아버지는 연인 관계이기도 했습니다.
전설적인 가스펠 뮤지션 사이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은 자연스럽게 음악을 배웠습니다. 10살 때부터 피아노 연주를 듣기 시작했고, 이후 제임스 클리블랜드 등 아버지 주변의 가스펠 뮤지션들에게 정식으로 음악 테크닉을 배웠습니다. 12살부터는 아버지와 함께 ‘가스펠 음악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18살에 콜롬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가스펠을 넘어 팝 시장에 데뷔한 거죠. 그녀는 시작부터 ‘빌보드 톱 100’에 오르는 성과를 거둡니다. 이후 1967년에는 애틀랜타 레코즈로 자리를 옮기지요. 이 시기에 그녀는 ‘어 내추럴 우먼(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아이 세이 어 리틀 프레이어(I Say a Little Prayer)’, ‘돈 플레이 댓 송(Don’t Play That Song You Lied)’ 등 명곡을 쏟아냅니다.
그중에서도 ‘리스펙트(Respect)’는 지금까지도 아레사 프랭클린을 대표하는 곡입니다. 본래 흑인 인권운동 곡으로 ‘나를 존중해달라’는 의미를 담았던 이 노래는 아레사 프랭클린이 불러 여성운동까지 대변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집회에서 아레사 프랭클린의 리스펙트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레사 프랭클린의 ‘리스펙트(Respect)’.
이렇게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녀가 1972년, 돌연 가스펠 음악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자신의 음악적 스승인 제임스 클리블랜드 목사와 남부 캘리포니아 지역 합창단(Southern California Community Choir)과 함께 말이죠.
아레사 프랭클린은 딱 이틀 동안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침례교 교회를 빌려 다양한 찬송가, 복음 성가를 녹음했습니다. 청중을 불러 모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 식대로 불렀죠. 이 녹음은 그대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나 같은 죄인 살리신)’라는 이름으로 발매됐습니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됩니다.
녹음 과정은 워너에서 비디오로 녹화해뒀습니다. 당대를 풍미한 영화감독 시드니 폴락의 지휘로 말이죠. 다만 이 영화는 소리와 영상의 싱크가 잘 맞지 않아 워너의 창고에 갇혀 있었습니다.
2010년대 영화 제작자 앨런 엘리어트가 이 필름의 판권을 샀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후 두 차례 이 영화를 발표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이 영화의 발표를 막았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가족들과 음반 제작자 조 보이드,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 등이 의기투합해 2018년에야 영화화될 수 있었습니다.
기회가 닿아 시사회에서 미리 이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에는 아무런 스토리가 없습니다. 아레사 프랭클린이 합창단과 자신의 밴드와 함께 잘 알려진 찬송가를 부르고, 청중은 회답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에는 엄청난 힘이 있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흑백 화합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마틴 루터 킹은 이 영화를 찍기 전 사망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앨범 발매 7년 뒤 강도에게 총을 맞아 5년간 사경을 헤매다 사망합니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학교에 가고, 동등하게 버스를 타도록 한 법안이 만들어진 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백인이 흑인을 피해 시골로 떠났던 그 시절 흑백 청중은 모두 아레사 프랭클린이 부르는 찬송가를 들었죠. 그 모습 자체로 하나의 화합이었던 겁니다.
아레사 프랭클린의 ‘하우 아이 갓 오버(How I Got Over)’.
아레사 프랭클린은 주체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리더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디바들과 경쟁에서 이기고자 과도해 보일 정도의 테크닉을 구사할 만큼 그녀는 자존심이 강한 디바였습니다. 영화에서 그녀는 청중에게 한 마디도 건네지 않습니다. 그저 노래할 뿐입니다.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음악을 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합니다. 청중은 물론 지휘자와 합창단, 밴드 그리고 그녀의 음악적 스승이던 제임스 클리블랜드 목사까지 그녀의 재능이 발화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봅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위대한 음악 영화입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부터 ‘유브 갓 어 프렌드(You’ve Got a Friend)’까지 잘 알려진 곡들을 1960~1970년대 소울, 리듬 앤드 블루스 형식으로 바꿔 부릅니다. 노래 자체의 힘이 엄청나죠. 칼 같은 박자와 풍성한 가스펠 연주를 보여주는 프랭클린의 밴드. 감정에 취한 애드리브와 환호를 지르면서 박자와 하모니를 놓치지 않는 합창단. 소울 가득한 정통 가스펠 음악을 보여주는 제임스 클리블랜드 목사. 흥에 취해 화려한 탭댄스 스텝을 밟는 청중까지. 흑인 음악의 근원 중 하나인 가스펠이 무엇인지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물론 그 음악의 중심에는 아레사 프랭클린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이자, 앨범의 대표곡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그 자체로 충격입니다. 피아노 연주와 그녀의 목소리만으로 모두가 한 번쯤 들어 본 찬송가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강렬한 음악으로 바꿔버립니다. 흑인 인권 집회 때마다 울려 퍼진 ‘운동권 노래’이기도 해 상징하는 바가 더욱 크겠지요.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 예고편.
팝음악의 근원에는 흑인 가스펠 음악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목사였던 아레사에게는 흑인 교회 음악은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겠지요. 자신의 전성기에 모든 재능을 고향에서 다시 보여주는 것은 음악사에서, 흑인 인권운동의 역사에서, 그리고 여성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될 겁니다. 역대 최고 여성 보컬리스트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보여주는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였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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