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각종 첨단무기가 난무하는 21세기 전쟁에서도 전차와 장갑차는 지상전의 핵심 전력이다. 하지만 냉전 시대의 정면 승부가 아닌 저항세력들이 도심지를 휘저으며 매복과 기습을 하는 현대전장에서 전차와 장갑차는 손쉬운 표적이 될 수도 있다.
최근 30년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전차와 장갑차가 겪은 가장 큰 굴욕은 1994년 12월 체첸 그로즈니의 러시아의 최정예 병력이 겪은 지옥 같은 전투일 것이다. 수적 질적으로 크게 우세한 러시아군의 기갑부대는 시가지 내에서 정교하게 조직된 체첸 대전차 매복조에 의해서 불과 3일 만에 전차와 장갑차 146대 중 122대를 잃어, 무려 83%의 손실률을 기록했다.
물론 2000년대 들어 체첸처럼 한 전투에서 전차와 장갑차 부대가 전멸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안정화 작전을 하는 군대에서 전차와 장갑차가 대전차 매복조의 공격이나 IED(급조폭발물)로 파괴되어 반군의 선전 영상에 등장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전차와 장갑차는 지상 작전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또한 무적의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명백하게 드러났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국방과학기술은 이렇게 날로 늘어나는 전차와 장갑차에 대한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과 기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2030년대를 준비하는 차세대 전차와 장갑차 계획이 속속 공개되는 중이다.
지난 ADEX 2019 서울 에어쇼에서 로템이 공개한 차기전차, 일명 ‘XK-3’의 경우 완벽한 스텔스 설계와 화약과 전기의 힘을 같이 사용하는 전열화학포(Electrothermal Chemical Gun), 레이저 무기 등으로 무장하여 현대 전차보다는 오히려 SF 영화의 전투 로봇에 가까운 능력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장갑차 역시 여러 업체에서 K21 이상의 능력을 갖추게 될 차기장갑차들을 구상 중이다. 현대 로템의 경우 4명의 보병이 탑승하는 차세대 장갑차량을, 한화의 경우 호주의 랜드400에 제안중인 AS21 레드백 장갑차를 기반으로 한 보병 8명이 탑승하는 장갑차를 제안 중이다. 두 장갑차 모두 북한 및 주변국들이 운용중인 대전차 무기를 모두 방어하는 것은 물론, 원격 무인 운용이 가능한 일종의 ‘로봇 장갑차’가 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차기 전차와 차기장갑차로 무장할 미래 한국 기계화 부대는 성능 면에선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를 획득하게 되는 셈인데, 문제는 시간이다. 현재 계획으로는 차기전차는 2042년부터 생산을, 차기 장갑차는 2035년에서 2040 사이에 생산이 시작될 예정이다. 결국 우리 군은 최소 15년에서 20년 동안은 현재의 전차와 장갑차량을 계속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그 사이 K2의 추가생산 추진과 K21의 성능개량 이외에는 추가적인 전투력 향상 계획이 없다.
우선 K2 차기전차의 경우 국산 파워팩 문제로 양산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초기 계획인 400여대에 크게 못 미치는 약 250대에서 300대 내외 정도만 획득할 예정이며 이렇다 할 개량 계획도 잡혀있지 그나마 않다. K21 장갑차는 K2보다는 사정이 낫다. 원래 계획했던 400여대의 양산이 순조롭게 완료 되었다. 하지만 2028년 추가 성능개량 이외에는 추가적인 개량 계획도, 양산 계획도 백지 상태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우리 육군의 주력전차인 K2 전차와 K21 장갑차가 주적 북한군 기갑부대를 상대로 맞서기에는 결코 부족한 전력이 아니다. K21 장갑차의 경우 한국 육군의 특수한 요구에 맞추어 수출 실적은 없지만, K2 전차의 경우 핵심 부품과 기술을 포함한 기술 수출에 성공했다. 아울러 몇몇 국가로부터 완제품 수출 상담이 진행 중으로, 현재 실전 배치된 선진국들의 전차와 장갑차들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우리 군의 기계화 부대가 무적이며 아무 개량이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미래전에서 전투의 환경과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며, 과거의 지상전이 보병 대 보병, 전차 대 전차의 전투였다면 미래의 지상전은 복잡하고 알기 어려운 불확실한 상대와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확실한 상대에 대응하기 위한 신기술이 우리 군과 국방과학기술로 부족한 것일까? 기술은 부족하지 않지만 넘어서기 어려운 가장 큰 장벽이 있다. 기존의 능력이나 임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만 개조 및 개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령, K-2 흑표전차의 방어력 향상을 위해 국방과학연구소는 K-APS라 불리는 능동 방어 시스템을 개발해 적이 RPG-7 같은 로켓이나 미사일을 발사하면 즉시 격추할 수 있는 요격 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해당 시스템을 작동하면 전차 근처에 보병이 파편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장착이 보류됐다.
K-21의 방어력 향상을 위해 화학적 에너지로 적 로켓 공격을 막는 비활성 반응장갑(non explosive reactive armor) 역시 개발됐지만 중량이 무거워져 도하 작전을 할 수 없어 장착을 포기한 예도 있다. 다른 나라에서 이런 장비를 개발하거나 장착하면 그에 맞춰 운용 환경을 바꾸거나 전술을 바꾸어서 대처 가능하다. 하지만 대한민국 군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전시 작전계획이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매우 정교하게 짜여 있고, 이로 인해 무작정 방어력이나 공격력을 늘려서 중량제한을 초과하거나 도하능력을 삭제하는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 기계화부대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전략이 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전차, 장갑차의 개량으로 중량이 늘어나도 원활한 기동을 할 수 있도록 공병장비와 무장헬기에 대한 투자와 전력증강이 필수적이다. 사실 한국군의 전차와 장갑차량은 한반도의 복잡하고 험한 지형에서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공병대의 지원을 최소한도로 받거나 적게 받는 것을 감안하고 장비의 무게와 능력을 결정해 왔다.
특히 K-21 장갑차의 수상도하 능력은 도하 작전시 적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공중 지원을 받기 어렵고, 공병전력이 부족하여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집하고 있는 능력이다. 무장헬기 등 공중지원능력과 자주도하장비 등 공병장비의 확충이 된다면, 적은 비용으로 우리는 거의 모든 장갑차량이 적의 대전차 화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도록 쉽게 개량이 가능할 것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진화적 개발전략’의 기본 정신을 되살려, 차세대 전차 및 장갑차에 적용 예정인 기술들을 가능한 것부터 먼저 현용 전차와 장갑차에 장착하고 차세대 전차와 장갑차에 개량-발전형을 장착하는 방법이다.
차세대 전차와 장갑차에 적용될 기술 중 많은 부분이 순수 국내 개발 혹은 해외 공동개발로 향후 5년 내외에 실용화 가능한 것들이 많다. 가령 장갑차와 전차에게 강력한 스텔스 기능을 줄 수 있는 기동형 위장막(Mobile Camouflage System)은 이미 국내개발이 완료되어 양산 후 모듈형/고정형 등 지속적인 성능개량을 추진할 수 있다.
승무원이 내부에서 안전하게 저격수나 보병 진지를 공격할 수 있는 RCWS의 경우 육군의 ‘백두산 호랑이 4.0’ 계획으로 기동차량에 장착되는데, 이 때 전차와 장갑차에도 원활히 쓸 수 있는 ‘장갑차량용 특수 RCWS’를 개발, 적용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이밖에도 소음과 진동을 줄여주는 고무 궤도, 전차 승무원에게 가상현실(VR)기술로 360도 전 방향 감시기능을 제공하는 아이언 비전(Iron Vison) 등은 우선 기술도입 혹은 공동생산으로 현용 전차와 장갑차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후 기술을 축적하여 완전 국산화 버전을 생산해 차기전차와 차기장갑차에 적용하는 것이 종합적 전투능력과 개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미사일과 전투기, 공격헬기와 같이 수 조, 수 십 조원을 들여 도입하는 값비싼 무기들이 미래전의 주역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결코 이들만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다. 공격헬기가 아무리 많아도 모든 전선에서 적 전차를 상대할 수 없으며, 미사일과 포병이 아무리 강해도 결국 적을 마지막에 격파하고 지상을 점령하는 것은 보병과 기계화부대의 몫이다. 우리 군의 전차와 장갑차가 쉬지 않고 진화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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