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놓은 경제정책의 화두는 ‘소득주도 성장’이다. 국민의 소득을 늘리고 이를 통해 소비를 진작시킴으로써 경제성장을 이룬다는 논리다. 내수를 키움으로써 지나치게 높은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성장률을 재고하는 효과를 노린 정책이다.
여기에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 빈부격차를 해소한다는 명분도 있다. 하지만 현재 경제 상황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소득주도 성장’이 아닌 ‘세금주도 성장’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슬로건과 달리 국내총생산(GDP)에서 가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진 반면 세금을 투입하는 정부 지출이 맡은 비중은 역대 최고치로 올라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GDP에서 가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71.6%로 나타났다. GDP 중 가계 지출 비중은 문재인 정부 출범 전해인 2016년 73.1%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73.0%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을 본격화한 2018년에는 GDP 중 가계 지출 비중이 72.5%로 0.5%포인트 떨어진 데 이어 올해는 거의 1%포인트나 떨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GDP에서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급상승 중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해인 2016년 24.0%였던 정부 지출 비중은 2017년 24.2%, 2018년 24.7%로 상승한 데 이어 올해는 3분기까지 25.5%로 올랐다. 정부 지출 비중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GDP를 끌어 올렸다는 의미다.
이러한 상황은 가계 지출과 정부 지출의 성장기여도(전년 동기 대비) 흐름을 보면 뚜렷하다. 분기별 가계 지출의 성장기여도를 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2분기 1.2%p에서 서서히 올라 2018년 1분기에 1.6%p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이 본격화되면서 가계 지출의 성장 기여도는 급격하게 꺾였다. 2018년 2분기 1.3%p로 뚝 떨어진 데 이어 2019년 2분기에는 0.9%p로 1%p대 밑으로 떨어졌다. 올 3분기에는 0.7%p까지 하락했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계 지출의 성장기여도가 반 토막 난 셈이다.
반면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정부 지출의 성장기여도는 문재인 정부 들어 1%p대로 올라섰다. 정부 지출의 성장기여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2분기 0.5%p에 불과했으나 이후 꾸준히 상승해 2018년 4분기에 1.1%p를 기록했다.
이후 2019년 1분기 1.0%p, 2분기 1.1%p, 3분기 1.0%p로 올해도 1%p대 행진을 지속 중이다. 특히 올 1분기 성장률(전년 동기 대비)이 1.7%, 2분기 성장률이 2.0%, 3분기 성장률이 2.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절반 이상을 정부 지출, 즉 세금이 책임져온 셈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라기보다 세금주도 성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세금 주도 성장이 계속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부 지출 증가는 결국 빚을 늘리는 것인데 이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일인 동시에 향후 경제 위기가 닥칠 경우 쓸 비상금의 고갈을 의미한다.
기획재정부가 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는 26조 5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사상 최대 적자폭이다. 또 정부가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올해 통합재정수지가 6조 5000억 원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힌 점과 비교해도 거리가 멀다.
특히 경제 상황 악화로 국세 수입이 줄고 있어 자칫 국가 신인도를 보여주는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올해 1~9월 국세 수입은 228조 1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조 6000억 원 줄어 올해 국세 수입 전망치(294조 8000억 원)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계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울 때 정부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게 맞지만 이는 일시적인 응급책이며, 정부 지출도 민간, 특히 기업에 활력을 주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정부 지출에만 의존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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