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건 합리적 의심이다. 2017년부터 올해 시험까지 3년간 합격자 수가 거의 동수다. 남성 응시자 수가 여성 응시자 수보다 2배 이상 많은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가능하냐. 공인노무사시험은 공정성이 핵심인 국가공인자격증이다. 여성합격자 할당제에 따라 합격자 비율을 조정한다는 의혹이 사실이면 이는 남성 역차별이다. 노력에 남녀 차별 없고 간절함에 남녀 차별 없다.” 10월 30일, 2019년 공인노무사 2차 시험 결과가 발표된 날, 공인노무사시험 준비생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공인노무사시험 준비생 사이에서 ‘여성합격자 할당’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3년간 남녀 합격자 수 차이가 1~3명밖에 나지 않는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올해 공인노무사 2차 시험의 남성 합격자 수와 여성 합격자 수 차이는 1명이다. 2018년 합격자 수 차이는 2명, 2017년에는 3명이다.
공인노무사시험은 1년에 1번, 3차에 걸쳐 치러진다. 1차 시험은 선택형, 2차는 논문형, 3차는 면접이다. 절대평가로 기준 점수만 넘으면 합격인 1차 시험과 달리 논문형인 데다 최소 합격인원이 정해진 2차 시험은 뚜렷한 채점기준이 공개돼 있지 않아 매년 수험생 사이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정황은 있지만 검증은 없어 의혹이 확산된다. 해당 내용은 공인노무사시험 준비생들이 모인 카페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다가 10월 30일 한 정치평론가 유튜브 채널에, 11월 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오면서 퍼졌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은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서 생긴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부의 여성 우대 정책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주장한다.
# 관련 기관 “의혹일 뿐. 여성 강세 경향에서 비롯된 거로 보여”
관련 기관들은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이다. 시험 주관 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채점위원은 인적사항이 가려진 답안지를 본다. 당연히 답안 작성자의 성별을 알 수 없다. 최근 공공기관이나 전문 자격증 채용 경향을 살펴보면 응시자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높아졌는데, 여성 할당 의혹도 이런 ‘여성 강세’에서 비롯된 거라고 보인다”고 전했다. 공인노무사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관계자도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은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공인노무사시험 시장에서 여성 응시자 비중이 커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기범 공인노무사시험 강사는 “워낙 민감한 사안인 데다 다들 인생을 걸고 공부하기 때문에 당연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수치적으로 1:1의 남녀 비율이 3년간 유지되는 것이 일반적인 결과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할당을 한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김 강사는 최근 시험 경향에 대해 “여성 수험생들의 합격률은 예전부터 높았다. 글씨체 등 여러 요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과계열의 취업이 어려워지는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전문자격증인 노무사시험의 실질 경쟁률이 급격히 올라갔고, 최근 몇 년 사이 여성 수험생 수가 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공인노무사시험에 응시한 남성 수험생 A 씨는 “몇 년 전부터 비슷한 방식의 주장이 제기됐다. 여성 할당이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들은 결국 ‘남성 응시자 수가 더 많은데 어떻게 합격자 수는 동수가 되는지’ 이해 못 하는 거다. 논란이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다보니 과대 대표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채점 신뢰성 보장돼야 의혹도 해소될 것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모양새다. 올해 공인노무사시험에 응시한 여성 수험생 B 씨는 “스터디나 합격자 모임 등 준비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여성 합격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가 ‘여성 할당’ 논란으로 이어지는 게 여성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여성 할당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확증편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험 채점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의혹이 확산된다는 지적도 있다. 김기범 강사는 “공인노무사시험의 가장 큰 문제는 ‘채점기준’이 공개되지 않는 것이다. 채점위원들이 공식적으로 내놓는 채점평은 있지만, 수험생 입장에서는 결과에 납득하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글씨체다. 벌써 몇 년째 채점평에 ‘글씨를 알아볼 수 없어서 힘들었다’는 내용이 들어있지만 그게 채점의 기준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구체적인 배점표와 채점기준이 공개되어야 채점의 신뢰성이 확보될 수 있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여성 할당과 같은 의혹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게 아닐까”라고 전했다.
채점기준 공개에 대해 한국산업인력공단 관계자는 “채점기준은 정보공개 대상이 아니다. 수험생들이 포괄적으로 공부하는 대신 요령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공개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공인노무사시험 채점위원으로 들어간 적 있는 C 공인노무사는 “채점위원들에게 당연히 채점기준이 있지만 공개하는 건 다른 문제다. 다만 여성할당 의혹과 같이 다수 시험 응시생들이 의혹을 제기한다면 관련 부처에서 밝힐 책임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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