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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 국정농단 재판 '신동빈 따라하기' 속사정

변호인단 구성부터 전략까지 비슷 "묵시적→소극적 뇌물로 끌어내 집유 받는 게 최선"

2019.11.12(Tue) 16:20:38

[비즈한국]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장 부러운 사람은 신동빈 ​롯데 회장이 아닐까요?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뇌물 제공자’인데, 회사 관련 비리까지 다 함께 기소됐음에도 집행유예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법원 관계자)

이제 막 파기환송심이 시작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도 같은 생각인 듯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법정 재판 전략을 따라가고 있다. 심지어 재판 때 변호인이 “(롯데 측) 사건 기록을 보고 싶다”고 밝혀, 비슷한 상황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볼 수 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법조계는 신동빈 회장을 살린 ‘묵시적 청탁에 따른 소극적 뇌물’ 판단이 이재용 부회장에게도 적용될지 주목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번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끌어내는 게 이 부회장 측이 기대하는 최선이다. 사진=임준선 기자


#판사 출신 변호사 대거 포진…김앤장 대신 태평양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의 판단이 나온 상태로 시작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변호인단 구성부터 법원 출신 변호사들을 대거 포진시키며 ‘재판부 설득’에 나섰다. 대형로펌을 하나 선택한 뒤 소형 로펌을 꾸린 구성마저 롯데와 비슷한 전략이다.

이 부회장이 선택한 로펌은 법무법인 태평양. 검찰 수사 단계부터 태평양과 함께 대응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역임한 이인재·한위수·윤태호 변호사와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 문정일 변호사 등 10명을 변호인으로 선택했다. 이 밖에 개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김종훈 변호사와 기업 변호에 특화된 법무법인 기현 소속 변호사 2명까지 모두 13명으로 변호인단을 꾸렸다.

롯데 신동빈 회장과 유사하다. 김앤장 내 판사 출신 변호사들을 주축으로 재판을 진행하다가, 2심 선고 이후 이광범 대표 변호사가 이끄는 LKB파트너스를 보강했다. ‘대법원과 친하다’는 소문과 함께 ‘서초동 김앤장’으로 불리는 LKB파트너스를 변호인단으로 보강한 신동빈 회장은 집행유예(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가 확정됐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통상 파기환송심은 이미 유무죄가 확정된 채로 재판이 시작되기 때문에 사실 변호인단을 많이 꾸릴 필요는 없다”면서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이름을 많이 올린 것 아니겠냐”고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에 대해 분석했다.

#“신동빈 케이스 보고 싶다” 대놓고 요구 

1심에서 징역 5년을 받고 구속됐지만, 2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난 이재용 부회장. 하지만 대법원이 뇌물 89억 원 전체를 ‘유죄’로 판단하면서 파기환송심이 대법 취지대로 판결을 내릴 경우 다시 법정 구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은 희망은 정상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으면 법관이 형량의 절반까지 감형할 수 있는 ‘작량감경’뿐이다. 작량감경이 이뤄지면 징역 2년6월까지 낮출 수 있고, 징역 3년 이하면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다.

사실상 ‘유무죄’는 더 이상 다툴 수 없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받아내야만 하는 이재용 부회장.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지난달 25일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 때 “국정농단 사건으로 여러 기업들이 수사를 받았는데 최근 신동빈 회장에 대한 사건 기록을 보고 싶다”고 대놓고 요구했다. 같은 상대(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K스포츠재단 및 정유라 승마 지원 등)을 준 과정이 유사하기 때문. 롯데 신동빈 회장 사건과 같은 맥락에 있음을 강조하려 한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실제 신동빈 회장과 비교할 때, 이재용 부회장은 억울할 소지도 있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신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독대하는 자리에서 롯데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와 관련된 부정한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재단 지원금 등 뇌물 70억 원을 준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는데, 대법원은 이 70억 원을 ‘묵시적 청탁에 따른 소극적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승계 청탁’ 메시지가 전혀 오간 적이 없는 이 부회장 측이 참고할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대가성 뇌물이 아니고, 협박의 피해자”라고 주장했고, 2심 재판까지 일부 이 주장이 받아들여졌지만 대법원은 삼성이 최순실 씨에게 건넨 말 값 34억 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 16억 원을 모두 뇌물로 판단하며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2월 재판에 참석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 회장은 청탁과 뇌물 혐의가 인정됐음에도 대법원은 이를 ‘묵시적 청탁에 따른 소극적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롯데 케이스를 언급하는 게 삼성 이재용 부회장 측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신동빈 회장은 ‘뇌물 제공 인정’이라는 점부터 상대적으로 구체적으로 청탁한 부분까지 더 혐의가 무거울 수 있음에도 집행유예가 나왔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관련 청탁이 임원진 선에서조차 오가지 않았던 점 등을 감안할 때 신동빈 회장 사건과 비교해 ‘더 소극적인 협조’라고 어필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라고 얘기했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이건희 회장은 51세 때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 똑같이 51세가 된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이어야만 하느냐, 심리 중에도 당당히 기업 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기 바란다” 등 재판과는 별개인 기업 관련 얘기까지 서슴지 않았다. 감형까지 해줄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준, 부적절한 행위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앞선 변호사는 “언론의 관심이 쏠릴 것을 알면서도, 삼성그룹 내 준법 관리 시스템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면서 선처하겠다는 메시지를 일부러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집행유예를 주려는 ‘사전 메시지’라면 적절하지 못한 언급”이라고 풀이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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