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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돼지의 잡내, 치즈의 향, 마늘의 냄새

돼지 사육환경 바뀌었지만 여전히 잡내 제거 과정 존재…공정에 대한 고민 필요

2019.11.12(Tue) 10:38:39

[비즈한국] 요즘은 바빠서 밥을 잘 못해먹지만 예전에는 곧잘 요리도 하고 레시피도 찾아서 만들어보곤 했다. 그런데 고기 요리에 관한 국내 레시피를 볼 때마다 거슬리는 것 중의 하나가 ‘고기 잡내’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잡내를 제거하는 과정들을 살펴보면 다른 재료나 부가과정을 통해 고기가 가진 향을 제거하거나 강렬한 다른 재료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잡내는 과연 잡내일까? 아니면 고기가 가진 재료 본연의 향일까? 아니면 고기는 본연의 향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치즈와 마늘에도 강력한 향이 있지만, 유독 돼지고기를 요리할 때는 ‘잡내 제거’란 공정이 빠지지 않는다.

 

유독 이 ‘잡내 제거’의 과정이 구이에는 해당이 되지 않고 탕이나 찜에서만 이루어지는 것도 특이하다. 그 잡내라는 게 구이의 과정에선 완벽히 제거되는 반면 탕이나 찜에서는 제거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고추장 같은 강렬한 양념으로 범벅을 하는 요리에서 굳이 그 잡내를 제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에 양념이 범벅이 되면 그 잡내란 게 느껴질 여유도 없을 텐데 말이다.

 

한국인이 주로 먹는 닭, 돼지, 소 중에서 돼지고기가 가장 잡내의 혐의를 받곤 하니 돼지고기로 이야기를 해보자.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한참 번지던 당시에 잔반을 먹인 돼지에 대한 내용을 조사하다보니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잔반을 먹여 키운 잔반 돼지는 전체 돼지 두수의 1%밖에 되지 않지만 냄새가 많이 나고 육질이 나쁘고 지방색도 나쁘다고 말이다. 이 말은 배합사료를 먹이고 키운 나머지 99%의 돼지들이 냄새도 안 나고 육질이 좋단 얘기다.

 

배합사료의 등장 전에는 모든 돼지는 잔반을 먹이거나 인분을 먹여 키웠으니 배합사료의 등장과 함께 잔반 돼지의 비율은 점진적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카길이 국내에 사료 공장을 설립한 시기가 1969년이니 빠르면 70년대부터 배합사료를 먹인 가축의 비중이 점진적으로 늘었을 것임을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잔반 돼지를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는 데는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며 그 전까지는 견디기 힘든 잡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현재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삼겹살 구이가 대중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애초에 고기에서 잡냄새가 심하다면 양념도 아닌 생으로 구워먹는 것이 어려움을 생각해보자. 공교롭게도 삼겹살 구이가 대중화하기 시작한 시기가 배합식 사료 및 공장식 축산의 등장·발전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기에서 잡내를 잡는 과정이 구이에는 없는 반면 찜과 탕의 레시피에만 포함된 것은 잔반 돼지가 흔했던 시절의 흔적이다. 이제는 공장식 축산으로 인해 아무거나 막 먹여 키웠던 과거와 달리 악취가 사라졌으므로 레시피에 굳이 필요치 않은 공정이다. 또 현대에는 냉장 운송과 진공 포장으로 인해 신선도 유지도 과거보다 매우 개선되었다. 그렇기에 취급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그럼에도 ‘잡내 제거’란 공정이 빠지지 않는 것은 각 공정이 왜 필요하고 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잡내를 제거해야 된다고 들어왔고 배워왔으니까 그저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기술과 환경의 변화로 고기에서 잡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모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잡내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모른다. 무엇이 육향이고 무엇이 잡내인가? 

 

사실 이는 익숙함의 차이에 가깝다. 향으로만 따지자면 마늘은 굉장히 강하고 지독한 향에 가깝지만 한국인들은 이런 마늘의 향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청국장이 익숙한 고연령의 세대일수록 청국장 특유의 꼬릿한 향기를 좋아하지만 청국장이 익숙지 않은 저연령으로 갈수록 이 향을 싫어한다.

 

조금 더 극적인 예를 들자면 치즈가 있다. 과거에는 ‘발냄새 같다’면서 싫어하던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서양식 치즈를 즐기며 향을 음미하고 풍미가 좋다고 이야기한다. 갑자기 지독하던 치즈의 냄새가 사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다. 사람들이 치즈에 익숙해지면서 그 본연의 향기와 맛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마찬가지로 고기에서 느끼는 잡내는 그동안 과거의 방식대로 향을 제거한 고기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이제는 고기 본연의 향임에도 익숙지 않다는 이유로 느끼는 거부감에 가깝다. 공정에 대한 고민과 의문이 없이 그저 예전부터 해왔다는 관습적인 이유로 잡내 제거라는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모든 일을 할 때 각 공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것이 왜 필요하며 왜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그 공정이 필요한 환경이 바뀌었다면 공정을 과감하게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공정은 여전히 필요한 것처럼 둔갑해 비효율을 만들 것이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 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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