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항공사의 비상구 좌석 유료 판매에 대해 안전 우려 목소리가 크다. 2014년 4월 제주항공이 국내 최초로 시행한 이후 진에어, 티웨이, 이스타항공,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저가항공사가 대열에 합류했고, 지난 1월에는 대형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도 ‘유료 사전 배정 대상 좌석’에 ‘비상구(레그룸) 좌석’을 추가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대한항공만 유일하게 비상구 좌석을 유료로 판매하지 않는다.
비상구 좌석에 탑승한 승객은 비상 상황 발생 시 비상구를 개방한 후 슬라이드 밑에서 다른 승객들이 신속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을 제외한 국내 항공사는 ‘좌석 간격이 넓은 자리’라는 명목을 내세워 비상구 좌석을 유료로 판매한다. 비상구 좌석 구매 요금은 노선에 따라 상이한데, 저가항공사가 5000~3만 원, 아시아나항공이 3만~15만 원에 요금을 책정해 운영하고 있다.
비상구 좌석을 판매하는 국내 항공사는 자사 홈페이지에서 항공권을 예매할 때 사전 좌석을 배정받거나 항공권을 발권할 때 승무원의 권유로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그런데 비상구 좌석에 대해 ‘안전’보다 ‘편의’를 강조하며 구매를 유도한다는 게 문제다.
아시아나항공 홈페이지의 ‘좌석 배정’에는 비상구 좌석이 ‘다리 공간이 일반석보다 더 넓어 더 여유로운 좌석’이라 소개돼 있다. ‘좌석 이미지 보기’에서도 ‘이코노미 레그룸’을 클릭하면 ‘일반 좌석 대비 16~38cm 넓은 다리 공간’이라는 문구와 함께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는 국제선 노선에 대해 다리 공간이 더 여유로운 좌석을 미리 선택하여 구매하실 수 있는 선호좌석 사전예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는 내용의 안내창이 뜬다.
익명을 요구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A 씨는 “넓은 좌석에 앉고 싶어 비상구 좌석을 선택한 승객이 많다보니 ‘다른 승객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했는데, 왜 봉사해야 하냐’고 반문하는 승객이 더러 있다. 이 경우 추가 요금을 환불해준 후 다른 승객과 자리를 바꿀 수밖에 없다”며 “자격 요건이 까다롭지 않은 게 문제다. 만 16세 이상 만 65세 미만의 신체건강하고, 승무원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승객이라면 누구나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을 수 있다. 안전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상품을 판매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초로 비상구 좌석을 판매한 제주항공을 비롯해 다른 저가항공사도 비상구 좌석을 배정하기에 앞서 ‘넓은 자리’라고 강조한다. 제주항공 승무원 B 씨는 “홈페이지에서 항공권을 구매할 때, 공항에서 항공권을 발권할 때, 이륙 전 비상구 좌석에 착석했을 때, 무려 세 차례에 걸쳐 비상 상황 발생 시 행동 요령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서에 서명도 받는다. 하지만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당황해서 다른 승객들의 대피를 도와주지 못할 수도 있다”며 “군인, 경찰, 소방관 등 특수 직군 종사자들에게 먼저 비상구 좌석을 배정하면 좋겠지만, 유료화된 이후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상구 좌석을 비워둬야 비상 상황 발생 시 승무원이 원활히 대처할 수 있는데, 돈벌이에 급급하다보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비상구 좌석을 판매하지 않는 대한항공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을 받는다. 회원등급이 높은 승객에게 비상구 좌석을 선배정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항공사 관계자는 “대한항공을 자주 이용하는 승객부터 좌석이 넓은 비상구 좌석을 배정하는 건 문제”라고 따끔하게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전 세계 항공사가 비상구 좌석을 유료로 판매하는 추세다. 항공기 이륙 전 충분히 행동요령을 숙지시키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비상구 좌석의 유료화에 대해 내부적으로 검토한 적 없다”고만 밝혔다.
유시혁 기자
evernuri@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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