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양하 한샘 회장(70)이 경영을 맡은 지 25년 만에 회장직을 내려놓는다. 최 회장은 1979년 한샘에 경력직으로 입사해 공장장, 전무, 사장, 부회장을 거쳐 2010년 회장 자리까지 오른 ‘샐러리맨 신화’로 잘 알려졌다.
2018년 3월 주주총회에서 연임이 결정되면서 ‘가구 업계 최장수 CEO’에 등극한 최 회장은 현장을 중시하며 위기 때마다 강한 추진력으로 과감하게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최 회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부엌 가구 업체였던 한샘을 종합가구 회사로 탈바꿈시키며 위기를 타개했고, 2014년 이케아가 한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는 차별화 전략을 통해 매출 급성장을 이뤘다.
#평사원에서 회장까지…가구를 넘어 공간을 파는 회사로 탈바꿈
1949년생인 최양하 회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1973년 대우중공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최 회장은 1979년 경력직으로 한샘에 입사한 뒤 4년 만에 공장장이 됐으며, 수작업에 의존하던 가구 제작 방식을 기계화·자동화로 탈바꿈했다. 이때의 공장 자동화 작업은 한샘이 국내 대표 부엌가구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됐다.
최 회장은 1994년 대표이사 전무 자리에 오르며 ‘가구가 아닌 공간을 파는 회사’라는 새로운 공식을 꺼냈다. 기존에 소파, 옷장 등 상품을 구분해 팔던 고정관념을 깨고 안방, 거실 등 거주 공간 중심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또한 플래그숍 개념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가구가 아닌 인테리어 중심의 대리점을 꾸며 큰 호응을 얻었다.
최 회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 한샘을 유통회사로 전환하며 ‘홈인테리어 패키지’ 개념을 도입했다. 가구를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전문시공 서비스’를 같이 운영하며 실적을 올렸다. 2014년 이케아의 한국 진출 때 한국 가구 브랜드의 위기라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샘은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최 회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가구업계가 온라인 판매와 원가·비용 절감을 외칠 때 한샘은 거꾸로 가는 걸 선택했다. 영업·시공 사원에 대한 투자를 늘려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비즈니스가 한샘의 경쟁력”이라고 밝혔다.
#성폭행 논란이 실적 부진으로…현대리바트는 턱밑까지 추격
2017년 한샘에 찾아온 위기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사내 신입 여직원 성폭행 논란이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며 불매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한샘은 홈쇼핑 방송이 취소되고,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가는 등 부정적 여론을 타고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최 회장은 2018년 3월 주주총회에서 “사내 논란으로 영업이익이 위축돼 실적이 부진했다. 지난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사고를 떨쳐버리고 여성 친화 기업을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기는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한샘은 2017년 국내 가구업계 최초 매출 2조 원을 돌파했지만 2018년 부동산 경기 불황과 불매운동 등의 이슈로 다시 매출 1조 원대로 밀려났다.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58.5% 줄었다. 업계 2위인 현대리바트가 한샘의 뒤를 바짝 쫓는 상황이다. 2018년 현대리바트 영업이익은 한샘보다 40억 원 많은 4087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한샘의 실적도 좋지 않다. 상반기 매출은 8202억 원으로 전년 동기 9479억 원과 비교해 약 13% 감소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최양하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는 사람은 강승수 부회장이다. 재무를 맡아온 이영식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해 전략기획실을 총괄 지휘할 예정이다. 최 회장의 퇴임 배경으로 실적과 관련된 이슈가 있지 않느냐는 시선에 대해 최 회장은 최근 사석에서 “올해로 칠십이다. 떠날 나이가 됐다. 몇 년 전부터 퇴임 준비를 해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앉을 예정이다.
한편 올 1분기 최양하 회장은 한샘 지분 92만 9730주(3.95%) 중 15만 주를 가족에게 증여했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아들이 없는 조창걸 명예회장을 대신해 승계구도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최 회장이 증여한 15만 주는 부인 원유란 씨와 최우혁, 최우준 두 아들에게 5만 주(0.21%)씩 돌아갔으며, 이는 10월 31일 종가(6만 3400원) 기준 총 95억 1000만 원에 달한다.
최 회장의 장남 최우혁 씨는 한샘의 부엌가구 제조·판매 계열사인 한샘이펙스에 재직 중이다. 최양하 회장은 한샘이펙스의 지분 25.60%를 가진 2대 주주로, 1대 주주인 한샘(지분 38.00%)을 제외하면 개인 최대주주다. 조창걸 한샘 창업주의 딸 조은영 씨가 22.00%로 3대 주주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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