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나는 요리를 잘 못한다. 어릴 때부터 셰프들을 보며 로망을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주방에서 내 손은 ‘똥손’인 듯하다. 그래서 자취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그럴싸한 음식을 직접 요리해본 적이 거의 없다. 매번 배달 음식을 먹거나,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할 뿐이다.
나 같은 ‘요알못’(요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잡채, 궁중 음식 같은 난이도 극상의 요리를 하라고 한다면, 아마 재료부터 제대로 고르지 못할 것 같다. 잘 차려진 멋진 음식을 아무리 보고 먹어봐도 대체 무슨 재료를 어떻게 써서 그 음식을 만드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다른 전문가가 만드는 것을 옆에서 커닝할 수도 없다면, 나는 이상한 괴물질을 만들어 식탁 위에 올려놓을지 모른다.
#베일에 가려진 최후의 레시피 ‘행성 요리법’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하고 복잡한 요리 앞에서 대체 레시피가 무엇인지 헤매는 나처럼, 행성의 진화를 연구하는 행성 천문학자들에게는 지구, 목성과 같은 행성이 대체 어떻게 빚어지는지 그 레시피가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별이나 은하는 행성에 비해서는 사이즈가 훨씬 크고, 또 스스로 빛을 내는 밝은 천체이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덕분에 태양계 바깥 다른 별과 우리 은하 바깥의 외부 은하들을 많이 연구해왔고, 다양한 진화 단계를 겪고 있는 별과 은하들을 비교하면서 이들이 어떻게 생겨나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행성은 다르다. 태양이 아닌 다른 별 주변을 도는 외계행성은 많이 발견되었지만, 지금까지는 그게 전부다. 외계행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상세한 관측을 통해 그 행성의 온도는 어떤지, 기후 환경은 어떨지, 암석 행성인지 기체 행성인지 등 대략의 환경은 파악할 수 있지만, 먼 별이나 외부 은하를 보는 것처럼 그 겉모습까지 분명하게 확인할 수는 없다. 태양계 바깥 외계행성은 거리에 비해서 그 크기도 너무 작고, 또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 어두운 천체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인류가 겉모습을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행성은, 태양 곁을 돌고 있는 우리 태양계 행성 여덟 개가 전부다.
그래서 다른 행성계 행성들과 우리 태양계 행성을 비교하면서, 우주에 있는 행성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레시피를 파악하기가 아주 까다롭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그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잘 요리된 태양계라는 익숙한 접시 하나뿐. 옆에서 보면서 참고하고 커닝할 만한 다른 요리는 없다.
#새롭게 발견되는 따끈따끈한 행성들의 요리 현장
그런데 최근 천문학자들은 멀리 떨어진 다른 별 곁에서 행성들이 갓 만들어지고 있는 따끈따끈한 요리 현장을 새롭게 목격하기 시작했다. 별 곁에 요리가 끝나고 다 완성된 행성들이 도는 것이 아니라, 그 행성들이 한창 빚어지면서 요리 재료인 가스 먼지들이 잔뜩 널브러진, 먼지 원반에 에워싸여 있는 현장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억 년 전 거대한 가스 분자 구름이 수축하면서 아기 태양이 갓 만들어졌던 당시, 우리 태양계의 유년기도 이런 모습이었다. 태양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들은 계속 남아 갓 태어난 태양의 중력에 붙잡혀 계속 그 주변을 맴돌았다. 그리고 태양의 자기장과 가스 입자들의 중력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아기 태양 주변 먼지 원반 상의 일부분에서 먼지들이 더 많이 모이는 지역이 형성되었다.
그렇게 뭉치기 시작한 먼지 덩어리들은 조금씩 불어나는 자신의 질량으로 주변의 작은 먼지 티끌들을 더 많이 끌어당기면서 본격적으로 덩치를 키웠다. 그렇게 형성된 초기의 미소 행성체들은 이후 더 거대한 진짜 행성이 반죽될 수 있는 초기 행성의 씨앗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수금지화목토천해, 여덟 개의 거대한 암석과 가스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더 커지지 못하고 여전히 작은 채로 남은 소천체들이 태양계 공간 구석구석에 있다. 지금도 태양계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는 소천체와 혜성들은 거대한 행성을 요리하고 미처 뒷정리를 하지 못하고 남은 재료들의 흔적이다.
사실 대략 이런 방식으로 별 주변 행성들이 빚어질 것이란 추측은 오래전부터 했다. 다만 이미 완성된 우리 태양계에서는 새로운 행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다른 별 곁을 도는 외계행성이 발견되고, 또 일부 별 주변에서는 새로운 행성이 한창 빚어지는 게 발견되면서 그동안 추측만 하던 행성들의 요리 과정을 더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먼 별 주변에서 새로운 행성들이 만들어지는 과정, 우주적인 ‘쿡방’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작년 2018년 천문학자들은 별과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설치된 거대한 전파 망원경인 ALMA를 이용해 성운으로 가득한 우리 은하 중심 쪽에 있는 궁수자리 부근의 별 HD 163296 곁에서 새롭게 행성 세 개가 빚어지는 현장을 처음 발견했다. 갓 태어나는 원시 항성계의 중심 별 주변 먼지 원반은 전체 질량의 대부분(약 90 퍼센트 이상)이 가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가스 속에서 일산화탄소(CO) 성분이 가장 밝은 전파를 내는 덕분에 쉽게 그 흔적을 파악할 수 있다.[1]
궁수자리 부근 별 HD 163296의 모습을 담은 영상. 멀리서부터 서서히 별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별은 질량이 태양의 두 배 정도로 무겁지만, 나이는 ‘고작’ 400만 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어린 별이다. 영상=ALMA Observatory
천문학자들이 일산화탄소 성분을 추적해 완성한 별 HD 163296 주변의 가스 먼지 원반을 보면, 뚜렷하게 빈 틈이 발견된다. 이러한 빈 틈은 먼지 원반 상에서 티끌들이 모여 서서히 거대한 행성체가 빚어지면서 원반 중간의 물질들을 싹쓸이하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즉 이 먼지 원반 상에 있는 빈 틈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아기 행성이 한창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2]
당시 천문학자들은 이 먼지 원반의 움직임과 빈 틈의 위치를 통해 각각 중심 별에서 87, 140, 그리고 237AU 정도 거리를 두고 세 행성이 태어나고 있다고 추정했다. (여기서 AU는 천문단위 Astronomical Unit 의 약자로,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를 1로 하는데 1AU는 약 1억 5000만 km이다. 보통 별 곁을 돌고 있는 행성들의 공전 궤도를 표현하는 단위로 많이 사용한다.) 이 중에서 중심 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첫 번째 행성은 대략 목성 정도의 질량을 갖고, 가장 바깥에 있는 세 번째 행성은 그 두 배 정도의 큰 질량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 이제 먼지 티끌을 원시 행성에 싸-악!
이번에 천문학자들은 지난 2018년 아기 행성들이 요리되고 있는 현장의 먼지 구름의 움직임을 3D로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각 가스 구름 속 입자들이 먼지 원반을 기준으로 위로 올라가는지 아래로 내려가는지 상하 방향과 함께, 별 중심으로 끌려가는지 바깥으로 밀려나는지 수평 방향의 운동을 확인했고, 지구의 관측자를 기준으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지 멀어지고 있는지 시선 속도 방향도 관측했다. 최초로 별 주변을 움직이는 가스 먼지 입자들의 입체적인 움직임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면서 별 주변에서 먼지가 반죽되는 노하우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관측을 위해 ALMA 연구진들은 별 주변 가스 먼지 입자들의 입체적인 움직임을 더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는 ‘고 각분해능 원반 부가구조 프로젝트’(DSHARP, Disk Substructure at High Angular Resolution Project)로 얻은 데이터를 활용했다.[3]
그 결과 천문학자들은 별 HD 163296 주변 먼지 원반에 있는 빈 틈에 자리한 아기 행성들이 그 주변 먼지 원반 속 입자들을 휘젓고 계속 반죽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원반 속 빈 틈에 행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이들의 중력에 영향을 받아 먼지와 가스 입자들은 더 바깥으로 밀려나간다. 그리고 원반의 빈 틈은 더 넓어진다. 이렇게 원반의 더 바깥쪽으로 잠시 밀려나갔던 먼지 입자들은 다시 별의 중력에 이끌려 도로 원반 안쪽으로 쏟아지게 된다. 마치 폭포수가 아래로 쏟아지듯, 요리 방송에서 백종원 씨나 최현석 씨가 설탕과 소금을 ‘싸-악’ 뿌리듯 말이다. 이러한 먼지 입자들의 폭포수 아래에서 그 먼지 폭포수를 맞으면서 아기 행성들은 계속 덩치를 더 키운다.
사실 앞서 다른 별 주변에서 발견된 먼지 원반 사이 빈 틈이나, 그 먼지 원반의 움직임을 보고 새로운 행성이 빚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중심 별의 강력한 자기장 때문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관측을 통해 별 주변 먼지 원반의 입체적인 움직임을 하나하나 추적하게 되면서, 자기장 가설은 힘을 잃었다. 시뮬레이션으로 비교를 한 결과, 이번에 관측된 먼지 원반의 입체적인 움직임은 먼지 원반의 빈 틈 사이에 새로운 행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만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4]
앞에서 설명한 시뮬레이션 영상. 이것이 인류가 처음으로 목격한 생생한 새로운 아기 행성의 요리 장면이다. 영상=ALMA(ESO/NAOJ/NRAO), J. Bae; NRAO/AUI/NSF, S. Dagnello.
행성 형성 원리를 얼마나 이해하는지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류는 이제야 처음 주방에 들락거리기 시작한 완전 생초보 요리사라고 할수 있다. 지금껏 맛본 행성계는 이미 잘 차려진 태양계 요리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진정한 맛의 달인, 미식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집밥만 먹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음식점과 요리사들의 음식을 먹어가며 비교하고 객관적인 혀의 감각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집밥만 기준으로 모든 음식의 레시피를 추론하고 평가하는 왜곡된 편견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주의 진화, 그리고 행성의 형성 과정을 탐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더 객관적으로, 진실에 가까운 우주의 레시피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태양계만 마냥 바라봐서는 안 된다. 우리 태양계는 아주 아름답고 탐스런, 맛있는 걸작임은 분명하지만 이 우주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음식 중 한 그릇일 뿐이다. 어쩌면 이 우주 어딘가에는 우리가 아직 제대로 맛보지 못한, 태양계보다 더 조화롭고 아름다운, 더 맛좋은 산해진미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우주는 자신의 레시피를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는 기어이 그 레시피를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우리 고향 행성과 태양계 행성, 나아가 우주 전역에 존재하는 모든 행성들의 다양한 레시피를 파악할 때까지, 천문학자들은 행성계를 맛보고 탐사하는 식도락 여행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1]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2041-8205/811/1/L5
[2]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af747/meta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
[부동산 인사이트] '분양가 상한제' 대비 및 미리 짜는 2020년 부동산 전략
·
패키지 여행사 '비상경영'에도 탈출구 안 보이는 속사정
·
[사이언스] 우리 은하는 살찌고 있다!
·
[사이언스] 우리 태양계에 '기생충'이 살고 있다?
·
[사이언스] 천문학자의 눈으로 본 영화 '애드 아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