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성범죄 관련 의뢰인을 위한 최적의 솔루션! 성범죄 관련으로 피의가 되면 각종 통지서가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송달됩니다. 그런데 경미한 성범죄 관련해 누군가에게 알려지는 게 꺼려지죠. 저희는 송달 주소를 변호사 사무실로 변경해 처리합니다.” (A 법무법인 블로그)
“저희 사무실에서는 변호사 선임 비용이 부담스러운 분들을 위해 처분결과통지서 수령만 대리해주고 있습니다.” (B 법률사무소 블로그)
검사가 내린 처분결과통지서를 변호사가 성범죄 가해자 대신 받아주는 방식이 성범죄 전담 변호사들 사이에서 새로운 ‘영업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특이한 점은 변호사가 사건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고 주소 변경만 해주고 수임료를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 정해진 수임료보다 더 요구하는 변호사도 적잖다는 후문이다. 변호사 C 씨는 “지금 이 시장이 ‘핫’ 하다. 직장인 남성이 중심인 성범죄 가해자들이 거의 모두 (이런 조치를) 원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이렇게 해서 상당한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통지서만 대신 받아줘도 수임료 백만원 안팎
현행법에 따라 검사는 맡은 사건에 공소 제기나 취소 등의 결론을 내린 경우 7일 이내에 고소인이나 고발인에게 서면으로 된 처분결과통지서를 발송해야 한다. 이때 당사자 직접 통보가 원칙이기 때문에 통지서는 개인의 주민등록상 주소지로 송달된다. 그 이외의 장소에서 받기를 원한다면 관련 기관 모두에 주소 변경 신청서를 내야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때 변호사선임계를 제출하면 어렵지 않게 변호사 사무실로 해당 서류를 수령할 수 있다.
변호사가 사건에 대한 상담 등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고 주소 변경만 해주고 수임료를 받는 경우 비용은 제각각이다. 서울 서초구의 한 법무법인은 “주소지만 변경하더라도 110만 원이다”며 그 이유로 “선임계를 제출해야 하고 간단한 서면 정도는 넣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충청도의 한 법률사무소 역시 “처분결과통지서 수령만 대리해준다”며 “사무실 방문 없이 신청할 수 있고 전국 어디든 가능하다”고 광고한다. 이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수령 대리 요청 시 비용이 발생하는데 가격은 66만 원이다”고 밝혔다.
성범죄 전담 변호사 사이에서 참신한 사업이 등장한 배경에는 성범죄 가해자들의 니즈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가족이나 직장 등 외부에 성범죄 관련 사실이 알려지는 걸 꺼리는 데다, 성범죄 사건 변호사 선임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성범죄 사건의 수임료는 최소 500만~1000만 원인데, 특히 성범죄 사건의 경우 수사기관이 피고인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일이 빈번해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이 적잖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충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법무법인 해율)은 “성범죄 전담 변호사가 늘어나면서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래서 수임료가 점점 하락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사례는 고객들에게 ‘담당 변호사님이 사건을 해결해줄 수 있다는 신뢰’가 있으면 기꺼이 더욱 높은 금액을 지불하려 하는 경우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범죄 전담 변호사 D 씨는 “개인 차원에서 하는 경우로 보인다. 홍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수임을 많이 해보고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 아니겠냐”고 의견을 표했다.
이처럼 주소를 변경해주고 돈을 받는 사업을 따로 벌이지 않더라도 다른 성범죄 전담 변호사들 역시 수요를 반영해 통지서 주소 변경 비용을 수임료에 포함해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때문에 수임료가 다소 높게 책정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앞서의 변호사 C 씨는 “여기는 부르는 게 값이다. 200만~300만 원 높게 불러도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사람이 많다. 본인들의 수치심을 숨기기 위한 돈인데 아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성범죄 전담 변호사 늘면서 여성 인권 침해 지적도
현재 성범죄 가해자들은 성범죄 재판 관련 지식을 공유하는 카페를 통해 이러한 정보를 주고받고 있다. 한 공무원 준비생은 성범죄 관련 카페에 “가족에게 들키고 싶지 않으면 통지서가 발송될 주소를 꼭 변경해라. 나는 미처 알지 못해 미리 변경하지 못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성범죄 전담 변호사들 역시 이러한 경향을 나쁘지 않게 바라본다. 신중권 변호사는 “다른 사건은 변호사를 알아볼 때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성범죄는 특성상 사람들에게 얘기를 못 한다. 그래서 성범죄 가해자들은 인터넷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고 로펌도 온라인 광고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전했다.
성범죄 관련 시장이 뜨거워지면서, 변호사들이 성범죄 가해자를 적극 옹호함에 따라 여성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로펌 광고 문구가 가해자 중심적이라 2차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실제로 여러 로펌은 “(성범죄 고소 건은) 있지도 않았던 사실을 과장해 억울하다고만 주장하고 있는 허위 제보들이다”며 홍보 중이다.
그러나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7~2018년 검찰의 성폭력 범죄 사건 처리 인원(가해자) 수는 총 7만 1740명(중복 가능성 제외)인 데 반해 성폭력 무고죄로 기소된 피의자 수는 556명에 불과해, 성폭력 피의자의 0.78%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또 성폭력 가해자가 무고죄로 고소한 사건의 84.1%는 불기소되는 데다, 기소된 사건도 15.5%는 무죄 선고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무고죄로 고소된 사례 중 유죄로 확인된 사례는 전체의 6.4%에 그친다.
이에 대해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2018년에 미투 운동이 일어난 후 체계적인 ‘역고소 메커니즘’이 발생했다. 어떻게 하면 무고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대대적으로 홍보해 수익을 낸 변호사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여성들에 대한 법률적 지원이 다시 마련되고 있는 중”이라며 “로펌 홍보 문구도 여성 인권에 반한다고 본다. 2차 피해를 넘어 실질적 피해를 유발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
'춘천 이전' 삼성SDS 과천 데이터센터 555억 원에 매각
·
[핫 CEO] 게임보다 구독경제? 웅진코웨이 인수, 방준혁 넷마블 의장
·
조국 장관 수사에 대형 로펌이 울상 짓는 까닭
·
의료소송 판가름 '감정'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이유
·
한방병원 의료소송이 환자에게 특히 불리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