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여가수는 날씬하고 예뻐야 한다’, ‘여가수는 나이가 들수록 인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서른 전에 성과를 내야한다’, ‘히트곡은 신곡 프로모션에서 나온다’. 음악계의 이런 고정관념을 부숴버린 가수가 있습니다. 현재 빌보트 차트 1위 가수, 리조(Lizzo)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리조는 1988년 미시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10살 때 휴스턴으로 이주했죠. 본명은 멜리사 제퍼슨(Melissa Viviane Jefferson)입니다. 그는 14세에 콘로우 클리크(Cornrow Clique)라는 음악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제이지의 히트곡 ‘이조(Izzo)’에 본인의 애칭 ‘리사’를 섞어 ‘리조’라는 활동명을 만들기도 했죠.
리조는 독특하게도 클래식 악기, 그 중에서도 플루트를 자유자재로 다룹니다. 지금도 공연에서 플루트를 연주하곤 하죠. 랩과 노래까지 잘하는 만능형 가수입니다.
리조의 ‘트루스 허츠(Truth Hurts)’. 현재 빌보드 차트 1위 곡이다.
리조는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1년간 자동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버티기도 했죠. 2011년 리조는 미네소타주 미니아폴리스로 거점을 옮겼고, 2013년에야 데뷔 앨범 ‘리조뱅어스(Lizzobangers)’를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앨범과 두 번째 앨범 ‘빅 걸 스몰 월드(Big Grrrl Small World)’ 모두 평론가에게 좋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2016년 리조는 드디어 메이저에 입성해 EP앨범 ‘코코넛 오일(Coconut Oil)’을 발매합니다. 올해는 세 번째이자 첫 메이저 정규 앨범 ‘커즈 아이 러브 유(Cuz I Love You)’를 발매했죠. 이 앨범의 리드 싱글 ‘쥬스(Juice)’ 또한 서서히 좋은 반응을 얻어가고 있었습니다.
리조는 음악 활동 초기부터 본인의 몸을 이미지로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의 백댄서 ‘빅 걸스(the Big Grrrls)’는 모두 플러스 사이즈(표준보다 큰 사이즈) 댄서로 이뤄져 있습니다. 의류 브랜드 ‘모드클로스(ModCloth)’와 ‘세이 잇 라우더(Say It Louder)’를 통해 ‘자신의 몸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지요.
리조의 ‘세이 잇 라우더(Say It Louder)’ 캠페인
그런 그에게 행운이 찾아옵니다. 현재 활동 중인 곡 ‘쥬스(Juice)’가 아닌, 2년 전 발표했던 노래 ‘트루스 허츠(Truth Hurts)’가 릴 나스 엑스의 ‘올드 타운 로드(Old Town Road)’를 제치고 빌보드 1위에 올라선 겁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트루스 허츠의 가사 중 “난 방금 유전자 검사를 했지. 알고 보니 나는 100% 그런 X였어(I just took a DNA test turns out I’m 100% that bi*ch)”라는 강렬한 가사가 밈(인터넷 상 재미난 말을 적어 다시 게시한 그림이나 사진)이 됐습니다.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나는 100% XX였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트위터를 통한 이미지, 텍스트 밈은 물론 비디오 앱 틱톡에서 영상으로까지 히트에 성공했습니다. 틱톡이 만든 ‘릴 나스 엑스’와 마찬가지로 틱톡의 짧은 영상, ‘짤’이 성공의 배후에 있던 셈이죠.
리조의 ‘트루스 허츠(Truth Hurts)’에서 영감을 받은 ‘유전자 검사(DNA TEST)’ 밈 모음
정통적 홍보에서도 이득을 봤습니다. 트루스 허츠는 영화 ‘썸원 그레이트(Someone Great)’ OST입니다. 기존 음원 홍보와 다른 게 있다면 영화를 공개한 플랫폼이 요즘 시대에 맞는 넷플릭스란 점이지요. 이 영화는 ‘왜 남자들은 위대해지기 전까지만 위대할까?(Why men great 'til they gotta be great?)’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트루스 허츠와 찰떡 같이 맞아 떨어져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곡은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리조의 ‘트루스 허츠(Truth Hurts)’가 나온 영화 ‘썸원 그레이트(Someone Great)’.
어떻게 음악이 히트하게 된 걸까요? 사후 분석이지만 트루스 허츠의 성공은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플러스 사이즈 가수’라는 미국에 없던 새로운 캐릭터와 인터넷 짤방으로 퍼질 만큼 재치 있는 가사. 영화 사운드트랙이라는 ‘맥락’을 통해 전달된 음악.
이런 방식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새로운 캐릭터’는 중요했습니다. 하층민 출신이지만 깔끔한 영국 신사 분위기를 연출한 비틀스부터 팝의 여왕 마돈나까지 말이죠. 영화 사운드트랙이 히트곡을 만든 사례도 많습니다. 다만 인터넷 시대, SNS의 시대, 틱톡의 시대에 퍼지는 형식이 조금 바뀐 것뿐입니다.
리조의 ‘트루스 허츠(Truth Hurts)’. 한국의 아이돌 에이비식스(AB6IX)와 리믹스했다.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저장 능력’이 아닐까 합니다. 인터넷이 워낙 많은 정보를 퍼나르다 보니, 과거의 음악도 요즘 음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99년 인기가요가 한국 인터넷에서 유행할 수 있었고, 2년 전에 발표한 음악이 갑자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가수는 서른 살 전에 성공해야 한다거나, 지금 열심히 홍보하는 음악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부순 것도 인터넷이지요.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과거의 노래가 히트하는’ 광경을 더 자주 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이 탄생시킨 새 시대의 새로운 디바, 리조였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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