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구역과 중앙로역 사이 북성로 공구골목 일대가 철거되고 약 800세대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선다. 근대사를 품은 건물들이 헐리고 신축 건물이 높이 올라가면 북성로 고유의 정취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옛 건축물 모인 거리에 49층 주상복합 건물 들어서
북성로는 근대가옥 등 오래된 건축물이 상당수 남아 있는 공간으로 ‘대구 중구 골목투어’ 코스 중 일부이다. 이런 특색을 살려 중구청은 지난 2014년부터 시간과공간연구소, 대구 사회적기업센터와 함께 ‘북·서성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을 진행했다. 근대사를 담은 건축물을 보존하면서 낙후된 북성로를 살리려는 프로젝트로, 그동안 30곳이 넘는 공간이 ‘재생’됐다.
특히 ‘대구시 태평로2가 7-1번지 일대’는 최근 들어 방문객이 많이 찾던 곳이다. 100년 넘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카페 ‘소금창고’, 오래된 이야기를 그대로 가진 ‘백조다방’,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독립출판서점 ‘더폴락’ 등 특색 있는 가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성로를 지키던 공구 장인들과 새롭게 유입된 젊은 문화예술가들, 작은 규모의 다양한 가게가 최근 몇 년새 북성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이런 북성로에 최근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논란과 우려가 일고 있다.
대구광역시 고시에 따르면 이 일대에는 ‘대구역 센트럴 포스시티 주상복합’이 들어선다. 지하 4층에 지상 49층 규모로 아파트 5동, 803세대 및 부대복리시설이 포함되며 사업기간은 3년이다. 9월 20일 사업계획이 승인돼 현재 철거가 진행 중이다. 리노베이션 사업으로 재생된 ‘소금창고’, ‘백조다방’ 같은 가게 4곳을 포함해 ‘더폴락’ 등 핫한 가게들도 포함됐다.
이에 북성로 젊은 문화예술인들과 일제강점기 당시 번성한 공구골목의 맥을 지켜온 상인들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주상복합건물이 완공되면 마트 등 생활·편의시설이 들어올 것이고, 인근 건물 임대료는 당연히 뛸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노베이션 후 8개월 영업하고 건물 허물게 돼”
지난 4일 찾은 북성로 거리 일부는 ‘철거’라고 써진 붉은 벽과 펜스, 널부러진 공사 자재로 어수선했다.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펜스가 쳐진 재개발 구역에는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백조다방’도 포함됐다. 1947년 피아니스트 이공주 씨의 부친 이삼근 씨가 문을 연 백조다방은 ‘대구의 문화살롱’이라 불리며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런 백조다방의 스토리와 건물에 매료된 홍원태 씨가 직접 리모델링해 올해 1월 다시 오픈했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홍원태 씨는 2년 6개월간 백조다방을 직접 공사했다. 2016년 대구 중구청 주도의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에 참여해 그해 12월 공사에 들어갔다.
홍원태 씨는 “건물의 틀을 유지하면서 리노베이션 하는 건 허물고 새로 짓는 것보다 돈이 많이 든다. 4000만 원의 리노베이션 사업 지원금을 받았지만 2배 이상 자비가 들어갔다. 그럼에도 북성로와 백조다방이 좋아서 이 공간을 선택했다. 북성로 골목은 서울 인사동 골목길 못지않은 매력이 있다. 이윤을 남기기보다 의미 있는 공간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에 공사를 시작했는데 겨우 8개월 영업하고 건물을 허물게 됐다. 결국 공간 리노베이션을 지원한 중구청과 재개발을 승인한 대구시가 소통이 안 된 것 아니겠나”고 말했다.
백조다방 옆 더폴락은 ‘대구 최초의 독립서점’이다. 대구를 방문하는 이들은 인스타그램에서 ‘더폴락’을 검색해 일부러 북성로까지 오곤 한다. 더폴락은 북성로에 위치한 문화예술단체, 가게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도 많았다. 더폴락은 2016년부터 3년간 북성로 골목길에서 영업했다.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을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이하던 더폴락은 영업을 중단하고 중앙로역 인근으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더폴락 건너편에 위치한 도자기 공방 ‘사이에’는 이런 더폴락 덕을 크게 봤다. 김민지 사장은 “폴락 방문객들이 건너편 도자기 공방까지 구경하러 오는 경우가 많았다. 조용하고 소박한 골목이 좋아 북성로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제 분위기가 많이 바뀔 것 같다. 우리 가게가 재개발 구역은 아니지만 바로 맞은편이라 볼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 건물 관리인도 재개발이 확정된 뒤 찾아와 월세를 올릴 것처럼 떠보고 갔다”고 말했다.
북성로를 오간 청년들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난해 북성로의 한 건물을 임대해 작업실을 운영했던 이다운 씨는 “재개발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왔다. 하지만 확정된 게 없어서 가게들이 꾸준히 유입됐다. 청년들이 공구골목 상인들과 함께 골목 축제를 열거나 젊은 사장들이 모여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가 나오고 있었는데, 재개발이 진행되면 이런 움직임이 멈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북성로 인근 수제화 골목에서 인문지식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운영하는 양진오 대구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도 “북성로 초입의 의미 있는 여러 공간이 재개발 구역에 포함됐다. ‘대구의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이 재개발에 밀리는구나’라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아주 아쉽다”고 말했다.
#재개발 승인한 대구시, 도시재생 추진한 중구청 모두 “문제없다”고만
재개발로 대구시의 대표 관광자원인 ‘대구중구골목투어’에 변화가 생길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성로에서 지역활성화와 관련해 활동하는 공동체디자인연구소 관계자는 “북성로 재개발은 비록 일부 구역이지만 근대골목 투어 등 도시재생 사업의 흐름을 끊을 것이다. 주상복합건물은 이 일대의 많은 것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개발 구역에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 대상이 여러 곳 포함된 사실도 지적했다. 재개발을 승인한 대구시 측은 이에 대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시는 민영사업자에게 북성로 일대 주상복합건물 건설사업계획을 승인하면서 ‘근대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으로 지원된 대상지에 대한 보조금 반납 필요’라는 승인조건을 달았다”고 답했다.
리노베이션 사업을 진행한 중구청 측도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중구청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건축 허가는 대구시 관할이므로 중구청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북성로 뉴딜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재개발 위치는 대상지가 아니다. 북성로 뉴딜사업으로 통합디자인지침을 마련하도록 용역을 진행 중인데, 그 지침에 맞도록 협의해서 아파트 외부 경관에 반영해달라고 전달했다”고 밝혔다. 중구청 관광개발과 골목투어 담당자 역시 “대구 중구골목투어 1코스에 북성로가 포함되지만 아직 코스 변경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대구근대골목투어’를 기획하고 2011년부터 북성로 도시재생 작업을 벌인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는 “재개발도, 젠트리피케이션도 도시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파트를 짓는 방식으로 짧은 시간에 땅값을 올리는 건 문제”라고 설명했다.
권상구 이사는 “어른들은 도시를 길 건너 보이는 ‘경상북도매매사업조합’ 건물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 일제강점기 시대 건물로 ‘대구의 첫 대중목욕탕’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세가 잘 나가도록 외관을 거칠게 칠했다. 반면 우리가 추구한 북성로의 개발은 건물의 원형을 잘 보존하면서 가치를 올리는 방식이다. 그동안 잘해왔는데 전혀 다른 형태의 공사가 시작되니까 허탈한 마음이 크다. 그래도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는 정도로 북성로가 가진 기술생태계가 한 번에 무너지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북성로에 있는 문화예술인들은 도시에 대한 각자의 고민을 갖고 실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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