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마이크로소프트(MS)는 ‘하드웨어 명가’라는 별명이 있는데 사실은 비꼼에서 시작된 말이다. MS는 1995년 윈도우95를 내놓고 세상을 휩쓸었지만 잦은 버그로 악명 높았다. 특히 2000년 내놓은 윈도우 Me(Millennium Edition, 밀레니엄 에디션)는 사상 최악의 운영체제로 2년 만에 단종됐다. 윈도우 Me의 뜻은 윈도우 버그를 고치는 데 밀레니엄(100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그런데 당시 MS가 내놓은 키보드와 마우스는 버그가 없고 튼튼했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본업인 소프트웨어는 엉망인데 하드웨어는 오히려 버그 없이 만든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 ‘하드웨어 명가’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비슷한 뉘앙스로 조롱을 많이 했다. “소프트웨어는 애플에게 맡기고 차라리 하드웨어나 만들어라!”
그렇다고 MS가 만든 하드웨어가 모두 잘된 것은 아니다. 애플의 아이팟을 따라 만들었던 ‘준(Zune)플레이어’는 참혹하게 망했고 노키아를 인수해 만든 ‘루미아 스마트폰’도 망했다. 루미아 스마트폰은 빌 게이츠가 잠시 쓰기도 했지만 곧 다른 안드로이드로 갈아탄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선사업은 해도 루미아폰을 쓸 인내심은 없었던 거다.
과거 얘기는 그만하고 현재를 보자. MS가 10월 2일(현지시간) 신형 서피스 라인업을 대거 공개했다. 2012년 첫 개발한 MS 서피스는 노트북과 태블릿의 경계에 선 모델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무려 1조 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그러나 MS는 뚝심 있게 서피스 시리즈를 내놨고 이제는 MS의 효자상품이 됐다. 역시 판돈이 넉넉해야 도박에서 승리하는 법이다.
이번에 발표한 제품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반으로 접을 수 있는 폴더블 태블릿 ‘서피스 네오’다. 그런데 이 제품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처럼 디스플레이가 접히는 것이 아니라 LG전자의 V50s처럼 힌지가 접히는 형태다. 기술 과시보다는 실속을 택했다. 이런 듀얼 스크린 태블릿은 소니도 예전에 내놓은 적이 있다. MS가 얼마나 높은 완성도를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서피스 네오는 9인치 디스플레이 2개가 연결되어 있고 펼치면 13인치 태블릿 PC로 변신한다. 여기에 분리형 키보드를 쓰면 마치 노트북처럼 사용이 가능하다. 서피스 시리즈는 펜 입력을 지원하기에 이 제품도 펜 입력을 지원한다. MS는 서피스 네오를 위해 새로운 윈도우인 ‘윈도우 10X’까지 개발할 정도로 의욕을 보이고 있다. PC 기반의 윈도우보다는 좀 더 터치 기반에 맞게 UI를 개선한 윈도우 에디션이라고 본다.
내가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서피스 듀오’다. 이 제품 역시 두 개의 디스플레이가 연결된 듀얼 스크린 태블릿이다. 5.6인치 화면 두 개가 합쳐져 8.3인치 화면을 만들어낸다. 크기는 스마트폰보다 살짝 크지만 그래도 주머니 안에 들어갈 수 있다. 8인치가 넘는 태블릿을 주머니 속에 넣을 수 있다니 정말 멋진 신세계다. 통화 기능까지 제공하는 만큼 운영체제는 윈도우가 아니라 안드로이드 기반이다.
다만 이 두 제품의 발매일은 올해가 아닌 내년 하반기 예정이다. 너무 빠른 발표는 아닐까? 경쟁사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급하게 발표한 걸까? 이유는 있다. MS는 서피스 초창기에 제대로 된 앱이 없었던 서피스 RT를 내놓았다가 참혹한 실패를 맛봤다. MS는 그 실패 경험을 잊지 않았다. 앞으로 1년간 듀얼 스크린을 지원하는 다양한 앱과 서드파티 개발을 위해 미리 발표를 하고 개발을 독려한 것이다.
그 밖에도 서피스 프로7, 서피스 프로X, 그리고 서피스 이어버드를 새로 공개했다. 기존 서피스 고, 서피스 랩탑, 서피스 북까지 포함하면 방대한 서피스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애플의 라인업과 비교해도 차이가 없을 정도로 태블릿과 PC의 양과 질이 확 늘어났다. 이제는 조롱의 의미가 아니라 진정 ‘하드웨어 명가’로 불러도 결코 손색이 없다.
과거 제조업에서 하드웨어와 운영체제는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었다. 애플같이 통합된 회사도 있었지만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만들면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만들고 MS가 윈도우를 공급하면 HP가 컴퓨터를 만드는 식으로 분업화가 유리했다. 그러나 제조업이 포화되자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소프트웨어가 통합되는 식으로 변신하고 있다. 구글이 픽셀폰과 픽셀북을 만들고 MS가 서피스를 만드는 식이다.
이걸 일컬어 소위 ‘생태계’라는 말로 포장하는데 실제로는 글로벌 기업의 독과점 비즈니스에 좀 더 가깝다. 글로벌 시총 1, 2, 3위를 다투는 구글, MS, 애플이 서로 닮아가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혹은 섬뜩하기도 하다.
김정철 IT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멋진신세계]
'스마트폰 가을대전' 갤럭시폴드와 아이폰11(그리고 LG V50s)
· [멋진신세계]
'책상 위 나만의 실내악단' 써모랩 오디오 FS-B1, FS-A1 리뷰
· [멋진신세계]
'유선 그 이상의 음질' 젠하이저 모멘텀3 와이어리스 리뷰
· [멋진신세계]
'LED도 피부에 양보하세요' 앞썬아이앤씨 '이팩트' 리뷰
· [멋진신세계]
'4K OLED 플러스알파' 기가바이트 뉴에어로 15X i7 OLED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