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북창동은 서울 한복판에 요새처럼 들어앉아 있다. 사방으로 뻗은 골목의 끝자락이 시청과 남대문, 명동과 닿아 있다. 시청역 쪽으로 시청과 언론사를 비롯해 여행사들이 몰려 있어 이 일대 직장인들의 한 끼 식사와 술을 손쉽게 해결해준다. 남대문 쪽으로는 남대문 시장이, 명동 쪽으로는 쇼핑가와 밀접해 있다.
주변으로 롯데호텔, 웨스틴조선호텔 등 고급 호텔을 비롯해 4~5성급의 호텔이 8개, 모텔이 20여 개나 된다. 청계천과 광화문, 경복궁, 덕수궁, 종로, 서울광장 등도 걸어서 5~10분이면 닿으니 관광객도 꾸준하다. 북창동의 낮과 밤이 북적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북창동과 닿아 있는 지하철 시청역은 서울 지하철의 핵심인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고 출구도 12개나 된다. 1~7번 출구가 1호선에서 연결되고 8~12번 출구가 2호선과 연결된다. 2호선 쪽 8번 출구나 1호선 쪽 7번 출구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북창동이다.
#메밀국수, 삼계탕, 비빔밥, 청국장…직장인의 점심 성지
북창동은 조선시대에 군량미를 조달하던 북쪽 창고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곡식 창고가 있었으니 예부터 주변으로 먹을 것은 부족하지 않았을 터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 후에도 북창동은 다른 곳에 비해 먹을거리가 풍족한 편이었다.
북창동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온 1세대 상인들은 1950~60년대에 화교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며 음식거리가 조금씩 만들어졌다고 회상한다. 흔히 화교들이 모이는 곳에 식당가가 형성되고 돈이 모인다는 이야기가 있듯 북창동이 그랬다. 1970~80년대에는 북창동에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면서 각종 회사들이 입주했고 자연히 음식점들도 더 모여들었다.
북창동에서 유명한 오래된 음식점들은 1970~80년대에 생긴 것이 대부분이다. 메밀국수로 유명한 송옥, 국물이 진한 서울삼계탕, 삼겹살 고추장구이를 내는 동굴집과 자매집, 삼성 등도 이때부터 단골 많은 맛집이다. 전주유할머니비빔밥을 비롯해 북창동청국장, 현대칼국수 등은 40~60년 된 이 지역의 터줏대감이다. 이외에도 북창동에는 약 150개의 식당과 술집이 작은 골목에까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북창동에서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하며 잔뼈가 굵은 서울삼계탕 주인은 “시청과 한국은행, 숭례문이 위치한 북창동은 서울의 중심가로 예부터 교통의 중심지였다. 직장인뿐 아니라 시내에 볼일 보러 나온 사람들이 북창동에서 밥을 먹고 가고 명동에 쇼핑 나온 사람들도 북창동에 들렀다 가는 일이 많았다”고 전한다.
돌솥비빔밥과 콩나물해장국이 주 메뉴인 전주유할머니비빔밥은 1962년에 생겨 북창동 먹자골목에서 6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주 출신의 유 씨 할머니가 문을 연 이 비빔밥집은 외국인들에게도 유명세를 탔다. 저녁 장사를 위해 콩가루를 찍어 먹는 삼겹살과 천겹살이라는 이름의 항정살도 함께 판다.
후미진 골목 막다른 길에 있는 허름한 북창동청국장집도 유명하다. 진국인 청국장은 기본이고 낡은 가게마저 직장인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듯하다. 아침을 거르는 직장인에게는 저렴하고 건강한 한 끼의 뿌듯함이다. 이 집에서는 청국장 외에도 콩비지, 순두부찌개, 오징어제육 등을 함께 판다.
송옥은 남대문 상인들까지 찾아오는 40년 넘은 메밀국숫집이다. 모녀가 대를 이어받아 운영하는데 메밀국수의 특성상 테이블 회전이 빠른 데도 늘 손님으로 만원이다. 북창동의 상인들도 간식 삼아 가볍게 자주 먹는단다. 여름날엔 ‘후루룩’ 면발 넘어가는 소리가 더 시원하게 들린다. 면은 그때그때 직접 뽑는데 메밀 함량이 60% 이상이다. 면의 반죽을 소금물로 하고 적당히 숙성하는 것이 노하우. 면발은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다.
북창동에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한 양대 삼계탕집도 있다. 서울삼계탕과 장안삼계탕이다. 인근의 피곤한 직장인들은 한 그릇에 1만 5000~1만 6000원 하는 삼계탕으로 종종 점심 보양을 즐긴다. 덕분에 점심시간엔 길게 줄이 늘어서는 것도 다반사. 서울삼계탕은 맑지도 텁텁하지도 않은 구수한 국물이 일품이고, 장안삼계탕은 야들야들한 살맛이 좋다.
북창동 생태골목도 들러볼 만하다. 1983년에 생태찌개전문점으로 시작한 부산갈매기식당을 필두로 목포생태탕과 속초생태탕 등이 있다. 생태탕은 술안주와 해장에 모두 탁월하기 때문에 술 약속 잦은 직장인들의 단골 메뉴다.
#밤을 빛내는 포장마차의 백열등 행렬
어둠이 내리면 북창동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낮과 밤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의 맛 골목이었다가 밤이 되면 은근한 흥청임으로 들썩인다. 북창동은 사실 술집거리로 먼저 유명세를 탄 동네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북창동은 밤 문화로 유명했다. IMF 이후 강남의 비싼 룸살롱 대신 가성비 있는 북창동 룸살롱으로 사람이 몰렸다. ‘북창동식 룸살롱’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술집들이 한창 번성했던 10~20년 전에는 그리 넓지 않은 북창동 골목에만 100여 개의 일명 ‘북창동식 술집’이 있었다. 오래된 식당의 상인들은 당시엔 술집 종사원들이 사먹는 밥만 해도 하루에 1000그릇 이상이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접대문화가 점차 사라지면서 예전 같은 북창동식 밤 문화도 자취를 감췄다. 이제 10여 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북창동식 술집에서 전성기 때의 흥청망청은 찾아보기 어렵다.
술집이 하나둘 빠져나간 자리는 직장인 점심 메뉴로 인기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채워가고 있다. 밤 9시부터는 포장마차촌이 문을 연다. 포장마차 8~9개가 일제히 판을 펼치면 포장마차 백열등이 뿜어내는 활기가 북창동의 밤을 채운다.
인근의 서소문과 무교동 상권이 밤 10시면 대체로 영업을 끝내기 때문에 ‘밤 손님’들은 흔히 북창동으로 넘어온다. 새벽 5시까지 포장마차촌은 불야성이다. 안주 가격은 적혀 있지 않아도 다른 포장마차들처럼 대부분 한 접시에 1만 5000원. 포장마차 꼼장어와 소주 한잔, 출출할 때 곁들여 먹는 우동과 홍합탕은 직장인의 하루 피로를 풀기에 꽤 낭만적인 장소다. 북창동의 모습은 계속 변해가지만 여전히 낮이나 밤이나 인근 직장인들의 쉼터이자 사랑방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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