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방에서 중소 여행사를 운영하는 A 씨는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입찰을 통해 대전시, 경기도 등 지자체 공무원들의 여행서비스를 납품했다. 그런데 최근 조달청의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 제도가 신설되면서 입찰 기회가 줄어들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하소연했다.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가 무엇이길래, 중소 여행사들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것일까?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는 공무상 국외 출장에 필요한 항공권 발권, 숙박, 현지교통 등의 부대업무를 대행할 여행사를 선정하는 서비스다. 조달청에 의해 이 제도가 공표되고 입찰공고가 난 것은 지난 2018년 10월. 최근에 와서야 문제가 불거진 것은 올해 6월께 조달청에서 제도 시행을 위한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고 수요기관을 파악하는 등의 구체적인 행정이 이루어져 올 연말부터 수요기관으로부터의 본격적인 입찰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가 도입된 건 2018년 10월. 40년 만에 폐지된 정부항공운송의뢰제도(GTR, Government Transportation Request)를 대체하기 위해 도입됐다. GTR은 공무원의 국외 출장 시 국적항공기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을 이용하도록 했던 제도였다. 자국 항공 산업 보호와 외화 유출을 막는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특정 기업에만 혜택을 주는 것이며 가격도 합리적이지 않아 예산낭비라는 비판 여론이 많았다. 저비용항공사(LCC)가 늘고 항공 시장이 다변화함에 따라 공무원도 일반 국민과 똑같이 시장가격으로 항공권을 구매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를 신설한 것이다.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는 조달청의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카테고리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주거래 여행사 제도’ 라고도 하는데 주거래 여행사는 나라장터 경쟁 입찰을 통해 선정된다. 각각의 여행일정 및 가격을 정하지 않고 업체가 제시하는 카탈로그로 계약해 수요기관 요구에 부합하는 상품을 공급한다. 선정된 여행사는 계약기간인 2~3년 동안 부처별 항공권 등 출장·연수 관련 예약·구매를 대행하게 된다. GTR과 달리 LCC와 해외 항공사도 이용이 가능하고 항공권뿐 아니라 숙박과 현지 행사 진행까지 종합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자격 기준 너무 높아 중소 여행사는 애초에 입찰 불가
그런데 이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의 업체 입점 조건이 대형 업체에 맞춰져 있어 중소 여행사들의 불만이 제기됐다. 조달청 입찰공고의 적격사 기준에는 ‘입찰공고일 전일 기준 최근 3년간 BSP(항공운임결제시스템) 국제선 항공권 발권실적 100억 이상’이라는 조항이 있다. 여행사가 이 기준을 만족하려면 연간 30억~40억 원의 항공권을 판매해야 한다. 중소여행사는 애초에 충족할 수 없는 기준이다.
현재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여행·체험 서비스의 맞춤형국외공무여행(카탈로그)에 등록되어 있는 업체는 (주)에스지항공여행사, (주)내일투어, (주)인터파크, (주)온라인투어 등 4개 업체다. 여행업계에서는 꽤 큰 규모의 매출이 나오는 기업들이다.
입찰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조달청은 “국내에 BSP가 가능한, 즉 직접 항공발권이 가능한 업체가 대략 400개이고 그 중 지난 3년간 100억 원 이상 발권을 한 업체가 70여 개다. 그 정도 여행사들이 커버할 수 있는 기준이라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라고 판단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여행의 안정성이나 수요기관의 요구 등을 두루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업체와의 계약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 “한국여행업협회(KATA)와의 협의를 통해 자격 요건을 여러모로 충분히 고려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의 중소 여행사 대표 A 씨는 “이전에 나라장터에서 입찰 후 수주를 받을 때는 입찰 가격 경쟁력과 실적 등이 중요했다. 작은 여행사는 2000만~5000만 원 정도의 작은 행사를 따고 진행하면서 실적을 쌓을 수 있었고 그 실적으로 다시 입찰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며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작은 여행사가 조달청에서 입찰을 따내는 것 자체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입찰 기회 있지만 실질적으론 배제…조달청 “활성화되면 업계 의견 반영”
이에 대해 공정여행업협회는 “입찰 업체 자격을 높게 제한한 KATA 역시 중소 여행사보다는 대형 여행사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KATA의 역대 임원진이 대형 여행사의 대표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정여행업협회는 “조달청의 목적 중 하나가 중소기업의 좋은 상품을 국가에서 먼저 사용하자는 취지 아니냐. 그런데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는 소상공인의 중요한 판로 하나를 조달청이 나서서 막는 격”이라면서 “작은 여행사라도 수년간 노력해 쌓은 실적을 반영해, 기존에 따냈던 작은 계약만이라도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따져보면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고 해도 중소 여행사의 입찰 기회 자체가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조달청의 입찰 시스템은 오픈마켓 격인 종합쇼핑몰과 나라장터 입찰 방식으로 나뉘는데, 쇼핑몰의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 외에도 여전히 공공부문 여행서비스의 입찰방식을 병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소여행사 관계자는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는 항공권만 발권하던 GTR과 달리 한번 주거래 여행사로 선정되면 교통을 비롯한 숙박, 현지투어, 행사운영, 부대 서비스 등 국외 여행에 대한 종합적인 서비스를 카탈로그 형식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아예 입찰 자체가 현저히 줄어들 게 뻔하다”고 주장한다. 항공권은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를 통해 구매하고 기타 숙박과 부대사항들을 번거롭게 입찰을 통해 구매할 공공기관이 어디 있겠냐는 것이다.
더구나 조달청은 각 기관과 산하 기관에도 공문을 보내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 제도를 적극 이용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또 다른 중소 여행사 대표 B 씨는 이를 두고 “공무원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웬만하면 위에서 내려오는 지침을 따르려고 하기 때문에 향후 작은 여행사는 더 선호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며 “공무원들의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조달청은 “맞춤형 국외공무여행서비스를 통해 실제 행사가 진행된 것은 아직 한 건도 없다. 제도가 아직 제대로 시행되기 전인 데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기준을 정하고 입찰 공고까지 낸 상태이기 때문에 향후 진행 사항을 보고 제도가 활성화되면 여행 업계 전체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입찰 기업 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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