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이만하면 ‘견원지간’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삼성과 LG는 10여 년 넘게 전 세계 TV 시장에서 1, 2위를 번갈아가며 지켰다. 나란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자 기업이지만 힘을 합치기보다 서로 약점을 찾아내 공격하기 바빴다.
삼성과 LG의 TV전쟁은 1992년 브라운관 시절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 PDP(Plasma Display Panel,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 LCD(Liquid Crystal Display, 액정표시장치)로 넘어오면서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제대로 붙기 시작한 건 확고한 세계 정상 자리를 차지한 2010년대 이후부터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전쟁 10년사를 살펴봤다.
#2011년: 3D로 한판 붙자
2010년대 이후 삼성과 LG의 첫 격돌은 ‘3D TV’다. 당시 김현석 삼성전자 개발팀 전무가 기자 설명회에서 “LG의 3D TV는 화질이 떨어진다”며 비난하면서 시작됐다. 이러한 비난에 당시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화질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비교 시연을 통해 3D TV의 우열을 따져보자고 반박했다.
삼성과 LG 3D TV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안경 방식에 있었다. 3D는 양안의 시차를 이용해 입체감을 주는 방식인데 삼성전자는 오른쪽, 왼쪽에서 각각 촬영한 화면을 빠른 속도로 교대로 보여주는 셔터글래스 방식(액티브)을 채택했다. 반면 LG전자는 한 화면에 두 영상을 쪼개 동시에 보여준 다음 편광 안경으로 각각 받아들이게 하는 편광 방식(패시브)을 사용했다.
당시 삼성은 ‘풀HD’는 가로 해상도가 1080픽셀 이상이어야 하는데 한 화면을 540픽셀씩 쪼개서 보여주는 편광 방식은 진정한 ‘풀HD’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LG는 오른쪽과 왼쪽 눈 해상도가 각각 540픽셀로 나뉘긴 하지만 사람의 뇌에서는 하나로 합쳐서 1080픽셀로 인식되기 때문에 ‘풀HD’가 맞다고 반박했다.
LG는 오히려 셔터글래스 방식의 화면 플리커(깜빡거림) 현상이 장시간 시청 시 두통이나 눈 피로를 유발한다며 건강 문제로 맞섰다. 안경에서 오른쪽과 왼쪽 번갈아 시야를 가려 입체 효과를 내는 셔터 방식의 특성 때문이다. 안경 자체에 전자장치가 들어가기 때문에 가격도 10만 원 전후로 편광 방식에 비해 크게 비쌌다.
그러나 이러한 3D TV 기술 우위 논쟁은 양사 모두의 패배로 끝났다. 이후 초고화질(UHD)이 TV 핵심 차별화 요소로 부상하고, 가상현실(VR) 등 대체 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두 기업 모두 2016년 이후 주력 제품에서 3D TV 기술을 제외하면서 3D TV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2012년: OLED 기술 유출 논란
2012년에는 ‘기술 유출’ 논란이 불거졌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자사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기술을 LG디스플레이가 의도적으로 빼갔다고 주장한 것. 삼성디스플레이는 사과와 후속 조치를 강하게 요구했지만, LG디스플레이는 개발 중인 제품에 불필요한 기술이라며 기술을 빼간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갈등이 극에 치달으며 법정 소송으로 이어졌다. 9월엔 LG디스플레이가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를 상대로 OLED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갤럭시S2, 갤럭시S2HD, 갤럭시S3, 갤럭시노트, 갤럭시탭 7.7 총 5개 제품을 겨냥했다.
이에 질세라 삼성디스플레이는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를 상대로 패널 특허 4건과 제조공정 특허 1건, 모듈·구동회로 특허 2건 등 LCD(액정표시장치) 관련 특허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삼성디스플레이는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에 이 기술을 활용하는 모든 제품의 생산과 판매를 즉각 중단하고 20억 원을 우선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OLED 기술 유출 논란은 3년 뒤인 2015년 삼성의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을 LG로 빼돌린 전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원과 이를 건네받은 LG디스플레이 임직원 등 4명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며 마무리됐다. 아울러 소송전은 해를 넘긴 2013년 정부의 중재로 끝났다. 당시 김재홍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은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과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을 각각 만났고, 두 사장은 전격 회동 후 극적으로 타협했다.
#2016년: 진짜 4K를 가려라
4K(울트라HD)가 TV 시장의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삼성과 LG는 또 다시 맞붙었다. LG의 RGBW 방식 디스플레이가 4K 해상도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삼성전자가 공세에 나선 것.
2016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ICDM(국제디스플레이계측위원회, International Committee for Display Metrology) 정기회의에서는 미국, 영국, 독일 등 각국 전문가 40여 명이 해상도 측정기준 개정을 논의했다.
여기에서 삼성전자는 LG디스플레이 ‘엠플러스(M+)’ 패널이 UHD 해상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1개 픽셀에 적·녹·청(RGB) 서브픽셀이 모두 포함돼야 하는데 LG디스플레이 방식은 흰색(W) 서브픽셀을 추가해 RGB-WRG-BWR-GBW 순서로 화소를 구현하므로 UHD 해상도에 못 미친다는 설명이다.
W 픽셀을 유효화소로 계산한 LG디스플레이와 달리 삼성전자는 W 서브픽셀이 밝기를 높여주는 역할일 뿐 고유 색상을 지닌 유효화소가 아니라고 봤다. W를 유효화소로 보는지를 두고 두 기업의 입장 차이가 팽팽했다. 양측 논쟁은 결국 측정법을 보완하기로 잠정 합의하면서 일단락됐다. 이때 등장한 개념이 화질 선명도(CM)다. ICDM 개정안에 따라 해상도 정의 시, 단순 픽셀 수만 세는 것이 아니라 화질 선명도를 충족한 픽셀만 해상도에 포함한다.
같은 해 ‘상품명’을 두고 다소 유치한 갈등도 벌어졌다. LG전자가 일부 해외 매장에서 4K TV를 홍보할 때 삼성전자 SUHD TV 상표를 사용한 까닭이다. 이를 두고 삼성은 LG에 항의서한을 보내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LG전자는 자사의 슈퍼 울트라HD TV가 해외에서 판매될 때 슈퍼 UHD TV로 홍보되다 보니 일부 매장에서 이를 줄여 쓰는 과정에서 SUHD로 표기하는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해당 사건은 소송전까지 번지진 않았다. 당시 삼성전자 관계자는 “SUHD 상표가 들어간 광고·홍보물 사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것일 뿐 소송을 거론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는 “매장 차원에서 발생한 해프닝성 오류로 이를 바로잡도록 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의 경우 올레드 TV 쪽으로 집중한다는 전략이어서 SUHD를 도용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해명했다.
#2017년: QLED Vs OLED
올해 LG전자가 삼성전자에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사건은 2017년부터 이어진 사건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OLED 기술을 포기하고 퀀텀닷 디스플레이를 앞세운 TV 시장 전략을 공식 선언했다. 퀀텀닷 디스플레이는 LCD TV에 퀀텀닷 필름으로 색재현력을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하지만 별도의 광원인 백라이트와 광량을 조절하는 액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LCD 패널이기 때문에 OLED에 비해 제조원가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LG전자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잔상 현상’에 대해 공세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유튜브에 ‘QLED 대 OLED, 12시간 화면 잔상 테스트(QLED vs OLED: The 12-Hour Image Retention Test)’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올렸다. 삼성이 공개적으로 LG OLED TV보다 삼성 QLED TV가 잔상에 강하다는 테스트 결과를 표현했다.
LG전자는 자신의 제품 홍보가 아닌 경쟁사 기술을 폄훼한 것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LG전자는 삼성전자가 기존 ‘퀀텀닷 SUHD TV’를 자사의 진짜 OLED TV와 유사한 ‘QLED TV’로 명칭을 바꿔 교묘하게 소비자를 혼동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발광 특성을 가진 LG전자의 OLED 기술은 본질적으로 LCD TV 기술인 QLED에 비해 명암비 등 분명 강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오랜 연구를 통해 성능이 향상된 LCD와 비교하면 아직까지 일장일단이 분명 존재한다. 결국 이러한 기술 우위 논쟁은 결론이 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2019년: 8K 시대에도 끝나지 않은 갈등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해도 격돌했다. 이는 2016년과 2017년 사건의 연장선이다. LG전자는 지난 6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PA)에서 삼성 QLED 8K TV가 진짜 8K TV가 아니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화질 선명도(Contrast Modulation) 부분에서 8K TV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삼성은 초고해상도 컬러 디스플레이를 평가할 때 화질 선명도는 적합하지 않으며, 밝기와 컬러볼륨과 같은 광학적인 요소와 영상처리 기술 등 시스템적인 부분을 새로운 평가 방법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삼성의 이 같은 반박에 LG는 급기야 22일 삼성을 공정거래위원회에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신고했다. LG 측 주장에 따르면 삼성 QLED TV가 LED(발광다이오드) 백라이트를 사용하는 LCD(액정표시장치) TV인데, ‘QLED’라는 자발광 기술이 적용된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하게 했다는 것이다.
삼성은 20일 입장문을 통해 “퀀텀닷 기술을 사용한 QLED TV를 2017년에 선보였고, 소비자로부터 최고의 제품으로 인정받아 전 세계 TV 시장에서 13년째 1위를 달성하고 있다. TV 시장의 압도적인 리더로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8K TV 논란은 ICDM 디스플레이 표준이 개정되면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측은 ICDM이 연구 결과를 제시할 뿐 표준을 지킬 의무는 없다고 강조하지만, 대부분의 디스플레이 측정단체가 ICDM의 표준을 활용하고 있다.
제소와 관련해서는 공정위가 신고 사건을 3개월 내로 조사·심사하는 게 원칙이다. 심사절차 종료나 무혐의, 시정권고, 과태료 등을 결정하는 조사·심사 절차가 90일 이내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개월 내에 사건이 처리될지는 미지수다. 공정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사무소 해당 부서에 한 해 6000건이 접수된다. 1인당 400건을 처리해야 한다. 하루 한 건 처리도 어렵다. (LG전자 신고건의 연내 처리는) 불가능하다”며 “3개월 내 처리를 못할 경우 사무처장 승인을 받아서 기간을 연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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