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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천문학자는 밤마다 별의 '관상'을 본다

별의 색깔과 밝기, 분포 형태 통해 나이 추측…앞으로의 운명까지 내다볼 수 있어야

2019.09.23(Mon) 15:21:28

[비즈한국] 작년 겨울,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워크숍을 다녀왔다. 워크숍 마지막 날 밤, 나는 숙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먹을 간식을 사러 근처 편의점으로 심부름을 갔다. 과자 몇 개와 음료수, 그리고 술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때 편의점 직원은 나를 보며 정말 뜻밖의 말을 건넸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나는 기분 좋은 티를 숨기지 못하고 입에서 침까지 튀기면서 기쁜 마음으로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날 나와 함께 편의점을 간 연구실 형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내가 이 이야기를 자랑할 때마다 오히려 이런 것에 집착하는 것이 더욱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던데. 뭐 어떤가, 어쨌든 어려 보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니까. 

 

# 낯빛만 보고 나이를 알 수 있을까 

 

편의점 직원이 누르는 계산대 버튼을 잘 보면, 물건의 바코드를 찍고 가격을 입력하는 버튼 외에 또 하나 특별한 버튼이 하나 있다. 바로 그 물건을 구매하는 고객의 나이대를 입력하는 버튼이다. 고객이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그 물건을 산 사람이 50대 여성인지, 20대 남성인지를 누르도록 되어 있다. 성별/연령별로 어떤 물건이 얼마나 팔리는지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바쁜 때는 그냥 아무 버튼이나 누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진=고성준 기자

 

편의점 직원은 지금 자기 앞에 서서 담배를 요구하는 이 손님이 과연 10대 같은 엄청난 동안을 가진 복 받은 30대인지, 아니면 용감하게도 나이를 속이는 진짜 청소년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밤하늘의 별을 보는 천문학자들 역시 이처럼 별의 겉모습, 바로 낯빛만 보고 그 나이를 파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별들은 신분증도 없다. 또 다들 너무 먼 거리에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 그 별의 거주지까지 찾아가서 가족 별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오로지 이 먼 거리에 떨어진 지구에 앉아, 하늘에서 어렴풋이 반짝이는 별들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야 한다. 과연 저 별은 몇 살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허락된  건 오직 하나, 별의 얼굴을 보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대체 천문학자들은 어떻게 별의 겉모습만 보고 나이를 파악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람의 얼굴을 보고 대강 나이를 파악할 때를 떠올려보면 된다. 얼굴의 주름살 수, 피부의 질감,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이마의 면적 등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름대로 ‘액면가’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 지표(Indicator)가 있다. 그 기준을 통해 상대방의 나이를 대략 유추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문학자들도 나름대로 별의 노화 정도를 파악하는 기준이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별에 포함된 중원소의 함량이다. 우주에는 정말 다양한 화학 원소가 있지만, 우주를 구성하는 함량은 굉장히 극단적이다. 우주의 75퍼센트는 수소로 구성되어 있고, 그 나머지도 거의 대부분이 헬륨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나머지 원소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그 양이 굉장히 적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편의상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소와 헬륨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원소들을 뭉뚱그려서 중원소, 또는 금속 원소라고 부른다. 

 

가벼운 별에서부터 점점 질량이 무거운 별, 그리고 초신성 폭발이 일어날 때 얼마나 다양한 화학 성분이 추가로 생성되는지, 별의 진화 과정에 따른 변화를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별이 진화하면서 더 무거운 원자핵을 뭉쳐 더 무거운 원자핵을 만드는 다음 단계 핵융합을 진행한다. 영상=NASA, ESA, and L. Hustak(STScI)

 

우주의 모든 별은 수소와 헬륨 같은 가벼운 원자핵을 뭉쳐 더 무거운 원자핵을 만드는 핵융합 반응을 통해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우주의 모든 별은 스스로 돌아가는 거대한 핵융합 발전기라고 볼 수 있다. 별 중심에 모여 있는 가벼운 원자핵을 땔감 삼아 핵융합 엔진을 돌리고, 막대한 에너지가 만들어지면 그 결과 더 무거운 원자핵은 찌꺼기로 남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별이 태울 수 있는 가벼운 원자핵 땔감이 다 소진되고 나면, 더 이상 별은 핵융합 엔진을 돌릴 수 없게 된다. 이후 별은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주변 우주 공간으로 자신의 일생 동안 중심에 축적해놓았던 무거운 원자핵 찌꺼기들을 남긴다. 이 과정을 통해 별들은 태초에 수소와 헬륨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우주 공간 곳곳에 더 무거운 다양한 화학 성분을 채워간다. 이러한 과정을 우주의 화학적 비옥화/축재(Chemical Enrichment) 라고 부른다.[1] 

 

모든 별은 가스 구름 속에서 태어나 다시 가스 구름을 남기며 죽는다. 태양처럼 가벼운 별의 진화 트랙(왼쪽 경로)과 질량이 더 무거운 별의 진화 트랙(오른쪽 경로)이 표현되어 있다. 지구의 물이 바다에서 증발해 구름이 되었다가 다시 비가 되어 바다로 떨어지는 순환 사이클이 있는 것처럼, 별도 수억 년을 주기로 오랜 시간에 걸쳐 가스 구름을 오고 가는 순환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별의 인생은 ‘무덤에서 태어나 요람에서 죽는’ 삶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지=NASA/ESA

 

이 화학적 비옥화 덕분에 우주는 조금씩 더 비옥하게 변해간다. 태초에는 수소와 헬륨밖에 없었기 때문에 1세대 별들은 수소와 헬륨만 반죽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 태어난 2세대 이후의 별들은 1세대 별들이 남긴 더 무거운 원소를 함께 머금고 반죽해 태어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별들의 세대 차이는 별빛을 분석해 각각의 별이 어떤 화학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비교하면 확인할 수 있다.[2] 

 

이런 화학적 세대 차이를 이용해, 금속 원소가 거의 없는 별은 아주 먼 옛날 태어난 오래된 별이라고 볼 수 있고, 금속 원소를 비교적 더 많이 머금고 있는 별은 우주가 더 비옥해진 비교적 최근에 태어난 별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염색체 끄트머리 텔로미어(Telomere)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처럼, 별 속의 금속 원소 함량은 그 별이 언제 태어났는지를 이야기해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로 볼 수 있다. 오히려 얼굴의 주름살이나 흰 머리카락 개수로 나이를 유추하는 우리의 방식보다, 중금속 원소의 함량을 통해 별의 나이를 파악하는 천문학자들의 방식이 더 정확하다. 우리 태양 빛의 화학 성분을 분석해보면 태양은 앞선 1세대 별들의 유훈을 머금고 태어난 2세대 별이다. 

 

# 새롭게 확인된 구상성단 나이의 지표 

 

사실 우리 태양과 달리 대부분의 별들은 다른 별들과 함께 바글바글 모여서 성단(Star cluster)을 이루어 살아간다. 태양처럼 주변에 아무도 없이 외로운 공간에서 혼자 부유하는 경우는 꽤 드물다. 특히 아주 오래전에 태어나 나이가 많은 별들이 수백만 개 모여서 커다란 주먹밥처럼 둥근 형태로 모여 있는 곳을 구상성단이라고 부른다. 보통 하나의 성단은 하나의 아주 거대한 분자 구름이 수축하면서 함께 태어난 별들로 이뤄진다. 따라서 하나의 성단에 살고 있는 별들은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동갑내기 별들이라고 볼 수 있다. 

 

태양처럼 혼자 덩그러니 떠다니는 독립된 개개의 별보다는 여러 개의 별들이 한데 모여 살아가는 성단의 나이를 측정하는 것이 훨씬 쉽다. 성단에는 아주 가벼운 별부터 아주 무거운 별까지, 다양한 질량의 별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다. 모두 나이는 비슷하지만 질량만 다른 동갑내기들이다.

 

그런데 별의 진화 양상과 그 속도는 별의 질량에 아주 많이 영향을 받는다. 질량이 더 무거울수록 핵융합 엔진에 태울 수 있는 땔감의 양이 더 많아서, 더 오랜 시간 타오를 수 있을 것 같지만, 질량이 무거워지면 그만큼 중심 핵융합 엔진의 온도도 아주 빠르게 높아지기 때문에 더욱 빠르게 연료를 소모해버린다. 반면 질량이 가벼운 별들은 중심 핵융합 엔진의 온도가 미지근하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땔감을 태워간다. 그래서 별은 질량이 더 무거울수록 단명하고, 질량이 가벼워야 장수한다. 즉 질량이 가벼운 별은 노화 속도가 느리지만, 질량이 무거운 별은 훨씬 빠르게 노화가 진행된다. 따라서 하나의 성단에 살고 있는 질량이 다른 별을 비교해보면, 분명 모두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동갑내기이지만, 그 겉모습에서 풍기는 액면가는 다르게 느껴진다. 

 

별들의 색깔과 밝기에 따라 분류한 HR도. 우선 모든 별들은 태양처럼 수소를 주된 연료로 삼아 핵융합을 시작하는 주계열성으로서 별의 삶을 시작한다. 이때 질량이 더 무거운 별들은 훨씬 더 뜨거운 온도로 밝게 빛날 수 있기 때문에, 주계열성 중에서 온도가 높고 밝기가 밝은 영역(위 HR도 상에서 왼쪽 위)에 놓인다. 반면 질량이 가볍게 태어난 별들은 주계열성 중에서 온도가 낮고 밝기가 어두운(위 HR도 상에서 오른쪽 아래)에 놓인다. 이미지=Thomson-Brooks Cole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관측한 왜소은하 사자자리 IV 속 별들의 밝기와 색깔을 비교한 HR도. 시간이 흐르면서 우선 질량이 무거운 주계열성 상단에 위치한 별들부터 HR도 상에서 주계열을 벗어나 오른쪽 위의 거성 쪽으로 진화해나간다. 시간이 충분히 오래 지나면 결국 가벼운 주계열성 하단의 별까지 모두 거성 쪽으로 진화한다. 천문학자들은 특정 은하나 성단에 속한 별들이 HR도 상에서 어떤 분포를 보이는지를 통해 그 천체의 나이를 유추한다. 영상=NASA, ESA, T. Brown(STScI)

 

시간이 흐를수록 주계열성 상단부터 거성 쪽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래프. 알파벳 순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HR도 상에 놓인 별들의 분포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출처=http://pages.uoregon.edu/jimbrau/astr122/Notes/Chapter20.html#glob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세월의 흔적이, 단순히 별들의 밝기나 색깔의 통계적인 분포뿐 아니라 그 성단 내에 별들이 분포하는 겉모습에도 남을 것이라 추측했다. 특히 주말의 신촌역이나 강남역 일대처럼 높은 밀도로 좁은 영역 안에 별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구상성단의 경우, 서로 가까이 모여 있는 별들끼리 강한 중력적 상호작용을 자주 주고받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별들끼리 중력 힘겨루기를 지속하면서, 별들은 원래 놓여 있던 궤도를 벗어나 성단의 중심에서 더 멀리 쫓겨나거나 더 가까이 안쪽으로 끌려 올 수 있다.[3] 

 

실제로 이러한 별들의 대대적인 자리 바꾸기는 우리 은하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영상은 슬로안 전천 탐사(SDSS)의 APOGEE 관측을 통해, 천문학자들이 확인한 우리 은하 내 별들의 자리 바꾸기를 보여준다. 7만여 개의 적색 거성을 중심으로 별들의 궤도 변화를 추적한 결과, 전체 별에서 약 30%가 이런 자리 바꾸기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 은하는 원래 태어난 모습 그대로 유지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은하 내 분포하는 별들의 공간 분포가 계속 바뀌고 그 외모도 변화하고 있다. 영상=Dana Berry/SkyWorks Digital, Inc./SDSS collaboration

 

특히 이런 중력적 힘겨루기의 결과는 별의 질량이 얼마나 무거운지에 따라 결정된다. 질량이 더 가벼운 연약한 별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점점 궤도가 크게 찌그러지면서 성단의 중심에서 쫓겨나 멀리 외곽으로 벗어난다. 반면 질량이 더 무거운 힘센 별들은 반복된 힘겨루기 과정에서 조금씩 궤도가 작아지고 성단의 중심부로 가라앉는 듯 자리를 옮긴다. 그 결과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성단 내 질량이 무거운 별들이 분포하는 영역은 더 중심으로 몰리게 되고, 성단의 중심부에 모여든 별들의 밀집도도 더 높아진다. 마치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가 젊은 사람들이 도시 중심으로 모여들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도시 외곽 지방으로 벗어나는 이촌향도 현상처럼, 성단 내 별들의 분포도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한다. 

 

그렇다면 성단 내에서 별들이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 성단 중심부에 얼마나 많이 모여 있는지를 정밀하게 알 수 있다면, 그것을 지표로 삼아 성단이 얼마나 오랫동안 중력적 힘겨루기를 해왔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즉 성단이 만들어지고 오늘날까지 성단 내 별들이 중력적 힘겨루기를 해오고 있는 시간, 역학적 나이(Dynamical age)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존의 HR도를 통해 성단의 나이를 유추하는 방법은 아주 널리 쓰이는 좋은 방법이지만, 성단 내 별들 하나하나의 밝기와 색깔을 정확히 알아야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개개의 별의 밝기와 색깔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사실 관측하기 아주 까다롭다. 그런데 만약 굳이 별 하나하나의 성질을 파악하지 않아도, 그저 별들이 공간상에서 얼마나 바글바글 모여 있는지, 그 밀집도만 가지고 성단의 역학적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면, 이는 훨씬 간편하게 성단의 나이를 유추하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존의 HR도를 통한 성단의 나이 측정법은 혈액 검사를 통해 사람의 나이를 유추하는 것이라면, 성단 내 별들의 공간 분포만 보고 성단의 나이를 측정하는 것은 정말 얼굴만 보고 나이를 맞추는 편의점 점원의 노하우에 버금가는 눈썰미라고 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 새로운 노하우가 정말 쓸모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은하에서 약 16만 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작은 왜소은하 대마젤란 은하(LMC, Large Magellanic Cloud) 속 구상성단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했다. 천문학자들은 이미 기존의 HR도 방법을 통해 나이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구상성단 다섯 개를 분석했다. 이 다섯 개의 구상성단은 모두 130억 살 정도의 오래된 동년배 성단들이다. 하지만 이 성단들은 약 3광년에서 25광년에 이르기까지, 성단 중심에 별들이 모여 있는 영역의 크기가 다양하다. 

 

이번 연구에서 활용된 대마젤란 은하 속에 살고 있는 다섯 개의 구상성단을 비교한 그림. 성단 중심부에 별들이 모여 있는 밀집도가 올라간다. 역학적 나이가 더 많은 성단일수록, 즉 성단 내 별들이 중력적 힘 겨루기를 더 오래한 성단일수록 더 밀집도가 높은 작은 중심부를 품고 있다. 이미지=Francesco R. Ferraro et al.

 

특히 이번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다른 일반적인 주계열성 별들과 달리, 유난히 질량이 더 무겁고 밝기와 온도가 더 밝은 청색 낙오성(BSS, Blue Straggler Stars)에 주목했다. 사실 성단을 연구할 때 가장 어려운 점 중에 하나는 사진에 담긴 별들이 정말 성단에 포함된 구성원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히 배경 별이 같은 방향에 겹쳐서 찍힌 것인지를 분간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색 낙오성의 경우, 다른 보통의 주계열성보다 훨씬 온도가 높고 밝기 때문에 배경 별들의 방해 속에서 쉽게 골라낼 수 있다.[4][5] 

 

또한 이런 청색 낙오성은 주로 성단 중심부처럼 별들의 밀도가 높은, 별들이 바글바글한 영역에서 많이 발견된다. 천문학자들은 청색 낙오성이 주로 별 두 개가 강한 중력에 이끌려 충돌해 하나의 거대한 별로 합체하거나, 아니면 진화가 먼저 진행된 별 하나가 뱀파이어처럼 인근의 덩치 큰 별에게서 물질을 빨아들이면서 다시 연료를 보충한 덕분에 밝고 뜨겁게 빛나고 있다고 추정한다. 

 

HR도 상에서 청색 낙오성이 놓인 위치(파란 점선 사각형)를 확인해보자. 이미 거성 쪽으로 진화해 기존의 주계열을 벗어난 일반적인 주계열성들과 달리, 청색 낙오성은 마치 평범한 진화 트랙을 따르지 못하고 여전히 주계열에 남아 낙오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푸른 낙오자란 뜻에서 청색 낙오성이란 ‘웃픈’ 이름이 붙었다. 이미지=Pearson Education


청색 낙오성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시나리오. 두 개의 질량이 가벼운 별이 직접 충돌하면서 덩치 큰 청색 낙오성으로 진화하는 충돌 시나리오(위쪽)와 하나의 별이 다른 별에게서 물질을 빨아들이며 연료를 보충해 성장하는 뱀파이어 시나리오(아래쪽)이 표현되어 있다. 이미지=NASA/ESA

   

천문학자들은 비교적 더 질량이 무거운 청색 낙오성을 위주로, 이 별들이 성단에서 얼마나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는지를 비교했다. 그 결과 더 오랜 시간 역학적 진화를 겪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단일수록 이 별들의 공간 분포 밀집도는 더 높아졌다. 중심부에 무거운 별들이 분포하는 영역의 크기는 더 좁아졌고, 더 높은 밀도로 바글바글하게 모여 있다. 마치 시간이 흐르면서 무거운 별들이 성단 중심부로 가라앉는 듯한 양상을 띤다. 질량이 무거운 별들이 얼마나 중심에 몰려 있는가. 이제 이 기준은 성단이 얼마나 오랫동안 역학적 진화를 겪었는지, 역학적 나이를 잴 수 있게 해주는 또 다른 지표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6] 

 

시간이 흐르면서 구상성단 내 청색 낙오성들이 점차 중심부로 모여들며 밀집도가 올라간다. 이제 천문학자들은 성단 내 청색 낙오성들의 공간 분포만 보고 성단의 대략적인 역학적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새로운 노하우를 터득했다. 영상=ESA/Hubble & NASA, L. Calçada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책을 그 겉표지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 

 

우리는 단순히 그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작년 겨울 편의점 점원이 나의 겉모습만 보고 (고맙게도) 미성년자라고 착각했던 것처럼, 겉모습만으로 판단한 결과는 틀릴 때가 많다. 

 

하지만 애처롭게도 천문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별에게 직접 다가갈 수도, 또 긴 템포로 살아가는 별의 삶을 함께 살아갈 수도 없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별의 겉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천문학자들은 오로지 별의 겉모습만을 보고 그 별이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의 운명까지 내다볼 수 있는 엄청난 눈썰미를 키워야만 한다. 

 

“난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영화 ‘관상’ 중에서 

 

결국 천문학의 역사는 우주의 겉모습만으로 우주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한, 눈썰미를 갈고 닦아가는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별과 은하들의 ‘관상’을 통해 그들의 깊은 내면, 살아온 인생을 아우르는 ‘심상’까지를 들여다보는 눈썰미. 천문학자들은 매일 밤, 별과 은하들의 겉모습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 파도를 일으키는 물리 법칙이란 바람을 느끼기 위해 눈동자에 별빛을 담고 있다. 

 

[1]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8-0544-7?WT.feed_name=subjects_nuclear-physics[6]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9-0865-1​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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